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현장에서 10대 소녀들을 만나다
촛불집회 현장에서 10대 소녀들을 만나다
  • [특별취재팀] 권지희·주혜림·김재희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8.06.05 14:42
  • 수정 2008-06-05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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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공동체의식 온몸으로 느꼈어요”
촛불시위 주역 ‘가장 정치적 존재’로 급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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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출근할 때 기름 값, 엄마가 시장갈 때 미친 소, 우리가 학교 갈 때 0교시, 우리는 수면시간 4시간. 우리는 민주시민 촛불소녀들. 미친 소, 민영화, 대운하, 싫어!”

요즘 촛불시위 현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노래다. ‘뽀뽀뽀’를 개사했는데, 가사에 촛불시위 메시지가 모두 담긴 데다 짧고 재미있어 행진 때마다 자주 불린다. 10대 소녀 10여 명이 만들었다. 이들은 인터넷 카페 ‘촛불소녀’(cafe.daum.net/candlegirls)에서 만나 오프라인 공간에서 ‘촛불소녀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5월 31일 오후 촛불집회가 열린 서울시청 광장에서 만난 한채민(안양예고 2)양도 촛불소녀단 멤버다.

오늘로 16번째 참여했다는 채민양은 “그동안 입시 때문에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었는데 요즘에는 신문도 열심히 챙겨보고 인터넷 토론방에 들어가 의견도 올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언론이 ‘배후설’을 거론할 때마다 화가 치민다고 했다.

“우리가 어리다는 이유로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생각은 너무 위험한 거 아닌가요? 당장 2010년 지방선거부터 투표해야 하는데 사회현안에 무지한 상태로 참여하는 건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거잖아요.”

똑 부러지는 말솜씨가 어른들 못지않다.

지난 5월 2일 첫 촛불집회 때부터 참가했다는 박수선(가명·문산여고 2)양은 학교 선생님들에게 크게 실망했다고 털어놨다. 

“촛불 든 모습이 뉴스에 나왔는데 다음날 담임선생님이 ‘너 이러다 대학 못 간다’고 말씀하셨어요. 며칠 전에는 학교에서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고, 촛불집회는 불법이니 학생들은 참여하지 말라’는 공문을 나눠주고요. 학교는 우리가 바보인 줄 아나 봐요. 솔직히 0교시 부활이다, 영어몰입 교육이다 해서 학생들 힘들게 한 게 누군데요.” 

수선양은 "성적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테니 걱정 말라"며 촛불소녀단 무리 속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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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정치적 존재’로 거듭나다

10대가 바뀌고 있다. 아니, 이번 촛불집회는 ‘교과서 속 10대’가 아닌 ‘땅에 발 딛고 선 10대’를 제대로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동안 ‘나이 어린 여성’이란 이유로 가장 비정치적 존재 취급을 받았던 10대 소녀들. 그들은 지금 거리에서, 또 온라인 공간에서 가장 정치적 존재로 우뚝 서서 촛불시위의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직접 만나본 그들은 몸으로 부딪쳐 얻는 경험과 생각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고교 1학년인 송조은 양은 처음엔 “광우병 때문에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아서” 촛불집회에 나왔다. 실제로 집회 초기 대다수 10대들은 ‘죽음의 공포’를 호소했다.

하지만 조은양은 “시위가 거듭될수록 내가 노력하면 미래를 안전하게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촛불시위를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같은 생각을 공유하면서 진짜 공동체가 무엇인지 몸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민주시민이 되어가고 있다는 자부심도 생겼고요.”

용기를 내 오늘 처음 참여했다는 고등학교 3학년 입시생 신승희 양은 “오늘 집을 나설 때 부모님은 혹여나 다칠까 걱정하셨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빨갱이’라며 말리셨다”며 “어른들 세대는 그렇게 배우고 자라셨으니까 어쩔 수 없지만, 우리 세대부터는 제대로 배우고 올바른 판단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8번째 참여하고 있다는 이은주(가명·초등 6)양은 “많은 이들이 한목소리를 내니까 대통령이 사과도 하고 정치인도 물러나더라”며 “나이는 어리지만 시위에 참여하면서 우리에게 사회를 움직일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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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 시위문화를 이끌다

집회 현장 주위를 둘러보니 한 여고생이 제 몸집만 한 봉투를 들고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하루이틀 솜씨가 아니었다. 다가가 이유를 물었다.

표소진(일산 중산고 3)양은 “쓰레기 때문에 촛불시위에 동참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변질되는 것이 싫어서”라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작은 봉지를 챙겨와 자기 쓰레기만 챙겨갔는데, 사람들이 쓰레기 처리에 곤혹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고는 큰 봉지를 가져오게 됐다는 것.

소진양은 “정치인들은 말로는 미래세대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지만 우리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조차 없게 차단하고 있다”며 “아이러니하게도 어른들이 만든 통신기술이 우리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당하게 표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10대들은 386 운동권 세대 위주의 시위 스타일도 싹 바꿔버렸다.

경찰이 확성기를 잡으면 “노래해, 노래해”를 주문한다. “불법집회를 한다”고 경고방송을 하면 “개인기, 개인기”를 외친다. 집으로 돌아가라는 해산 권고엔 “퇴근해, 퇴근해”가 튀어나온다. 물대포에도 “온수, 온수” “물 절약, 수도세”로 맞설 정도다.

두 손엔 돌멩이 대신 휴대전화와 캠코더, 노트북을 들고 시위 현장을 생중계한다. 24시간 인터넷 중계방송을 보다 시위 현장에 뛰쳐나온 10대들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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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문화 맛보며 네트워크 주도 

10대, 그것도 여학생들이 촛불시위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촛불소녀’ 마스코트를 만들어 주목을 받은 나눔문화연구소에서 회원으로 활동하는 권소영(27)씨는 ‘팬클럽 문화의 연장선’이라고 풀이했다.

권씨는 “여학생들이 주도하는 팬클럽은 적극적·민주적 절차에 의해 운영되는 하나의 사회조직”이라며 “팬클럽 활동을 통해 스스로의 생각을 표출하고 공론의 장을 만들어 실행하는 데 익숙한 여학생들이 촛불시위에 앞장서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조은 양도 “성별에 관계없이 광우병에 대한 관심은 비슷하다. 다만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여학생들이 더 적극적인 것 같다”며 “내 친구들만 보더라도 여학생들이 훨씬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손봉희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새로운 네트워크 구축’에 무게를 뒀다.

손씨는 “개인주의 문화에 익숙했던 청소년들이 시위 현장에서 연대문화를 맛보며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다”며 “지금까지 청소년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방편이 공부밖에 없었다면, 촛불시위 참여는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자신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척도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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