여성의 눈으로 본 대한민국 60년
여성의 눈으로 본 대한민국 60년
  • 박윤수 / 여성신문 기자 [=정리]
  • 승인 2008.08.08 14:45
  • 수정 2008-08-08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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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참정권 획득부터 여성 총리 탄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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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법개정운동 37년사’
제헌헌법 제정과 의무교육 실시

1948년 7월 17일 제정, 공포된 대한민국 헌법에서 가장 눈에 띄는 조항은 여성에게도 평등한 교육 기회를 부여한 ‘의무교육의 규정’이다. 1949년 제정된 교육법에서 “모든 국민은 자녀를 만 6세부터 12세까지 취학시킬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면서 여성의 취학률이 1952년 35%, 1960년에 45%로 높아졌다. 의무교육제도의 실시는 많은 여성들에게 문자해독 능력을 부여함으로써 이후 여성의식의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됐다.

이에 앞서 1948년 3월 17일 공포된 국회의원선거법에서는 최초로 여성들에게 참정권이 주어져 5월 10일 시행된 제헌의회 선거에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 발발과 ‘전쟁 미망인’ 출현

1950년 시작되어 3년간 계속된 한국전쟁은 한국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 대사건이었고 여성의 삶 또한 변화를 겪었다.

우선 전쟁기간 동안 많은 여성들은 성폭행, 강요된 매춘 등 폭력에 노출됐고 남성이 부재한 현실 속에서 스스로 생존해야 했다. 또한 전쟁으로 인해 남편을 잃은 여성들, ‘전쟁 미망인’이 출현하게 됐다. ‘미망인’(未亡人)이란 ‘남편과 함께 죽지 못하고 살아남았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 명칭으로 가부장제에 바탕을 둔 개념이었다.

이러한 ‘미망인’ 수는 전국적으로 50여만 명에 달했으며 이들이 부양해야 했던 가족의 수는 90여만 명에 이르렀다.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은 물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남성의 역할까지 맡아야 했던 이들의 존재는 역설적으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미군 주둔과 함께 ‘기지촌 여성’ 탄생

광복 후 미군이 주둔하면서부터 생계를 위해 이곳으로 모여든 한국 여성들의 매매춘이 이뤄지면서 ‘기지촌’이라는 특수한 촌락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매춘은 1960년대 절정을 이뤘고 1966년 무렵 전국 62개 기지촌 여성의 수는 3만여 명을 넘어섰다.

기지촌을 중심으로 미군과 기지촌 여성을 고객으로 하는 서비스 산업이 어우러져 상권이 형성됐고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물건을 거래하는 암시장이 생겨났다. 한국정부는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지촌 여성들을 관리·통제하는 이중정책을 취했다.

기지촌 여성의 수는 미군 감축에 따라 감소했으며 1990년대 이후에는 그 자리를 외국에서 온 여성들이 대신하게 됐다.

민주화운동 속 여성들의 활동

1972년 10월 유신 이후 군부독재정권이 장기화됨에 따라 이에 저항하는 반독재 민주화투쟁의 물결이 일어났다. 여성들도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남성들과 함께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했으며 특히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등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구속자가족협의회’를 모태로 1985년 양심수 어머니들이 중심이 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평의회를 창립, 양심수 석방과 고문추방캠페인, 악법철폐운동을 벌였다.

이런 참여 속에서 여성들은 남성 중심의 시각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1970년대 초 크리스챤아카데미 등을 중심으로 여성권익을 위한 모임을 시작했다. 이는 1980년대 본격적으로 여성운동 조직이 결성되는 바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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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여성노동운동의 상징이 된 KTX 여승무원들의 농성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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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DB
여성노동자운동의 상징 ‘동일방직노조 투쟁’

1972년 동일방직에 한국 최초로 여성 노조지부장이 선출되면서 민주노조가 설립되자 회사와 어용 상급노조, 정부의 합작에 의한 민주노조 파괴작업이 수년에 걸쳐 지속됐다.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은 지부장 연행에 항의하며 반라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고 급기야는 대의원선거일 투표를 위해 노조사무실로 가던 여성 노조원들에게 똥물을 끼얹는 사건이 벌어졌다. 동일방직노조 투쟁은 한국여성노동자운동의 상징이 됐다.

1970년대 ‘공순이’라는 비하적인 이름으로 불렸던 여성 노동자들은 산업화와 민주화 투쟁의 주역이 됐다. 1979년 신민당에서 농성 중이던 YH무역 여성노동자들이 경찰에 연행된 사건은 유신체제 몰락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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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DB
가족법 개정운동과 호주제 폐지

1958년 제정된 민법은 가부장적인 남계 혈통주의를 강화하는 이전의 관습을 유지하는 데 머물러 있었다.

