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여성 지위 바꾼 ‘68혁명’
프랑스 여성 지위 바꾼 ‘68혁명’
  • 한경미 / 번역가, 자유기고가, 통신원
  • 승인 2008.05.16 10:18
  • 수정 2008-05-16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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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질서 항거’하는 대학생 운동이 여성에 번져
법적남녀동등·유산권 요구, 남편폭력 대항도

 

1968년 5월 29일, 파리에서 68혁명에 참가하고 있는 젊은 여성들. (사진 Gilles Caron/Contact Press Images)gabapentin withdrawal message board gabapentin withdrawal message board gabapentin withdrawal message board
1968년 5월 29일, 파리에서 68혁명에 참가하고 있는 젊은 여성들. (사진 Gilles Caron/Contact Press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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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하나

친구 집에 우리 커플이 초대 받았다. 와인 한 병과 작은 꽃다발을 하나 들고 초대된 시각에서 5분 정도 지난 후에 도착하니(프랑스에서는 초대된 시각에서 5~10분 늦게 도착하는 것이 예의. 손님 접대 준비에 바쁜 사람들에게 시간을 준다는 배려에서다) 아내가 반갑게 문을 열어준다. 거실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앞치마를 두른 남편이 부엌에서 나온다.

식사 전에 마시는 아페리티프 안주에서부터 디저트에 이르기까지 이날 음식은 전부 남편의 솜씨였다. 그는 부엌을 수시로 들락날락 하긴 했어도 우리와 저녁 식사 내내 토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프랑스 음식이라는 것이 한두 가지만 준비하면 되고 또 요리법도 음식재료를 주로 오븐에 집어넣고 한참 익히면 되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아내는 식탁을 차리는 일을 담당했고 간혹 부엌에 들어가서 남편의 음식 준비 상황을 살펴보는 정도였다.

# 한국 하나

새로 집을 사서 이사 간 직장 동료의 집들이에 초대받았다. 방 한가운데에는 이미 커다란 상이 상다리가 부러져라 차려져 있었고 동료 부부가 나와서 손님들을 맞이한다. 여럿이 방안에서 먹고 마시는 동안 동료 부인은 계속 부엌에서 음식 준비를 하고 있다. 모든 재료를 잘게 썰어야 음식이 되는 데다가 한두 가지 음식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한국음식의 준비 시간은 기하학적으로 늘어난다.

손님들은 새로운 음식을 장만해서 들고 나오는 그녀의 얼굴을 잠깐씩 볼 수 있을 뿐이다. 주부가 손님과 같이 자리에 앉아서 먹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다.  

# 프랑스 둘

하루는 후배 커플을 집에 초대했다. 프랑스인인 후배 남편이 부엌에서 거실로 음식 나르는 것을 거들어 주더니 식사가 끝난 후에 설거지까지 해주고 갔다. 이 남편은 원래 음식을 즐겨 해서 먹는 사람으로 집에서도 거의 음식 만드는 일을 전담하고 있어 항상 후배를 부러워하고 있는데 초대받은 남의 집에 와서 설거지까지 하고 간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는 드물긴 하다.

# 한국 둘

친구나 동료 집에 초대받은 남자는 점잖게 앉아서 음식 접대를 받고 오는 게 관례다. 초대된 집의 부엌에 들어가서 음식 준비를 돕는다거나 식탁을 차리는 것을 돕는 것은 상상 속에서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도 부엌이 여성만의 전용 공간으로 간주되었던 적이 있었다. 현재 60대 이상의 세대의 남자는 거의 부엌 출입을 하지 않은 세대로, 어렸을 때는 엄마가, 결혼 후에는 아내가 해주는 음식을 받아먹기만 했다.

결국 프랑스도 여성의 지위가 처음부터 남자와 동등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동양에서 여성의 지위를 억압했던 것이 유교주의라면 서양에서는 가톨릭이 같은 역할을 해왔다. 아담의 허리뼈를 뽑아 아담이 심심하지 않도록 만든 부수적인 인물이 이브이지 않은가?

처음으로 프랑스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된 것은 1945년이었다. 미국이 1920년, 영국이 1928년인 것에 비하면 매우 늦은 편이다. 한 지금으로부터 43년 전인 1965년만 해도 프랑스에서 결혼한 여자는 미성년자로 간주되어서 본인의 은행 계좌도 남편의 동의 없이는 열지 못했고 직업 활동도 남편의 동의 없이는 할 수 없었다.

대다수의 여성이 집안에서 육아와 가사 활동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간혹 자유영업을 하는 남편을 도와 같이 일을 하는 경우에도 월급 없이 일하는 식이었다. 결혼과 출산이 맞바로 이어지고 피임이 불법인 상태에서 해마다 출산의 부담을 가져야 했던 여성들은 불법으로 임신중절을 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피임을 승낙하는 Neuwirth 법이 발표된 것은 1967년에 이르러서였다.

그러나 ‘68혁명’을 거치면서 프랑스 여성의 위치가 바뀌게 된다. 올해로 40주년을 맞는 68혁명은 모든 형태의 권력을 부정하며 기존의 사회질서에 강력하게 항거했던 대학생들의 반항으로 시작되었다가 노동자층에까지 확대된 혁명인데 이 혁명 과정에서 여성들은 자신들의 열악한 상황을 몸소 깨닫게 된다.

68혁명의 열기는 몇 달 만에 막을 내렸지만 한 발짝 내닫기 시작한 여성운동은 멈추어지지 않았다. 1970년에 ‘MLF’(Mouvement de liberation des Femmes, 여성해방운동)가 형성되면서 페미니스트들이 생겨났고 법적으로 남녀동등을 요구했다. “내 몸은 내게 소속되어 있다”는 새로운 사고 형성으로 유산권을 주장하는가 하면 처음으로 남편의 폭력에 대항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이들 페미니스트들의 지속적인 활동이 없었더라면 1975년의 임신중절 허용, 간통죄 소멸, 상호 합의에 의한 이혼 성립 등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시기에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이 다시 많은 여성들에게 읽혀지게 되고 여성들의 의식의 변화처럼 옷차림도 변화하기 시작하는데 미니스커트와 바지가 폭넓게 등장하게 된 것도 이 시기다.

2008년 봄, 68혁명의 불꽃이 사그라진 지 40년이 흐른 지금, 프랑스 여성들은 당시의 선배들보다 훨씬 자유롭다. 이들은 부권 사회가 수세기에 걸쳐 억압했던 여성의 몸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사랑과 출산이 구분되는 환경에서 원하는 경우에만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를 낳으면 16개월의 출산휴가를 받고, 남자 없이 혼자서 아이를 낳아 자기 성을 물려주면서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가 하면, 남편과 이혼할 경우 대부분 자식의 양육권을 얻는다.

40주년을 맞이하는 1968년 5월 혁명을 되새기며 프랑스 여성이 처한 위치를 점검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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