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미래 통찰력 갖고 소비자 운동 주도
생명과 평화 공존하는 선조들 지혜 배워야

미국산 쇠고기가 두달이 넘게 거리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값싸고 맛있는 쇠고기를 먹게 하겠다는 대통령과 먹거리의 안전은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양보될 수 없다는 시민들의 인식의 차는 광화문네거리에 쌓여올려진 컨테이너 만큼이나 높아보인다. 

5월 2일 소녀들의 작은 촛불로 시작된 이 공간에서 가장 빛나는 주인공들은 바로 여성들이다. 

당차고 똑똑한 소녀들은 광우병의 위험이 자신들의 미래와 연관되어 있다는 통찰을 해내고 있었고 흔히 콩나물 값도 깎는 모습으로 희화화되는 주부들이 먹거리의 안전은 거래의 대상일 수 없다며 우리 사회의 경제지상주의적인 통념을 뒤집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모인 개념찬 (?) 언니들은 더욱 나아가 안전한 먹거리를 위한 자신들의 요구를 괴담이라 부르는 보수언론과의 싸움도 주저하지 않고 역사상 유례 없는 광고중단운동이라는 새로운 소비자운동을 주도하기에 이르렀다.

2008년 여름 우리는 먹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경험을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후추를 찾으려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이야기나 영국의 감자흉년이 미국을 만들었다든지 그런 진부한 예들을 찾지 않더라도 먹거리는 개인 삶을 너머 인간의 삶의 전 영역, 아니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의 삶과 연결되어 인류역사에 굵직한 변화를 만들어 왔다. 

가축은 오랜 역사 동안 인간에게 고맙고 귀한 존재였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이  인간은 소화할 수 없는 풀과 식물의 줄기 등의 단단한 섬유질을 가축들은 되새김 기관에 있는 미생물들의 도움을 받아 분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덕택에 곡물을 먹는 인간과 평화로운 공존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값싸고 맛있는 고기를 향한 인간의 욕망은 공장제 축산시스템을 보편화하고 가축에게 곡물사료를 주고 그것도 모자라 동물성 사료까지 급여하며 가축도, 그  고기를 먹는 인간도 불쌍한 지경을 만들어내었다.

그 결과  지구의 한편은 광우병프리온을 통제하기위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불안에 떨고 있고 다른 한편은 하루가 다르게 폭등하는 곡물가격으로 인해 기아와 내전의 위험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옛날 시골 외갓집 갔을 때의 기억이다. 우리의 옛 어른들이 모두 그랬듯 우리 할머니에게도 부엌은 신성한 공간이었다.

밥을 지을 때 뭇 생명을 위해 쌀한 술을 덜어내 모으고 쌀 한 톨 수채구멍에 허투루 나가는 일 없게 조심조심이셨다.

할머니의 지혜와 엽렵함으로 기획되는 찬들은 지금 말로 웰빙 그 자체, 가족을 향한 기도와 정성이 담긴 소박한 밥상에는 뭇 생명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삶이 담겨 있었다.

아직도 촛불정국은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촛불의 거리에서 많은 이들이 먹거리를 통해 우리 문명의 진로와  우리들의 삶의 양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더욱  반가운 일은 이땅의 많은 손녀들이 개념있는 먹거리와 생명의 존엄한 가치에 편들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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