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찬 여성가수 김윤아

1990년대 홍대 앞을 주름잡던 그룹 ‘미운오리’의 김윤아, 이선규(기타), 김진만(베이스), 구태훈(드럼)은 1997년 영화 ‘꽃을 든 남자’에 삽입된 노래 ‘Hey Hey Hey’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미운오리’에서 ‘자우림’으로 이름을 바꾼 그들은 ‘밀랍천사’ ‘일탈’ ‘애인발견’ 등 엄청난 히트곡을 쏟아낸 1집 앨범으로 모던 록 그룹의 선두주자에 올라서게 된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것은 역시 김윤아였다. 예쁘장한 외모와는 달리 출중한 음악적 재능과 거침없는 언행으로 굳센 로커의 이미지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다른 음악에 비해 남성적이라는 시선이 강한 록 신에서 이름 석 자가 밴드를 대표하는 여성은 드물었다. 결국 김윤아는 지극히 마이너적인 음악으로 메이저에서 성공의 깃대를 꽂았고, 특히 여성팬들의 집중적인 환호를 불러 일으켰다.

이후 여성 보컬을 앞세운 모던 록 밴드가 범람하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자우림을 그 역할모델로 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어느 정도 알려진 ‘체리필터’ ‘럼블피쉬’ ‘스웨터’를 비롯해 ‘뷰렛’ ‘시베리안 허스키’ ‘아일랜드 시티’ 등 인디 밴드까지 수많은 ‘포스트 자우림’은 등장할 때마다 김윤아와 비교를 당해야만 했다.

자우림의 팬들, 그중에서도 여성들이 김윤아를 추종하게 되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일단 그녀의 음악이 곧 자우림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른 멤버에 비해 상당한 비중을 자작곡으로 채우며 자우림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김윤아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멤버가 만들었던 그룹 ‘초코크림 롤스’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던 것은 대중이 자우림에게 갖는 기대치가 상당 부분 김윤아의 음악에 쏠려 있음을 방증한다.

둘째로 김윤아가 갖고 있는 다채로운 이미지가 큰 몫을 한다. 자우림 초기에 그녀는 노숙자 문제를 다룬 ‘이런데서 주무시면 얼어 죽어요’, 자살을 소재로 한 ‘낙화’, 외모 지상주의를 꼬집은 ‘미쓰 코리아’ 등 사회 비판적인 가사로 ‘시대를 대변하는 가수’의 이미지가 확고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화장품 CF에 출연해 얼굴마저 아름다운 여인이 됐고, 솔로 앨범을 통해서 우울한 내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녀의 감성적인 면모에 빠지자마자 ‘하하하쏭’을 들고 나와 밝고 건강한 이미지마저 김윤아의 이름 안에 흡수했으니, 사람들은 그녀의 팔색조 같은 매력에 눈을 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여장부의 대범함을 들 수 있다. 그녀는 자우림 음악의 상업성 논란과 자신의 성형설에 ‘헛소리는 집어 치워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반박글을 올리기도 했고, ‘하하하쏭’이 표절 시비가 붙은 노래에 대해서는 “그 곡은 표절해서 사용하고 싶을 정도로 모던하고 스타일리시 하지 않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행동에 숨어 있는 강단은 곧 자기 음악에 대한 자부심과 언행에 대한 책임감으로 해석됐다. 가수에게 불리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쉽게 희생양이 되었던 여성들에게 그녀의 당당함이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어느 면에서 보나 김윤아는 음악적, 사회적으로 여성의 새로운 위치를 대변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도 현재 ‘마담 B의 살롱’을 운영하며 신곡 ‘카니발 아무르’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그녀는, 능력 하나로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음을 알려준 이 시대의 프런트 우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