가족법 개정을 위한 움직임은 최초의 여성 변호사였던 이태영 박사가 세운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중심으로 1973년 전국 61개 여성단체가 참여한 ‘범여성가족법개정촉진회’가 결성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77년 분명치 않은 재산은 부부 공동소유로 한다는 등의 조항을 신설한 가족법 개정이 이뤄졌고 1989년 개정을 통해 호주의 권리, 의무조항이 대폭 삭제되고 이혼 시 재산분할청구권이 신설됐다.

1990년대 이후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가 결성되면서 범시민적인 차원으로 확대된 운동은 2005년 드디어 호주제를 폐지하는 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결실을 맺었다. 그리고 올해 1월 1일부터는 새로운 신분등록제가 실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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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행정 40년사’
광주민주화운동과 여성들의 투쟁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계엄령에 반대하는 전 시민적 차원의 시위가 일어났다. 신군부의 탄압, 특히 여성들에 대한 잔인한 진압은 광주시민들의 저항적 연대감을 불러일으켰고 시위는 민중항쟁으로 발전했다.

광주민주화운동에서 형성됐던 공동체의 중심에는 여성이 있었다. 항쟁 초기부터 여성 노동자와 여대생들의 참여로 시작되어 여중생과 여고생, 할머니와 가정주부 등 다양한 계층으로 확대, 참여 인원은 수만 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시위 전위부대와 민중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고 음식물을 만들어 전달하거나 가두 선두방송을 통해 시위대를 진두지휘하며 참여를 촉발시켰다. 대자보나 유인물 등 선전활동은 대부분 여성들에 의해 이뤄졌다.

한국현대여성사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은 1980년대 사회변혁적 여성운동의 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효순·미선을 추모하기 위해 광화문 거리에 모인 촛불시위 인파. ⓒ여성신문DB
효순·미선을 추모하기 위해 광화문 거리에 모인 촛불시위 인파. ⓒ여성신문DB
윤금이, 효순·미선 등 주한미군 범죄

1992년 경기도 동두천에서 주한미군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된 윤금이씨의 사건은 그동안 가려져 있던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주한 미군의 폭력적 범죄에 대한 온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이 사건 이후 시민·사회단체와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주한 미군의 윤금이씨 살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결성됐다. 18개월에 이르는 법정공방 결과 범인 케네스 마클에게 유죄가 확정됐고 1994년 5월 17일 미군으로부터 인도되어 천안교도소에 수감됐다.

주한 미군에 의해 벌어진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은 2002년 6월 경기도 효촌리의 한 지방도로에서 여중생 신효순·심미선양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일이다. 사고를 일으킨 미군들이 미 군사법정에서 무죄 평결을 받고 한국을 떠나자 두 여중생을 추모하고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개정을 촉구하는 대규모의 촛불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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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DB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 11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결성되고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공개됐다. 이어 피해자들이 잇달아 나타났고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기 위해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수요시위는 2008년 8월 6일 현재 825회를 맞았다.

한·일 양국 정부가 적극적인 노력을 보이지 않자 정대협은 이 문제를 유엔, 국제노동기구(ILO)와 같은 국제기구에 알리기 시작했다. 2000년 1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이 열렸다.

이러한 국제적인 노력으로 2007년 7월 미국을 시작으로 네덜란드, 캐나다, 유럽 의회가, 또한 올해에는 일본의 다카라즈카 시와 기요세 시 의회가 일본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 국제적인 움직임으로 확대되고 있다.

 

경찰에게 연행되어 가는 김부남씨.	 sumatriptan patch http://sumatriptannow.com/patch sumatriptan patchprescription drug discount cards blog.nvcoin.com cialis trial coup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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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DB
김보은·김진관 사건과 성폭력특별법의 제정

1992년 1월, 9세 때부터 12년간 의붓아버지의 성폭행에 시달려온 김보은이 남자친구 김진관과 함께 의붓아버지 김영오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변호인단은 이들의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1심에서 김진관 징역7년, 김보은 징역4년을, 항소심에서 김진관 징역 5년, 김보은 징역 5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결국 1993년 대통령 특별사면을 통해 김보은은 사면 및 복권되고 김진관은 감형을 받아 1995년 출소한 뒤 복권신청을 했으나 기각됐다.

김보은·김진관 사건은 91년 어린 시절 성폭행범을 21년이 지난 후에 찾아가 살해한 김부남 사건과 함께 1993년 성폭력특별법 및 1997년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의 계기가 됐다.

여성정책 전담부서의 발전과 여성 총리 탄생

여성정책이 성과를 거둔 뒤에는 여성전담 부서의 단계적인 발전이 있었다. 1970년대까지 여성 관련 정부부서는 보건사회부 산하의 부녀국(가정복지국)이 유일했지만 1983년 여성정책심의위원회와 1988년 정무(제2)장관실에 이어 1998년 3월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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