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한 여성들의 삶을 위해
당선자들이 이번 총선을 치르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보다도 짧은 선거운동 기간이었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각 당의 공천 확정이 늦어지면서 대다수의 후보들이 채 한달도 안되는 기간 동안 강행군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낙선자들 사이에서 ‘일주일만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의 탄식이 흘러나온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특히 17대에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을 노렸지만 지역에서는 ‘정치신인’이나 다름없었던 의원들은 더한 어려움을 겪었다.
진수희 한나라당 의원은 대변인을 지내면서 얼굴이 많이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기반이 없던 터라 정치신인과 마찬가지였다”고 털어놓았다. 진 의원은 “시간도 많지 않고 지역 기반도 부족했기 때문에 이렇게 부족한 부분을 노력으로 채우고자 ‘열 길 걸어 한 표를 얻는다’는 심정으로 100시간 릴레이 유세까지 하며 유권자를 한분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다.
선거를 불과 보름여 앞두고 지역에 깃발을 꽂은 박영선 통합민주당 의원도 마찬가지였다. 박 의원은 “정당 지지도도 낮고 공천 확정도 늦어지면서 짧은 기간 동안 유권자들에게 그간 준비한 정책, 능력과 진정성을 알려야 했던 점이 굉장히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수도권 지역에 대한 당의 공천파문이 확산되면서 한달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공천을 받은 박영아 한나라당 당선자도 “선거운동 기간이 짧아 유권자 여러분들을 만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고 말했다.
또 공천과정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만큼 공천과정에서부터 피 말리는 접전을 벌인 후보들이 많았고, 한나라당 강세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심리적인 부담을 크게 느낀 후보들도 다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경 통합민주당 의원은 “선거운동 기간보다 공천과정에서 더 많은 진통과 갈등이 있었다”며 “잘 짜인 공약과 구체적인 실현방안을 내놓는 정책선거가 아닌 흠집내기와 네거티브로 일관하는 통에 심리적으로 힘든 선거였다”고 말했다.
추미애 전 의원은 “전반적인 한나라당 강세 분위기 속에 조직 하나 없이 개인적으로 극복해나가야 하는 것에 큰 심리적 부담이 있었다”고 전했다. 타 지역 지원유세에도 열심이었던 조배숙 통합민주당 의원은 “특히 수도권 지역에서 통합민주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지 않았고, 후보자 공천도 늦어진 상태여서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여성들의 경제참여 확대 위해 애쓰겠다”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당선된 이들이 18대 국회에서 여성들을 위해 가장 중점을 두고 실행할 것들은 무엇일까?
당선자들 대부분은 무엇보다도 여성들의 경제참여 확대를 위한 법·제도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17대 국회에서는 여성의원들이 주로 성차별, 육아문제 등 여성들이 일상생활 분야에서 고통을 겪는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법·제도를 개선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이제는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여건이 조성되도록 힘쓰겠다는 것이다.
진수희 의원은 “여성일자리 창출 문제는 전체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는 문제의 연장선에 있으므로 국회와 정부가 함께 국정운영의 동반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본분을 다하겠다”며 “OECD 국가들 수준만큼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17대 국회에서 ‘가족친화 사회환경의 조성 촉진에 관한 법률안’ 제정을 주도, 여성이 마음놓고 일할 수 있는 사회환경을 국가에서 책임지도록 했던 박영선 의원은 “여성 경제활동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보육문제를 비롯해 여성의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여성일자리 창출 등 효과적인 대안 마련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순자 한나라당 의원 역시 “여성들이 마음놓고 일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라고 진단하고 “학력, 육아상태 등 특성을 고려한 유망직종 발굴, 맞춤형 교육·훈련, 취업 연계, 사후관리 등 고용 관련 종합지원체계 구축을 위해 애쓰겠다”고 전했다. ‘경력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 촉진법(가칭)’ 제정을 통해 여성의 취업단절 및 경제활동 포기현상을 차단하는 방안을 강구할 계획이다.
김영선 한나라당 의원도 “여성을 위한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여성친화적 유망직종을 발굴하고 여성의 창업과 기업활동을 지원할 것이며, 기업의 수요에 맞는 맞춤형 훈련과 취업연계서비스를 개발하는 등 여성의 직업훈련기회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여성들의 경제참여 확대의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는 보육문제 해결에 대한 약속도 이어졌다.
