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지법 “남성 100% 여성 40% 비율 무효”
과거 “남녀 차등지급 정당” 판결 관행 뒤집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의 절반도 안 되는 재산을 받도록 한 종친회의 결의는 ‘무효’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지난 2005년 7월 여성에게도 종중 회원의 자격을 줘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이후 지금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종중 소유 재산분배에 대한 여성 종중원의 청구소송이 있어왔다. 그동안의 판결이 “여성 종중원에게도 재산분배를 해야 한다”는 원론적 수준이었다면, 이번 판결은 “남성과 동등한 수준의 재산분배가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여서 법원의 전향적 인식 변화를 보여준다.

향후 대법원 판결에서 남성 종중원에 준하는 여성 종중원의 재산권을 인정하는 결정이 이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수원지방법원 민사30부(부장판사 김창보)는 성주 이씨 총제공파 존자후손 용인종친회 여성 종중원 81명이 종친회를 상대로 낸 ‘종중총회 결의 효력정지 등 가처분 신청’에 대해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고 20일 밝혔다.

여성 종중원들은 종친회가 지난 6월 임시총회를 열어 토지보상금 430억원을 남성 100%, 여성 40%, 며느리와 취학 미성년자 각 18%, 미취학 미성년자 11% 비율로 나눠 갖기로 결의하자 “불공평하다”며 가처분 신청을 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우리나라 종중의 실정상 남성 종중원이 더 많은 재산을 분배받을 수 있다고 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게 분배하는 것은 그 차별 정도가 현저히 불공평해 무효”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게다가 며느리와 미성년자 자녀들에 대한 재산분배가 사실상 남성 종중원에 대한 재산분배인 점을 고려하면 그 불공평 정도는 더 심각하다. 이는 만 20세 이상 종중원에게 재산을 분배하도록 한 종중규약에도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여성계는 이번 판결에 대해 “남성 종중원과 동등한 수준의 여성 재산권을 인정하도록 명문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국여성의전화연합에서 재산권운동을 담당하고 있는 김홍미리 활동가는 “최근 2000년과 2007년 이혼부부 재산분배 판결을 비교 분석한 결과 법원이 여성의 재산형성 기여도를 인정하는 비율도 높아졌지만, 왜 인정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판결문의 내용도 길어졌다”며 “여성들의 권리주장이 많아질수록 법원의 판결도 전향적으로 바뀌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활동가는 이어 “여성 종중원들의 소송 건수가 늘어나는 것 자체가 여성들의 재산권 운동이 되지 않겠느냐”며 “딸이라고 해서 쉽게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용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앞서 2006년 12월 여성 종중원에 관한 재산분배 첫 판결은 실망에 가까웠다.

우봉 김씨 계동공파 여성 종중원 27명이 낸 소송에서 서울서부지법 민사12부(부장판사 김재협)는 “가구주인 남성 종중원에게 출가한 여성 종중원보다 재산을 많이 나눠준 것을 남녀차별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당시 해당 종친회는 토지보상금을 분배하면서 남성 새대주에게는 1인당 3800만원을, 비세대주 성인과 결혼한 여성에게는 각 1500만원씩 나눠줬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3개월 후인 지난해 3월에도 대전지방법원 제3민사부(부장판사 황성주)는 토지보상금 분배과정에서 남성 종중원은 8000만 원, 여성 종중원에게는 3000만 원을 지급한 A종친회에 대해 “그대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성별에 따라 재산을 차등지급한 것은 차별이 아니라는 것이다.

2007년 9월 대법원 민사1부(주심 고현철 대법관)의 판결과 10월 광주지방법원 민사2단독(최인규 판사)의 판결은 “여성 종중원을 재산분배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부당하다”는 내용이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