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유언 따라 광주 충현원이 한국판 판권 받아

 

6·25전쟁 당시 서울에 남아있던 전쟁고아 1000여명을 피신시켜 한국판 ‘쉰들러 리스트’라고 불리는 故 러셀 브레이즈델(Rusell Blaisdell) 목사의 회고록이 광주에서 출간된다.

브레이즈델 목사는 2007년 초 아들에게 “회고록 ‘전란과 아이들, 그 일천명의 아버지’의 한국어 판권을 한국전쟁 당시 고아원이었던 광주 ‘충현원’에 건네라”는 유언을 남기고 그 해 5월1일(향년 97세) 미국에서 숨졌다.

고인의 숭고한 이 뜻은 5월1일 광주 충현원(원장 유혜량 목사·사진)이 ‘고 브레이즈델 목사의 1주기 추모 및 회고록 출판기념식’을 갖게 됨으로써 하늘나라에서 한국 아이들에게 전해진 선물로 안겨지게 됐다.

광주시 남구 양림동에 위치한 ‘충현원’은 한국전쟁 때부터 고아들을 돌봐온 곳. 1949년 선교사 로버트 윌슨(Robert M Wilson)이 사택에서 40여명의 고아를 돌보다 1952년 고 박순이 여사(유혜량 목사의 시어머니, 당시 광주YWCA 이사)가 ‘충현영아원’을 설립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브레이즈델 목사는 한국전쟁 당시 충현원에서 고아들을 돌봤던 미국 참전용사 조지 F 드레이크(77) 박사로부터 충현원에 대해 알게 됐다.

드레이크 박사에게서 충현원의 건물이 낡아 아이들을 키우기 힘든 처지에 놓였다는 딱한 사연을 접하고 충현원 복원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데 회고록의 한국 판권을 주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거리를 차로 지날 때마다 그 아이들을 보았다. 아이들은 병에 시달리고 해충으로 뒤덮여 있었다. …수많은 아이가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죽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회고록 중)

공군 중령이었던 브레이즈델은 1950년 7월 한국에 파병돼 미 제5공군 사령부에 군목으로 배속됐다. 3개월 뒤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다시 전세가 바뀌기 시작해 모든 군대와 시민들이 고아들을 남겨둔 채 서울을 철수했지만 브레이즈델 군목은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1000명의 고아들을 전쟁터의 한가운데서 탈출시키기 위해 정신없이 뛴 결과 중공군이 서울에 들이닥치기 직전인 12월20일, 그는 미 공군의 작전지휘관이던 로저스 대령을 만나 제주도로 향하는 C-54 수송기를 확보해 아이들을 제주도로 안전하게 수송하는 데 성공했다. 이 일로 그는 미 공군 당국의 감찰조사를 받기도 했다고.

그는 회고록에서 “저는 그렇게 해야만 했습니다. 만약 군목의 일이 고아들의 문제를 무시하고 그들을 적지에 남겨두어 죽게 하는 것이라면 저는 당장 전역하겠습니다. 그런 생각을 한 군종감실과 연관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술회했다.

충현원 유혜량 목사는 “미국에서 브레이즈델 군목을 만났을 당시 ‘한국은 이제 살 만한데 왜 자꾸 미국으로 입양아를 보내는지 모르겠다’며 서운해 하던 그의 얼굴이 기억난다”며 “조건 없이 한국 어린이를 사랑했던 그의 마음을 책을 통해서라도 꼭 느껴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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