조배숙 의원은 “여성들이 출산 걱정을 하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보육에 대한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며 “당에서 목표로 하고 있는 ‘2012년까지 모든 아동들의 무상보육 실현’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추미애 전 의원은 “자녀 보육과 교육에 부담이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며 “5세 이하 아동들에 대한 전면 무상교육 추진, 영유아에 대한 보육비 지원 확대, 공공시설을 이용해 초·중·고생을 위한 방과후 ‘맞춤형 학습지원센터’를 운영하겠다”고 구체적인 계획을 밝혔다.
이와 함께 여성의원들은 최근 급증하고 있는 유괴·성폭력 등의 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법 제정 활동도 활발히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박영아 당선자는 “성폭력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지만 대책이 미비한 실정”이라며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법·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박순자 의원 역시 “성폭력·가족폭력 관련 법·제도의 시행에 따른 여성인권 보호조치 강화에 맞추어 피해자를 위한 실질적인 자립·자활 지원 확대를 위해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미경 의원은 이같은 제도 개선과 함께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는 데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여성권익 등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많이 이뤄졌지만 기본적 보장과 같은 것일 뿐 사회 전체의 공감대가 형성되거나 무엇보다 여성 스스로가 자존감을 느끼며 생활할 수 있는 사회와는 거리가 있다”며 “제도적 개선과 아울러 눈에 드러나지 않는 뿌리 깊은 편견과 차별을 찾아내고 해소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여성후배들이여, 전문성을 길러라”
한편, 당선자들은 정치인을 꿈꾸는 여성후배들에게 현장경험을 통해 습득한 생생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당선자들은 “자신의 전문분야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정치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정치적 식견과 능력을 배양해 ‘전문가 정치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 각자의 업무영역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후 정치에 참여한다면 자신의 전문분야를 대표해 국민의 목소리를 좀더 효율적으로 대변할 수 있다는 충고다.
진수희 의원은 “젠더 마인드(성평등의식)와 더불어 특정분야의 정책 전문성을 겸비해 국회의원으로서의 필요충분조건을 갖추어야만 국회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남성의원들과 공정하고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더불어 여성정치인 및 시민단체, 정당과의 연대나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의 정책 전문성 및 젠더 마인드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관리함으로써 ‘준비된 정치인’의 면모를 갖추기 바란다”고 말했다.
박영선 의원 역시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고, 조배숙 의원도 “자신만의 전문분야를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의 경우 22년간 기자로 근무하면서 취재현장을 다니며 서민들의 삶의 현장을 지켜보았던 것이 의정활동에 큰 힘이 됐다고 말한다. 특히 경제부 기자를 거치면서 겪은 경험들은 중소기업을 위한 정책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부드러움과 풍부한 상상력 등 여성 특유의 강점을 살려 민생·생활정치를 펼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영선 의원은 “지금은 여성(Female), 감성(Feeling), 상상(Fiction)이라는 3F가 중심이 되는 시대, 즉 여성이 가진 부드러움과 감성, 상상력이 힘이 되는 시대”라며 “이런 특성을 살려 좀더 밝고 경쾌한 모습으로 국민에게 산뜻한 미소를 드리면서도 국민의 삶을 꼼꼼하게 보살피는 민생정치, 생활정치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순자 의원 역시 “정치의 기본은 민생을 생각하는 것이고, 국민의 생각에서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이 정치의 처음이자 끝”이라며 “정치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하지만 ‘국민이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국민들의 삶을 편하게 해줄 수 있는 ‘생활정치’로의 접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영아 당선자도 “남성 못지않은 추진력도 중요하지만 여성 특유의 세심함을 겸비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여성이기에 배려를 바라서는 안된다는 따끔한 충고도 나왔다. 추미애 전 의원은 “정치에는 남녀가 따로 없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방적인 배려를 바라는 것은 옳지 않다”며 “헌신과 책임감, 더불어 타인과의 폭넓은 관계 속에서 화합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평소에 철저히 준비하고 모든 측면에서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미경 의원은 “정치를 왜 하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