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별로 12시간 가까이 밀착해 취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2~3시간 동안 쉬지 않고 걸어야 할 때도 있었고, 빡빡한 일정 탓에 끼니를 거르기도 일쑤였으며, 빈 속에 유권자가 주는 술도 받아 마셔야 했다. 그러나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후보들의 진솔한 모습과 솔직한 고백도 들을 수 있었다. 기사에는 차마 쓸 수 없었던 에피소드들을 모아 싣는다.

○…A 후보는 ‘교인’이다. 선거 기간 동안 ‘주일’은 총 두번. 후보는 첫 일요일에 원래 다니던 교회 대신 지역구에서 가장 많은 교인 수를 자랑하는 교회 2곳에서 연거푸 예배를 드렸다.

A후보는 “교회에서는 명함을 돌릴 수 없으니까 큰 효과는 없지만, 표를 구하는 입장에서는 교인이 많은 곳에 잠깐이라도 얼굴을 내밀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목사의 소개 한마디가 귀중하다는 얘기다. A후보는 예배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덕분에 ‘무신론자’인 기자는 이날 길고 긴 설교말씀을 2시간이나 들어야 했다. 그래도 취재의 고단함을 풀 수 있어 다행이었다.

○… 후보를 따라 노인정에 갔다. 오후 1시가 넘은 시각이라 어르신들은 이미 거나하게 취해 계셨다. 후보에게 술을 권했지만 오후 일정을 고려해 수행비서가 대신 마셨다. 술이 약한 수행비서는 이날 하루 종일 발개진 얼굴로 고생깨나 해야 했다.

어르신은 기자에게도 술을 권했다. 후보가 “여성신문 기자예요. 저를 따라 취재온 거예요”라며 말렸으나 이 어르신은 “기자니까 더더욱 마셔야겠네”라며 소주잔에 가득 술을 담았다. 혹여나 선거유세에 방해가 될까 싶어 단숨에 비웠다. 오랜만의 취중 취재였다.

○… 저녁 유세를 앞두고 차안에서 C후보와 마지막 대화를 나눴다. 후보는 걱정의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방 후보가 눈에 띄는 공약을 내걸면 그것이 아무리 헛공약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따라하지 않을 수 없어요. 선거판의 현실이죠. 밀리면 안되니까. 그래서 늘 고민합니다. 헛공약을 현실로 만들 방법이 없을까 하고.” 그의 용기 있는 고백이 아름다워 보였다.

○… D후보를 따라 서둘러 사거리로 유세를 나갔는데 마침 상대 후보의 유세가 한창이었다. 여느 남성후보라면 그대로 강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D후보는 일부러 10분 정도를 걸어나와 유세를 시작했다. “저쪽 후보 여성 선대위원장의 지원유세가 있다고 하니 우리가 다른 곳으로 옮깁시다”라는 말과 함께. 치열한 선거경쟁 속에서도 상대 후보를 배려하고, 같은 여성후보로서 예의를 지키는 모습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 “아줌마가?” E후보가 명함을 내밀자 중년의 남성이 의아하게 쳐다본다. 그 표정에는 “여자가 지역구 국회의원을 한다고?”라는 뜻이 섞여 있었다.

F후보는 더 심각했다. 노인정을 찾아가 명함을 건넸는데 한 어르신이 후보가 보는 앞에서 명함을 북북 찢어버린 것.

이번 4·9총선을 기화로 여성후보들이 크게 늘면서 선거벽보에서 여성후보를 보는 일이 자연스러워졌고, 몇몇 지역구에서는 후보 4명 중 3명이 여성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고령의 남성층을 중심으로 뿌리 깊은 ‘여성 혐오증’이 남아있었다.

○… 후보들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은 역시 가족이었다. 손봉숙 통합민주당 후보(서울 성북갑)의 남편 안청시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하루 몇시간 수업을 제외하곤 온종일 거리에서 명함을 돌린다. 심상정 진보신당 후보(경기 덕양갑)의 남편 이승대씨는 ‘전업주부’와 ‘운동원’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고경화 한나라당 후보(서울 구로을)의 남편은 하루에 수백장의 명함을 돌린다. 특히 동생들의 지원이 컸는데, 고 후보가 떠난 후에도 여동생이 끝까지 남아 배식 봉사활동을 담당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최순영 민주노동당 후보(경기 부천 원미을)의 옆에는 항상 아들 황민재(28·대학생)씨가 동행하고 있었다.

황씨는 지난해 남편을 하늘로 보낸 최 후보에게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다. 강한 칼바람이 불 때는 어머니가 행여 감기라도 걸릴까봐 옷매무새를 고쳐주었고, 시민들과 만날 때도 늘 한걸음 앞서 걸으며 후보 소개를 도맡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환하게 웃으며 유세를 펼치던 그의 모습이 빛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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