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삶이 다시 시작된다

지난 봄 사고 소식을 듣고 자원봉사에 참여했던 수원 장안구에 거주하는 주부 박영실(39)씨는 얼마 전 뉴스를 통해 태안지역 해수욕장이 개장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난 22일 남편과 함께 여름휴가차 만리포 해수욕장을 다시 찾았다.

8살 아들과 6살 딸을 데리고 온 이 부부는 몰라보게 달라진 바다의 모습을 보고 감격했다.

“사고 당시 검게 물든 바다를 보면서 언제 다시 이곳에 휴가를 오나 막막하기만 했는데 이렇게 빨리 오게 될지 몰랐어요.”

태안이 살아나고 있다.

지난해 연말 최악의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사고로 암흑세계나 다름없던 태안지역을 찾았던 사람이라면, 푸른 물결과 흰 파도가 밀려드는 만리포 앞바다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범국민적인 방제노력의 결과 태안이 예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사고 후 8개월 만에 찾은 바닷가는 부활의 희망을 엿볼 수 있는 지표생물인 비단조개, 고둥, 불가사리 등이 이미 모습을 드러냈고, 기름 냄새에 민감해 한때 사라졌던 갈매기와 가마우지 등도 날아들면서 제 모습 찾기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특히 피해가 심했던 만리포와 신두리 해수욕장에는 수많은 꼬마 게들이 땅속의 유기물들을 먹어치우느라 만들어 놓은 동그란 모래 경단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땅 속 깊은 곳에서 이뤄지는 조용한 정화작업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단조개, 꼬마게, 갈매기 등 생태계 부활 희망 엿보여

이는 당초 환경부나 시민단체가 5년이 지나야 조개류가 복원되고 10년이 지나야 갯지렁이 등이 살아나 완전한 생태계 복원은 최소 5년에서 최대 5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전망한 것에 비춰볼 때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빠른 회복력이다.

자연의 회복에 사람들도 그간 움츠러들었던 마음의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생업활동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어부들은 망가진 어구들을 손질하고 멀리 조업을 나가는가 하면, 횟집이 문을 열었고, 상인들은 다가오는 성수기 손님을 맞을 채비에 가게 청소와 여름용품 정리정돈 등을 하며 모처럼 기대에 부풀었다.

이에 따라 태안군은 지난 6월 26일부터 그간의 방제작업으로 더 이상 오염물이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는 해수욕장 30여 곳을 개장하기 시작했다. 국토해양부가 주관한 해수 및 해양퇴적물 조사 결과 구름포를 제외한 유류 피해 해수욕장이 개장 기준을 충족했고, 인체위해 수준 이내라는 의견이 제시됐기 때문이다.

태안군과 지역 주민단체는 휴가철을 앞두고 관광객 유치에 나섰다.

26일부터 8월 7일까지 만리포와 청포대 등 해수욕장에서 기름유출 사고로 침체된 태안지역 경제 살리기를 위한 ‘춤추는 바다! 태안’이란 대대적인 바다축제를 개최키로 한 것. 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 웅진 등 여러 기업들도 이번 행사를 지원하고 나서 분위기 띄우기에 한창이다.

만리포에서 여름마다 샤워장을 운영해온 한 상인은 “기름사고가 났지만 기름기가 많이 제거돼 과거의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다”며 “본격적인 시즌에 돌입하지 않아 아직까진 한산하지만 성수기인 7월 말 8월 초가 되면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올 것 같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물론 지역 상인들과 주민들에 의하면 예년의 같은 시기에 비해 올해 피서객 수는 월등히 적다.

자원봉사자·가족단위 피서객 회복된 환경에 경의 표시

태안군에 따르면 지난 21일까지 태안을 찾은 관광객은 18만1000명으로 작년 115만 명과 비교할 때 약 8분의 1 수준이다. 그러나 자원봉사자 외엔 단 한 명의 관광객도 볼 수 없을 것 같던 곳에 불과 몇 개월 만에 관광객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어 지역주민들과 관계 공무원들은 한껏 고무된 기색이다.

지역주민 살리기와 깨끗해진 바다의 모습을 확인하려는 피서객들의 발길이 점점 늘고 있다는 점도 지역주민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태안이 짧은 기간 깨끗해지고 각종 조사 결과도 안전하다고 나오면서 여름휴가를 즐기기 위한 관광객들의 방문이 늘고 있는 것이다.

태안군의 한 관계자는 “태안의 각 해수욕장 번영회에서는 피부병 등 기름오염 후유증으로 인해 해변을 찾는 관광객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5억원의 치료비를 공탁하는 등 대비책도 마련해 놓고 있다”며  더 많은 관광객들의 방문을 호소했다.

환경단체, 수영 등 직접적인 오염물 접촉 자제 당부

그러나 일부 환경단체와 주민들은 아직까지 바다가 100%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같이 해수욕장을 개방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럽게 우려감을 나타내고 있다.

해안의 기름유출은 방제작업 후에도 언제 어디서든 기름이 다시 떠오를 수 있다는 유동성이 있기 때문에 완전한 복원이 이뤄지는 데 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환경연합 삼성중공업 기름유출사고 특별대책위원회 김보삼 활동가는 “해안에 아직까지 유류 찌꺼기들이 발견되는 곳들이 있고 방제 작업이 완벽하게 종료된 상태가 아닌 현 시점에서 관광객들이 해수욕 을 하게 되면 각종 피부질환 등 건강상의 피해와 더 많은 경제적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의 생계와 경제문제 등을 생각하면 환경단체도 무턱대고 반대만 할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김보삼 활동가는 ”지금으로서는 이 지역을 찾는 관광객들이 해수욕 등 직접적으로 오염물과 접촉하는 일을 자제하고 해안가를 다니며 타르 볼을 뜰채로 건져내거나 해안사구에 사구식물을 이식하는 등 환경정화 작업과 생태체험으로 여행의 방법을 달리하는 것이 환경과 지역주민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