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1]작년 8월 예산에 하나밖에 없는 영화관이 문을 닫은 후 영화를 보려면 40킬로미터 떨어진 서산까지 가야 한다. 마침 이웃에 영화 좋아하는 내외가 있어 한 달에 한 번 정도 셋이서 영화를 보러 서산 나들이를 한다. 내외 중 남편은 유난히 나와 꿍짝이 맞는 사람이다. 지난 봄 선운사 동백을 보러 가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요새 선운사 동백이 그렇게 좋다는데 선생님 가실래요?”

“당근이지. 아무 때나 그쪽 좋은 대로 날 잡아.”

최근에도 목공 일을 배워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내외가 우리집엘 들렀다.

“선생님, 집사람하고 아산 갔다가 지나는 길에 목공 가르치는 곳이 있어서 들어가 보니 괜찮더라고요. 우리 등록하려고 하는데 선생님 생각이 나서. 한번 구경 가실래요?”

“자기 내 속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 같아. 그렇지 않아도 나도 배울 곳을 찾고 있던 중인데 잘 됐네.”

이렇게 맘 딱 맞는 사람이니, 보고 싶은 영화도 어쩌면 그렇게 일치해 버리는지. 한 달에 한 번 우리의 서산 나들이는 언제나 행복한 날이 되는 것이다. 8월의 선정 영화도 물론 탁월한 선택이었다. 2주 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님은 먼곳에’ 개봉했다는데 그거 꼭 봐야 돼.”

“내가 얼마나 기다리던 영화인데. 내가 이준익 감독 좋아하잖아. 언제 갈까?”

“이번 주는 집에 행사가 있어서… 다음 주 화요일엔 집사람이 뭘 배우는 날이고 수요일엔 내가 안 되고 금요일 어때요?” “좋지.”

“우리 조조 볼까요? 조조는 2000원 싸요. 셋이면 6000원이잖아.”

“좋아 좋아! 평일 조조영화 볼 수 있는 직업 갖고 있는 우리는 정말 행복한 거야.”

“영화 보고 오면서 선생님이 한 번 방문하고 싶다고 하던 덕산 야생화 키우는 집 들를까요?”

“그거 좋지.”

이래서 열흘 후 문화생활의 계획이 잡혔다. 조조가 아침 11시 20분이니까 집에서 10시에 출발, 영화 보고 나면 오후 1시 30분, 덕산에 야생화 키우는 집 2시에 약속하고, 가까이 있는 보리밥 비빔밥 하는 집에 들러 늦은 점심 먹고 집에 오면 5시쯤 되겠네. 참으로 알찬 하루 일과가 짜여졌다.

며칠 전 한 방송국 PD에게서 시골생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는데 자문을 구한다며 전화가 왔다. 당연히 ‘시골에 내려오니 뭐가 제일 좋아요?’ 질문이 나오고 다음 ‘불편한 건 없으세요’ 하는 질문이었다. 좋은 것 나열하자면 끝이 없고 불편한 거?

“굳이 말하라면 문화생활의 폭이 다양하지 못하고 기회가 적다는 것? 그러나 그것도 불편함은 아니에요. 제 경우는 오히려 행복감을 몇 배로 늘려 준다고 생각해요.”

그렇다. 부족하다는 것은 결코 덜 행복하다는 것이 아니었다. 반경 40킬로미터 이내 영화관이 없다고 해서 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감은 더 진하고 컸다.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열흘 전에 계획을 세우고 기다리는 동안 내내 소풍날 잡아놓은 어린아이처럼 설렛고, 한산한 시골 극장은 마치 우리를 위한 이벤트인 양 딱 세 사람의 관람객을 위해 영사기를 돌린 적도 있었고, 돌아오는 한 시간 길, 영화에 관한 나름 평론을 하며 감동을 배가시켰고, 다음 날 이른 아침 다시 목장갑 끼고 호미 들고 밭으로 나갈 때 온몸에 축적된 에너지를 느끼며 또 행복이 밀려오곤 했다. 도시보다 부족한 물질들은 부족한 만큼 하나하나 귀하게 여겨져 감동의 순간들이 늘어났고, 도시보다 부족한 편리함의 수단들로 인해 불편함 속에서 배어나오는 산다는 것의 진수를 맛볼 수 있었다.

다음 달에는 어떤 좋은 영화를 볼까… 그 기대로 나는 한 달 내내 또 행복할 것이다. 부족해서 나는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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