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주인공 '현대극+판소리' 로

 

50명 남짓 되는 관객들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배우와 관객과의 거리가 한 걸음도 채 안되는 작은 공간에서 연극 ‘창窓창唱창創’은 펼쳐지고 있었다.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이 배우들과 함께 웃고, 박수치고, 노래하고, 안타까워하며 80여분을 보냈다. 그리고 극이 끝난 후 관객들은 마음 속의 응어리를 토해내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창窓창唱창創’은 경계를 넘어서는 작품이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은 사라지고 관객이 배우가 되어 극에 참여한다. 구성진 판소리 가락과 현대 가요가 어우러지는가 하면, 역동적인 무용과 비보이 댄스, 랩이 한데 얽힌다. 연극과 무용극, 뮤지컬과 판소리, 마당극이 하나의 그릇에 담겨 복합장르를 만들어냈다.

그 속에서 전체의 작품을 관통하는 틀거리는 허난설헌의 불행했던 스물일곱 해 삶이다. 또 한 축은 동서양 고전 속 주인공들을 불러내 패러디한 한판 마당놀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심청, 줄리엣, 선녀, 성춘향, 콩쥐의 이야기가 솔직하고 당당하고 섹시하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봄(만남), 여름(사랑), 가을(갈등), 겨울(죽음)의 4계절에 따라 펼쳐진다.

문학작품 속에서 현실 속으로 살아난 그들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모습과는 다르다. 줄리엣은 노예팅에서 100냥에 얻은 로미오를 버리고 이몽룡에게 반하고, 성춘향은 변 실장에게 성상납을 강요받는다. 선녀는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라는 미명하에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으로 인해 가정폭력의 희생자가 된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은 인신매매단에게 끌려가고 만다.

그리고 마지막, 우리가 알고 있는 문학 속 여주인공들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다. 심청은 아동학대와 인신매매를 반대하는 소녀재단 이사장으로, 남편에게서 탈출한 선녀는 비혼엄마 운동위원회 위원장으로, 콩쥐는 재손가정상담소 소장으로.

내용은 결코 밝지 않지만 극은 전체적으로 흥겹다. 김윤아의 ‘봄이 오면’, 박진영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퀸의 ‘We Will Rock You’ 등 귀에 익은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비보이 댄스에서 섹시 댄스까지 다양한 춤이 있다. 함께 따라 부르고 박수 칠 준비만 하면 된다.

‘자기만의 방’으로 유명한 페미니스트 연출가 이영란(경희대 예술학부 교수)의 연출작. 오는 31일까지 명륜동 꿈꾸는공작소 성균소극장. 문의 (02)745-6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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