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 싸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출산휴가·정년퇴임 등 여기자 지위향상 최선두
시니어 여성 언론인 권리 찾기에 최선 다할 것
“평생 머슴애들하고 싸운 기억밖에 없어요. 기자 시절엔 여기자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출산휴가를 주지 않는 관행을 깨려고 싸웠고, 퇴임 후 지금은 언론계 성차별 관행을 없애기 위해 싸우는 후배 현직 여기자들을 지원하고 저와 같은 시니어 여성언론인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우고 있죠.”
여성부가 13회 여성주간(7월1~7일)을 맞아 선정한 유공자 가운데 최고상인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한 신동식(71) 한국여성언론인연합 대표를 지난 6월 3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신 대표는 “다 늙어서 상을 받으려니 창피하고 쑥스럽다”면서도 “현직에 있는 유명 여기자들마저 아무도 몰래 소리 없이 운 적이 한두 번은 있다는 고백을 들으면서 선배 언론인으로서 후배 여기자들의 지위 향상을 위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는 말로 수상 소감을 대신했다.
신 대표는 한국 여기자들의 불평등한 현실을 처음으로 공식 제기한 인물로 유명하다.
1960년대 서울신문 재직 당시 두 번의 출산을 위해 사표를 내고 곧바로 복직했다. 당시만 해도 신문사 내규에 출산휴가 규정이 없었다.
신 대표는 “남자기자들이 임신한 자기 부인에게는 몰래 안부전화를 걸면서도 동료 여기자가 임신하고 출산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안 하던 시절이었다”며 “출산을 한 달 정도 앞둘 때까지 살인현장을 누비며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 출산휴가 신청이 반려됐다”고 회고했다.
결국 신 대표는 사표를 냈고, 출산 후 한 달 반 만에 다시 복직을 신청했다. 둘째를 가진 후에도 출산휴가 규정이 만들어지지 않아 사직-복직 과정을 한 번 더 반복해야 했다. 신 대표의 출산휴가 투쟁 덕분에 그 이후부터 언론사에 출산휴가 규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신 대표는 ‘정년퇴임한 첫 여성언론인’이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퇴임을 10개월 앞둔 1996년 11월 당시 서울신문 논설위원이었던 신 대표는 새로 생긴 사장실 직속 심의실로 발령을 받았다. 그리고 3개월 만에 심의실 폐지 조치가 내려졌고, 명예퇴직을 강요당했다.
“여기자에게는 정년퇴임을 못 주겠다는 거였죠. 당시 같이 심의실에 발령 받은 남자기자 6명은 퇴직금 4500만 원을 받고 순순히 나갔지만 저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잠을 아껴가며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신 대표는 곧바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소송을 냈고, 승소와 서울신문 측의 항소, 다시 승소를 반복하다 6개월 만에 복직됐다.
신 대표는 “이 사건 이후로 여자라는 이유로 도중하차되는 불명예가 사라졌다”며 “남자보다 월등히 일을 잘해야 자신감이 생기고 그래야 부당한 관행에 투쟁할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생긴다”고 말했다.
신 대표의 이런 ‘고집스런 고생’은 퇴직 후에도 계속됐다. 3년 전 한국언론재단 이사로 재직하던 당시 ‘낙하산 인사’ 반대운동에 적극 나섰다가 며칠 만에 프레스센터에 있던 한국여성언론인연합 사무실이 없어진 것이다.
신 대표는 “당시 방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댔지만 실은 자기 뜻을 거부한 데 대한 보복행위 아니었겠느냐”며 “시니어 여성언론인들의 유일한 집필공간이자 현직 여성언론인들의 구심적 역할을 하는 공간을 되찾기 위해 계속 투쟁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신 대표는 1962년 서울신문에 입사해 18년간 남성 기자들도 혀를 내두르는 사회부 기자로 맹활약했다. 운동화만을 고집하며 발로 뛴 결과 ‘4·19 발포 주범 최인규 가족 브라질 이민 신청(1963)’ ‘주한 모 외국대사관 녹용밀수 사건(1965)’ ‘가정의례준칙 법제화(1973)’ ‘의료보험제도 도입 계획(1977)’ 등 총 일곱 번의 특종상을 거머쥐었고, 1984년에는 ‘제1회 최은희 여기자상’을 수상했다.
이후 수도권부 부장, 생활과학부 부장, 편집위원,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1998년 정년퇴임한 뒤 99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여성언론인연합 대표를 맡아 후배 여성언론인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신 대표는 “미국은 82세 여기자들도 백악관 출입을 하는데 우리나라 여기자들은 45세만 넘어도 퇴출 대상이 된다”며 “여기자 차별을 없애기 위한 투쟁과 함께 언론계에서 여성의 자리를 굳히고 향상시키는 데 앞으로도 힘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