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사, 광통교에 서린 조선 왕후들의 삶과 눈물
청룡사, 광통교에 서린 조선 왕후들의 삶과 눈물
  • 채혜원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8.05.16 10:34
  • 수정 2008-05-16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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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속 ‘허스토리’ 현장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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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운명에 호되게 뒤통수를 얻어맞고 무릎을 꺾인 사람들입니다. 명분과 도리 그 미명과 훈계에 밀려 자기 몫의 생애를 송두리째 저당 잡혔지요. 아버지라는, 남편이라는, 아들이라는 하늘이 진동하는 대로 돌풍에 찢기고 뇌우에 쓸려 청맹과니로 땅바닥을 기어야 했지요.”

정순왕후의 애달픈 삶과 사랑을 그린 김별아 소설 ‘영영이별 영이별’에는 당시 여인들의 슬픔과 그들의 운명을 통감한 정순왕후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15세에 왕비가 되었다가 18세에 세조에 의해 궁궐에서 쫓겨난 정순왕후는 권력의 핵에서는 밀려났지만 민초들의 사랑은 잃지 않았다.

서울 동대문역에서 가까운 청룡사라는 절 옆에 있는 ‘동망봉’은 단종이 죽은 영월 땅을 향해 정순왕후가 통곡할 때마다 동네 여인들이 땅 한 번 치고 가슴 한 번을 치는 동정곡(同情哭)을 나누며 동참한 곳이다.

이 외에도 청계천 근처에서 당시 여성들은 가슴 속 깊은 상처로 끼니조차 제대로 이을 수 없었던 정순왕후에게 푸성귀와 같은 먹을거리를 전하기 위해, 남자들은 출입할 수 없는 여인시장을 만들기도 했다. 단종이 죽자 왕후가 18세에 머리를 깎고 여생을 보낸 곳이 바로 동대문 청룡사에 위치한 ‘정업원구기’란 곳이다.

이 외에도 동대문 근처 곳곳에는 정순왕후의 ‘허스토리’가 당시 여성 민중의 따스한 마음과 함께 살아 숨쉬고 있다.

 

종로구청은 지난달  정순왕후를 기리는 행사를 처음으로 개최했다. 사진은 단종과 정순왕후가 유배를 앞두고 이별한 곳으로 알려진 청계천 영도교부터 가장행렬을 하고 있는 모습.  sumatriptan patch sumatriptan patch sumatriptan patch
종로구청은 지난달 정순왕후를 기리는 행사를 처음으로 개최했다. 사진은 단종과 정순왕후가 유배를 앞두고 이별한 곳으로 알려진 청계천 영도교부터 가장행렬을 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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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청
역사(history) 속에서 삭제되거나 비틀렸던 여성들의 역사 ‘허스토리’(herstory) 발굴 작업이 최근 더욱 활발히 일고 있다. 지금까지는 여성학자들이 전국 곳곳의 여성인물을 발굴해 답사를 떠나거나, 여성단체에서 역사 속 여성인물을 찾아가는 투어를 진행하는 식으로만 ‘허스토리’를 발굴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관공서에서도 역사 속 여성인물의 허스토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달에는 정순왕후를 기리는 문화제가 종로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종로구가 정순왕후가 폐위된 뒤 줄곧 살던 종로구 숭인동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등지에서 추모제와 재연행사 등을 연 것이다.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영릉봉향회와 세종대왕유적관리소는 세종대왕비 소헌왕후 심씨의 기신제(忌晨祭)를 매년 경기도 여주 세종대왕릉에서 거행하고 있다.

허스토리 발굴 작업의 한계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역사 속 여성인물에 한해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명성황후, 문정왕후처럼 왕비 능이 있거나 궁궐 속에 역사가 기록되어 있지 않은 한 여성인물에 대한 허스토리 발굴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본지는 서울에서 쉽게 찾아갈 수 있으면서도 잘 조명되지 않았던 ‘태조비 신덕왕후’와 ‘신정왕후 조씨’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그늘의 역사 속에서도 족적을 남긴 그녀들의 역사 속 허스토리를 찾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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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비 신덕왕후 강씨 (청계천 광통교-정릉)




청계천의 다리 22개 중 역사적 의미가 실제로 남아 있는 유일한 다리로 불리는 ‘광통교’. 이곳에는 신덕왕후 강씨의 숨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조선 태조의 두 번째 부인이었지만 태조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던 신덕왕후는 자신의 아들 방석이 세자로 책봉되면서 이방원으로부터 온갖 핍박을 받게 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자신의 아들과 사위가 모두 살해되는 ‘왕자의 난’(1398년)이 일어나기 전에 강씨는 죽게 되고 태조는 강씨를 아꼈던 만큼 능 조성에 정성을 들였다.

하지만 태조가 죽으면서 서모 수준으로 강등 당했고 그 과정에서 석물들은 모두 버려진 채 능만 현재 성북구에 있는 정릉(한성대입구 역 근처)으로 이장하게 된다. 그 당시 버려졌던 석물들이 바로 1410년 광통교를 개축하면서 쓰이게 된다. 태종 이방원이 강씨 무덤돌로 다리를 만들어 사람들이 그것을 밟고 지나가게 함으로써 강씨에게 맺힌 분한 마음을 토로한 것이다. 정릉은 그 후 왕비릉인지도 모를 정도로 잊혀지다가 300여 년이 흐른 조선 후기 현종대에 와서야 왕비로서 신원이 복원된다. 



 

조대비가 막강한 영향력을 펼쳤던 경복궁 자경전.
조대비가 막강한 영향력을 펼쳤던 경복궁 자경전.
신정왕후 조씨 (쌍호정 터-광륜사-경복궁 자경전)



남편 효명세자가 22세의 나이에 죽어 왕비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철종 사망 후 고종을 재빨리 양자로 들여 왕위에 오르게 한 조대비. 조선 후기 60여 년간 안동 김씨 세도정치를 끝내고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잡기까지 그 막후에는 그녀의 협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이 직접 대왕대비로서 수렴청정을 할 수도 있었지만 기꺼이 흥선대원군에게 권력을 양보했던 여성인물로도 평가되고 있다.

성동구 옥수동 195번지에 위치한 ‘쌍호정’은 조대비가 태어난 곳이며 도봉산역에 위치한 ‘광륜사’는 조대비의 별장 터다. 신정왕후가 궁궐에서 살았던 경복궁 자경전은 고종이 왕위에 즉위하는 과정에서 조대비가 막강한 영향력을 펼쳤던 곳이다. 고종 무렵 몇 차례 화재로 재건을 거듭했지만 다행히 자경전만은 일제의 훼손을 피해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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