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학의 큰 산맥’ 박경리 선생을 보내다
‘우리문학의 큰 산맥’ 박경리 선생을 보내다
  • 채혜원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8.05.09 10:22
  • 수정 2008-05-09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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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문학의 역사 산증인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박경리 선생의 유작시‘옛날의 그 집’ 중에서





 

지난5일 타계한 박경리선생은 고향인 경남 통영 앞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미륵산 자락에 안장됐다.  abortion pill abortion pill abortion pillabortion pill abortion pill abortion pillcialis coupon free   cialis trial coup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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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 정대웅 기자
지난 5일 어린이날 한국문학의 큰 별인 박경리 선생의 타계 소식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유작시 ‘옛날의 그 집’에서는 원고지와 펜에 의지해 ‘짐승’들이 으르렁거리는 세상을 80여년 살아온 끝에 비로소 고된 생을 내려놓는 선생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이 시와 함께 현대문학 4월호에 발표한 ‘까치 설’과 ‘어머니’ 등 2편의 시가 박경리 선생이 우리에게 건네는 마지막 선물이 됐다.

‘나의 문학적 자전’(1984년)에서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경멸, 아버지에 대한 증오, 그런 극단적 감정 속에서 고독을 만들었고, 책과 더불어 공상의 세계를 쌓았다”고 성장기를 회고할 정도로 그의 행복하지 않은 삶은 글의 원천이 됐다.

전쟁 중 남편과 아들을 잃었고, 25년간 이어진 ‘토지’ 집필 중 유방암 수술로 오른쪽 가슴을 절제하는 아픔도 겪었다. 1974년에는 하나뿐인 딸과 결혼한 김지하 시인이 민청학련 사건 등에 연루돼 옥고를 치르는 동안 뒷바라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생의 한순간도 펜을 놓지 않았던 그의 행보는 한국여성문학의 역사가 된다. 1955년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 ‘계산’을 발표한 후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현대문학상 수상자로 기록된다. 이후 10여년이 지난 1968년 시인 김후란씨가 시집 ‘장도와 장미’로 수상자가 되기까지 여성수상자는 없었다.

1969년부터 25년간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대하소설 ‘토지’는 수많은 여성문인들의 활동에 물꼬를 트는 계기로도 작용한다. 박경리 선생의 뒤를 이어 박완서, 오정희, 김향숙, 김지원, 김채원, 윤정모, 이경자, 최명희 등의 중견작가들이 활발한 활동을 벌였고, 90년대에 이르러서는 여성주의 소설이 붐을 이루기도 했다.

‘토지’는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되면서 여성작가뿐만 아니라 최서희를 연기한 배우 한혜숙(1979년), 최수지(87년), 김현주(2004년) 등 여배우를 키우는 산파 구실도 했다. 또한 99년 강원도 원주에 문을 연 토지문화관에서는 은희경, 신경숙, 권지예 등 수많은 젊은 여성작가들에게 숙식을 직접 제공하면서 한국문단을 이끌도록 도와주었다.

1897년 하동 평사리의 명절날 놀이 소리로 시작해 1945년 광복의 만세 소리로 끝나는 소설 ‘토지’는 50여년의 민족수난기를 역사보다도 더 생생하게 담아내 지금까지도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국민들의 가슴에 살아 숨쉬고 있는 작품이다.

박경리 선생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들에게도 귀감이 되었다. 94년 ‘올해의 여성상’ 수상, 99년 ‘신주부가 만나고 싶은 여성 100인’ 선정, 2000년 ‘여성주간 기념 네티즌이 선정한 20세기를 빛낸 여성’, ‘네티즌이 뽑은 한국의 대표작가’에 선정되는 등 여성들의 폭넓은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

현재 ‘허스토리를 찾아서’, ‘여성역사기행’ 등 여성을 테마로 한 역사기행에서도 ‘박경리 토지문학공원’은 주요 코스다. 이곳은 누구보다 이 땅의 사람과 자연을 사랑했던 그에게 창작의 고향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이곳에서 고인과 대담을 진행했던 서울대 송호근 교수는 “미륵산 기슭에선 선생님이 태어나신 명정리가 보입니다. 김약국의 둘째딸 용빈이가 다시 찾아와 바다에서 항구를 응시하듯, 쑥쑥새 자주 지저귈 그 기슭에서 속울음으로 제 몸 흔드는 사람들을 보고 계세요. 선생님의 부재(不在)를 눈치챈 항도 사람들이 옷깃을 여미고 작별의 예를 보내면, 선생님이 남기신 생명의 메시지가 노을처럼 퍼져 산하를 적시고 있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마지막 메시지를 띄웠다.

