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식은 남자에게 매달린 여인의 비극
사랑이 식은 남자에게 매달린 여인의 비극
  • 옥선희 / 영화 칼럼니스트
  • 승인 2008.04.25 16:57
  • 수정 2008-04-25 16: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리스 부인’

 

 

천둥번개와 함께 폭우가 쏟아지던 밤. 급히 차에서 내린 여인이 집안으로 들어가 “당신을 만나러 버지니아에서 5시간을 운전해 왔어”라며 침대에 든 남자를 깨운다. 남자는 대화를 거부하고 욕실에서 다른 여성의 물건을 발견한 여성은 이성을 잃는다. “그래, 내가 죽을게. 나 좀 죽여줘”라며 총을 꺼내든 여인과 이를 말리는 남자. 몸싸움 끝에 총성이 울리고 남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눈 여인은 불발로 끝나자 울부짖으며 경찰에 전화를 건다.

영화 ‘해리스 부인’(Mrs. Harris)은 재판을 통해 1980년 3월10일 밤 10시, 뉴욕 근교 퍼체이스의 저택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배경을 기술한다.

법정에 출두한 가족과 친구들의 진술을 통해 재구성되는 진 해리스의 살인사건은 “O J 심슨 이전에 진 해리스가 있었다”고 말해질 만큼 유명한 미국을 뒤흔든 사건이었다.

고등교육을 받은 아름답고 우아한 상류층 사립학교 여교장 진은 왜 연인 허먼과의 관계를 ‘어리석고 슬픈’ 살인사건으로 마감한 것일까? 영화 ‘해리스 부인’은 그 이유를 “사랑해서”라고 답한다. 비극은 남과 여의 사랑 유효기간이 달랐다는 것.

아들 둘을 둔 이혼녀 진(아네트 베닝)은 1966년, 한 파티에서 성적 매력이 넘치는 유태인 의사 허먼(벤 킹슬리)을 알게 된다. 심장전문 내과의이자 다이어트 책 저자로도 유명한 갑부 허먼은 적극적인 섹스와 다이아몬드 반지로 진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청혼 이후에도 허먼은 결혼 날짜 잡기를 주저하며 플레이보이 기질을 버리지 못한다.

재판에서 진은 “사랑한 죄밖에 없다”며 우발적 사고임을 강조했지만, 검찰은 허먼의 유언장에서 진의 이름이 빠진 데 대한 계획적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81년 3월 2급 살인죄로 기소된 진은 15년 동안 뉴욕의 유일한 최고 보안의 여성감옥 ‘베드포드 힐스’에서 보내다 69세가 된 92년 12월에야 사면됐다.

영화는 여기자 샤나 알렉산더의 저서 ‘Very Much a Lady; The Untold Story of Jean Harris and Dr. Herman Tarnower’에 기초했다. 진에게 동정적인 태도로 책을 쓴 샤나는 허먼에게로 향한 진의 집착은 어린 딸에게 차가웠던 아버지의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영화는 이런 분석 없이, 과녁을 잘못 택한 아름다운 중년여성의 열정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리스 부인’이 흥미로운 것은 시공은 물론 신분과 나이를 불문하고 남녀관계의 시작, 과정, 종말은 단 하나라는 진리를 확인시켜주는 멜로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즉 세상 모든 사랑이 우리 둘만의 순수하고 특별한 감정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하지만, 사랑의 비중과 질량이 두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따라서 필히 사랑의 종말이 오게 마련인데, 그때 더 많이 사랑하고 집착한 사람이 불리한 위치에 선다는 점을 환기시켜준다. 버림받을 것을 염려하지 않고 사랑에 빠진 이, 사랑과 섹스는 벌레들도 하는 오랜 역사의 진부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은 이에게 ‘해리스 부인’을 특히 권하고 싶은 이유다.

서플먼트에는 91년과 93년에 했던 진 해리스 본인의 인터뷰와 아네트 베닝이 얘기하는 인물 분석이 담겨 있다.

감독 필리스 내지/ 주연 아네트 배닝, 벤 킹슬리/ 제작연도 2005년/ 상영시간 94분/ 등급 15세 이상/ 출시사 워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50 (3가 222번지) 골든브릿지빌딩 1층, 9층
  • 대표전화 : 02-318-93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준철
  • 제호 : (주)여성신문사
  • 사업자등록번호 : 214-81-03304
  • 대표이사 : 김효선
  • 발행·편집인 : 김효선
  • 여성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8 여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dmin@wome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