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생 촛불시위 배후는 ‘80년대 시위경력’ 부모?
현실과 타협하며 살지만 민중의 삶 관심은 여전

나는 전형적인 386이다. 전두환 정권의 폭압이 극에 달했던 1983년도에 대학에 입학했다. 학교 앞에는 늘 전경버스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학교 안에도 일명 ‘짭새’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시위가 있을 때면 전면에 나서지는 못하고 뒤에서 돌 깨는 일을 주로 했다. 4학년이 되면서 도서관에 틀어박혔지만 최루탄 냄새가 도서관까지 밀려들어올 때면 늘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러나 대학원에 입학하던 해 6월에 나는 결국 거리로 나섰다. 1987년 6월 항쟁의 와중에 남동생도 밤마다 멍투성이가 되어 귀가하곤 했다.

그 후 2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386은 많이 타락했다. 전교조를 탄생시켰던 386은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결국 자녀들에게 고액 과외를 시키면서 특목고, 과학고, 외고에 보내기 위해 안달한다.

자본주의가 파생시킨 부익부 빈익빈의 모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든 강남에 입성하려 하고, 빈민들의 삶이야 어떻든 내가 사는 아파트 값이 치솟기를 바란다. 진보 정권이 들어서서 386이 대거 고위권력층에 편입되었지만 현실 정치에는 너무 아마추어였고 권력형 비리와 부정도 만만치 않았다.

심지어 이번 대선에서 386은 대거 보수진영에 합류했다. 서울에 사는 386은 대부분 아파트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과 뉴타운 추가 지정이라는 미끼에 쉽게 현혹되었다.

서울에서 아파트값이 가장 싼 동네에 사는 나도 이웃 동네의 뉴타운 개발 영향으로 아파트 값이 조금 오르니 기분 좋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뉴타운이 아무리 많이 지정되어도 원래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뉴타운에 입주하기는 어렵다. 도시 빈민들은 뉴타운의 화려한 조감도를 뒤로 한 채 더 외곽으로 밀려난다.

광우병 사태가 벌어지자 386은 다시 정신을 차린 듯하다. 어떤 모임을 나가도 386들은 광우병에 대해 진지하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인터넷에도 강한 386은 광우병에 대한 온갖 논쟁과 괴담을 섭렵하여 자기 나름의 정연한 논리를 펼친다. 과거에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너무나 어려운 과학·의학 용어들을 동원해가며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광우병에 대한 지식을 뽐낸다. 나는 그런 자리에서 문득 광우병과 관련하여 촛불시위를 처음 시작한 중고생들이 바로 386의 아이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386 부모들은 밖에서뿐만 아니라 아침저녁 식탁에서 부부끼리도 광우병에 대한 신랄한 논쟁을 펼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가정 분위기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어떻게 시국에 무관심할 수 있겠는가.

며칠 전 보수우익 단체들의 집회를 알리는 한 신문광고에서 “중학생이 ‘이명박 타도’를 외치면 그 학생의 부모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라는 글귀를 읽었다. 또 이명박 대통령도 촛불시위의 배후를 밝히라고 했단다. 나는 어쩌면 중고생 촛불시위의 배후가 바로 그 부모들인 386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86세대는 자신의 부모들로부터 “데모하면 등록금 못 준다”거나 “다리몽둥이를 분질러버린다”는 험한 협박을 들으며 대학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제 대부분 중고생 자녀를 둔 386은 아이가 촛불시위에 나가겠다고 하면 양초를 사주거나 아예 촛불시위에 함께 나갈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대선에서 386마저 보수로 돌아섰다고 너무 속단했는지 모른다. 386은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지만 한편으론 그런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민중의 삶에 대한 관심을 쉽게 놓아버리지 않는다. 광우병 협상에 앞서, 지난 10년간 진보정권을 일궈냈던 386이 지난날에 미국문화원을 점거하고 불까지 질렀던 바로 그 세대라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했다면 좀 더 진지하게, 신중하게 협상을 처리해야 했다. 이 나라의 안보를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보수 세력의 무의식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러기 아빠가 될망정 뿌리 깊은 반미감정을 가지고 있는 386의 정서를 헤아려야 했다. 30년 넘는 군사정권을 끝장냈던 386의 존재를, 그리고 그 자식들과 또 그 자식들의 힘을 무시하지 마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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