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 비튼 ‘동서고금 여성사’
가부장 비튼 ‘동서고금 여성사’
  • 권지희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8.04.11 11:53
  • 수정 2008-04-11 1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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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vs ‘그 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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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에 이름을 올린 여성들은 크게 세가지 부류 중 하나다. 첫째는 통치자의 지위에 오른 여성이고, 둘째는 어머니로서 자식(아들)을 잘 길러낸 여성이며, 셋째는 한 남성에게 성적 순결을 바치고 그것이 훼손됐을 때 목숨을 버린 여성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계속되는 ‘가부장적 여성 읽기’에 반기를 드는 두 권의 책이 출간됐다. 하나는 서양사학자인 한정숙 서울대 교수가 쓴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도서출판 길, 3만8000원)이고, 다른 하나는 1993년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한 김현아씨가 낸 ‘그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도서출판 호미, 1만1000원)이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서양 여성들 삶의 면면을 방대한 사료와 ‘여성의 눈’으로 재해석해낸 한 교수의 통찰력이 놀랍고, 반대로 잘 알려진 역사 속 한국 여성들을 찾아다니며 당대 시공간의 모습을 켜켜이 되살려낸 김씨의 도발적이고 발랄한 글쓰기가 반갑다.

‘금기’ 도전한 서양 여성들



서양사를 대표하는 여성은 대부분 예술인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여성시인 사포는 시 안에 스스로를 등장시킬 정도로 주체성이 강했다. 그는 2세기 그리스 의학자 갈레노스로부터 “아무 수식 없이 시인이라 칭할 수 있는 사람은 남성시인 호메로스와 여성시인 사포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일부 남성들이 “여성이 여성에게 바치는 사랑의 이미지는 여성 동성애적 함의를 가진다”고 공격했지만, ‘불멸의 딸들’이라 불리는 그의 시는 후대의 많은 여성문필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크리스틴 드 피장(1364~1430년쯤)은 프랑스에서 (어쩌면 세계에서) 책을 써서 생계를 꾸린 최초의 직업문필가 여성이었다. 글을 아는 여성 자체가 드물었던 서양 중세 말에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장미 이야기’에 도전, 여성혐오적 담론을 쟁점화시켰다.

일부 여성학자들은 그의 보수성 때문에 작품 인용을 꺼리기도 하지만, 저자는 “당시 여성의 이름으로 대항 담론을 전개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일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크리스틴은 인격적 독립성과 존엄성을 지키며 살고자 하는 여성들의 선배로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영국 공작부인이었던 마거릿 캐번디쉬(1623~73)는 생애 내내 문필활동을 했다. 당시 거센 비난에 대해 그는 책마다 여성의 열등성을 인정하는 글을 실었다. 이 때문에 1970년대의 한 연구자는 그를 “여성의 열등성을 믿었던 여성지식인”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저자는 여성이 열등한 이유 뒤에 열등하지 않은 몇 가지를 덧붙이는 글 전개 방식을 꼬집으며, “보물찾기처럼 꼼꼼히 읽으면 마거릿의 주장 속에 과감한 양성평등과 여성연대의 이상향이 들어있음을 확인하게 된다”고 말한다.

776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때문에 읽을 엄두가 나지 않지만, 또한 한번 손에 잡으면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된다. 

 

왼쪽부터 고대 그리스 여성시인 사포, 프랑스 여성작가 크리스틴 드 피장, 영국 여성작가 마거릿 캐번디쉬.dosage for cialis site cialis prescription dosage
왼쪽부터 고대 그리스 여성시인 사포, 프랑스 여성작가 크리스틴 드 피장, 영국 여성작가 마거릿 캐번디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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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들 ‘왜곡’ 벗는다

 


전자의 책이 숨겨진 여성사를 발굴해낸 것이라면, 후자는 이미 굳어진 여성사를 깨뜨리는 작업에 가깝다.

경주에서 가장 높은 산인 치술령 꼭대기에는 ‘망부석’이 있다. 신라 눌지왕 때 일본에 볼모로 잡혀간 미사흔을 구하러 갔다가 죽은 박제상의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로 유명하다. 하지만 저자는 ‘박제상 부인’의 이름을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저자는 그 이유를 ‘가부장적인 기억 방식에 의한 고의적 누락의 결과’로 추정한다.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이 ‘이상적인 충을 추구하면 가족의 불행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이 드러날까봐 고의적으로 누락시켰다는 것이다.

직접 마주한 망부석도 놀랍다. “지금까지 애잔하고 슬픈, 기다림에 목이 멘 여자 형상을 한 돌덩이를 상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망부석의 모습을 제대로 보려면 치술령의 반대 능선으로 올라야 했다. 그래야 그 거대한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있다.”

저자와 함께 답사를 떠난 듯 선덕여왕과 진덕여왕, 허난설헌과 신사임당, 김일엽과 나혜석, 고정희 시인까지 만나고 나면, 그동안 역사 속에서 교묘하게 은폐되거나 누락되거나 왜곡돼왔던 진실과 하나씩 조우하게 된다. 여왕을 알기 위해 신라 천년을 이해하려 애쓰고, 신여성을 알기 위해 근대를 통찰하는 시선을 갈구했던 저자의 노력이 새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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