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 풋풋한 ‘스피커 통신’
사람 냄새 풋풋한 ‘스피커 통신’
  • 박효신 / 여성신문 편집위원, 전 온양민속박물관장
  • 승인 2008.07.04 12:01
  • 수정 2008-07-04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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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세상에서 희귀한 일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 ‘뽕짝’ 노래나 반주가 나오면 고개 빼고 ‘워워워’ 노래하는 시골 개가 소개된 적이 있다. 다른 음악에는 전혀 반응이 없다가 뽕짝만 나오면 바로 반응을 보이는 그 개가 세상에 신기한 일인 듯 호들갑을 떨며 소개되고 있었다.

“별 일도 아닌 것을 갖고 수선은. 우리 동네 누렁이들은 스피커에서 노래만 떴다 하면 온 동네 집집마다 합창하고 난리인데.”

그때 나는 리포터나 진행자들이 더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시골 개들은 거의 다 그런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모르다니.

“하기야 도시에서만 살아온 사람들이 ‘스피커통신’ 문화를 알 리 없지.”

시골에는 광통신도 아니요, CDMA도 아니요, 와이브로도 아닌 ‘스피커 통신망’이란 것이 있다. 사람 사는 냄새 물씬 나는 아주 중요한 통신수단이다. 몇 가지의 스피커 통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장님이 주민들에게 날리는 통신이다.

“아,아,아, 행복리 주민 여러분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오늘 행복리에 사시는 홍길동씨가 아버님의 팔순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점심을 내겠다고 하오니 한 분도 빠짐없이 홍길동씨 댁으로 가셔서 맛있는 점심을 드시기 바랍니다.”

동네 경조사는 마을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스피커를 통해 주민들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그뿐인가. 면사무소에서 농협에서 공지할 행정적인 정보도 이 스피커를 통해서 주민들에게 전달된다.

“오는 ×월 ×일부터 비료 값이 ×% 인상된다고 합니다. 비료 구매를 계획하고 계시는 주민 여러분께서는 값이 오르기 전 구매를 서둘러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교육감 선거일입니다. 아직 투표 하시지 않은 주민들은 오후 8시까지 투표가 계속된다고 하오니 지금 바로 투표장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특히 우리 행복리의 투표율이 가장 저조하다고 하오니 한 분도 빠짐없이 투표에 참여하여 주시기를 거듭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이 스피커 통신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뽕짝’이다. 느닷없이 방송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멘트를 날리기 전 한 5분 동안 ‘뽕짝’을 깔아주는 것이다.

처음 시골로 이사 왔을 때 아침 일곱 시면 갑자기 마을을 쩌렁쩌렁 울리는 이 ‘짠짜라쨘’ 음악에 얼마나 놀랐던지. 그러나 스피커 통신은 이것뿐이 아니었다.

“유리가 왔어요. 깨진 유리 갈아 끼웁니다. 고장 난 문짝, 방충망 고쳐요.”

“고물 삽니다. 고물 팔아요. 고장 난 모타, 곤로, 농기계, 오토바이 삽니다. 후라이팬, 냄비, 밥솥, 양은그릇, 스텐그릇 삽니다.”

“고추 삽니다. 물고추 마른고추 각종 잡곡 삽니다.”

“싱싱한 생선 왔어요. 갈치 오징어 꽃게 자반고등어 새우젓 조개젓 명란젓.”

트럭에 스피커를 달고 동네를 도는 모든 ‘스피커 통신’들이 대개 뽕짝을 동반하고 등장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어텐션 플리즈’인 것이다. 그런데 개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악이 바로 이 ‘뽕짝’이란 사실을 그때 알았다. 스피커에서 ‘뽕짝’만 등장했다 하면 우리 집 누렁이도, 건너 집 검둥이도 모두 머리를 하늘로 치켜들고 음악에 맞추어 노래를 하는 것이다. ‘뽕짝’이 동물들의 뇌에 작용하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뽕짝’을 날리며 트럭이 등장했다. 광희네 얼룩이가 제일 먼저 독창을 시작한다.

“엄청나게 맛있는 보리로 만든 건빵이 왔습니다. 옛날 먹던 알사탕, 달고 맛있는 알사탕이 왔습니다.”

알사탕. 며칠 전 서울 올라갔을 때 누가 하나 주어 평생 처음 먹어본 ‘츄파춥스’가 생각난다. 왜 사탕에 막대기를 붙여 그리 먹기 힘들게 만들었는지…. 입안에서 요리조리 달달 구르지도 않고 침과 섞인 단맛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도 않아 어찌나 먹기 불편하던지. 나는 스피커 소리 다가오길 기다려 알사탕 한 봉지를 샀다.

“그려, 사탕이 이래야지. 역시 우리 것이 좋은 것인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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