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의기 계월향 재조명
평양 의기 계월향 재조명
  • 채혜원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8.07.11 09:58
  • 수정 2008-07-11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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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공개… 여성영정 드물어 학계 주목
임진왜란 때 평양성 수복에 큰 공을 세웠던 평양무관 ‘김응서(1564~ 1624)’ 옆에는 연인인 평양기생 계월향(桂月香)이 있었다. 1592년 12월 조선이 본격적인 평양 수복작전을 펼칠 때 적에게 포로로 잡혀 있던 계월향은 문루에 있다가 성 밖에서 기밀을 탐지하던 김응서를 ‘난리 중에 헤어진 오라버니’라고 속여 성 안으로 불러들였다.

그날 밤 김응서는 술에 만취된 왜장의 목을 베고 계월향과 탈출한다. 그러나 말을 탈 줄 모르는 계월향은 탈출이 지체되자 김응서를 혼자 보내고 자결한다. 장수를 잃은 왜군은 대혼란에 빠지고 마침내 이듬해 1월 초 평양성은 수복됐다.

진주의 논개와 함께 대표적인 의기로 꼽히는 ‘계월향’의 영정이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8월 11일까지 조선시대에 그려진 ‘평양의기 계월향 영정’(70×105㎝·사진)을 박물관 ‘새 자료와 보존처리’ 코너에서 전시한다.

영정은 1815년에 그려져 평양 장향각에 봉안됐던 것으로 코·목선·인중 등 특정 부분만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얼굴 윤곽, 코선, 목덜미 등을 따라 붉은 계열의 음영을 짙게 넣었는데 이는 19세기 초상화에서 거의 볼 수 없는 표현 방식이다. 조선미 성균관대박물관장은 “조선 기생의 평균적인 연령으로 추정했을 때 십대 소녀로 보이며 자태가 매우 곱고 표정이 살아있다”고 설명했다.

계월향 영정은 국왕 초상화와 함께 남성 위주의 영정만 전해지는 현실 속에서 여성이자 기녀의 영정이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머리를 크게 올려 꾸민 형식, 저고리에 달린 향노리개 등 영정을 통해 당시 복식도 엿볼 수 있어 박물관 측은 미술사, 복식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도 관심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도 계월향을 모시는 제사는 매년 이어지고 있다. 평양 6문의 하나인 대동문 옆 강변 언덕에는 임진왜란 당시 계월향이 강물로 뛰어든 연광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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