통영을 떠난 지 60여년 만에 박경리 선생은 다시 통영으로 돌아갔다. 우리들의 어머니였던 박경리 선생은 ‘어머니’라는 시를 통해 불효막심의 회한을 풀고 떠났지만, 그는 김약국의 딸들의 후예인 우리가 토지와 푸른 바다에서 어떻게 살아나갈지 변함없이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다.



박경리 선생 연보



▲1926년=10월28일 경남 통영시 박수영(朴壽永)씨의 장녀로 출생. 본명 박금이(朴今伊).

▲1945년=진주고등여학교 졸업.

▲1946년=1월30일 김행도씨와 결혼. 딸 김영주씨 출생.

▲1955년=’현대문학’에 김동리에 의해 단편 ‘계산’ 추천.

▲1957년=단편 ‘불신시대’로 제3회 ‘현대문학’ 신인문학상 수상.

▲1958년=첫 장편 ‘연가’를 ‘민주신보’에 연재, 단편 ‘벽지’, ‘암흑시대’ 등 발표.

▲1962년=전작 장편소설 ‘김약국의 딸들’ 발표.

▲1969년=’토지’ 1부 ‘현대문학’에 연재 시작

▲1980년=강원도 원주 토지문학공원에 정착.

▲1990년=제4회 인촌상 수상 ‘만리장성의 나라’, 시집 ‘도시의 고양이들’(동광출판사) 간행.

▲1994년=‘박경리의 원주통신-꿈꾸는 자가 창조한다’, 문학선 ‘환상의 시기’, ‘가을에 온 여인’(나남출판) 간행. 8월15일 집필 26년 만에 ‘토지’ 탈고.

▲1998년=토지문화관 착공, 1999년 6월9일 개관.

▲2003년=9년 만의 신작소설 ‘나비야 청산가자’ 현대문학 4월호에 연재 시작. 청소년용 ‘토지’ 12권 완간(이룸). 첫 장편동화 ‘은하수’ 출간(이룸).

▲2007년=13년 만의 신작 산문·소설집 ‘가설을 위한 망상’ 출간.

▲2008년=’현대문학’ 4월호에 ‘까치설’ 등 신작시 3편 발표. 5월5일 타계.





■ 주요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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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1963년)


작가 박경리가 자신의 고향인 통영과 피난 수도 부산을 배경으로 한국전쟁의 상흔으로 얼룩진 사람들의 상처와 절망, 그리움들을 담아낸 작품. 낯선 땅에 버려진 채 사악한 인간들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는 수옥, 몰락한 지주의 딸로 꿈을 잃고 타락의 길로 들어선 학자 등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한을 간직한 채 살아가지만, 이들은 절망하지 않고 삶의 새 희망을 갈구하며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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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국의 딸들(1962년)

경남 통영의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집안의 몰락이 지닌 비극성을 사실적으로 조명한 역작. 김 약국의 어머니가 비상을 먹고 자살하는 대목에서 비롯되는 비극의 씨앗은, 결국 김 약국의 딸들이 하나하나 몰락하면서 막을 내리게 된다. 현실에 대해 적극적이지 못한 김약국과 그의 다섯 딸들의 다양한 삶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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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엉겅퀴(1978년)

죽지 않거나 미치지 않고는 견뎌내기 힘들었던 세 여자의 굴곡 많은 삶을 그린 작품. 불륜이나 이혼 등 대중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현대인의 불안을 고도의 심리적 기법을 통해 표현해낸 점이 특징이다. 정신병에 걸린 주인공 은애를 통해 작가는 불안과 긴장이 현대인의 숙명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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