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건강보험 성급한 개혁 자제를
보수시절 만들어진 진보적제도 위축 안돼

나이 드니까 나이 드는 게 정말 겁난다. 20~30대 시절에 그리 즐겁고 유쾌했던 추억을 가져보지 못한 나로서는 평온한 노년기가 꿈이라면 꿈이다. 올해로 50살. 요즘 평균수명에 비춰보면 그리 늙었다고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결코 젊지도 어리지도 않은 나이다. 앞으로 한 10여년 정도를 활동기라고 본다면 그 이후의 삶에 대해 대비책은 되어 있는가.

통상 내 나이를 전후로 한 세대가 최초를 기록하게 될 일이 하나 있다. 부양하되 부양받지는 못하는 첫 세대가 될 거라는 점. 당연히 나도 첫 취직 이래 소득이 전무한 부모를 부양해왔다. 그 기간이 20여년이건만 특별히 불만을 품은 기억은 없다. 당연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또래들이 자식에게 부양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특별한 고소득자가 아닌 한 제 한 가족 먹고 살기도 힘겨운 사회구조를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지금 중학교 2학년생인 내 아들이 내 노년기를 책임질 거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이제 전적으로 노년은 자기 책임 하에 놓인다. 떠올릴 수 있는 건 개인 자산과 보험일 텐데, 각자의 형편이야 다를 테지만 적어도 전사회적인 안전망은 갖춰놓아야 할 것이다. 그 점에서 우리나라는 매우 현명한 대비책을 일찍부터 시행한 바 있다. 국민연금 제도와 의료분야의 국민개보험 시행이 그것이다. 게다가 하나 더, 지난해 7월 법률이 제정되어 세금으로 저소득 노인에게 월 8만4000원의 생활보조비를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제가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요즘 이에 대한 논란이 매우 뜨겁다. 국민연금의 기금 고갈론에서부터 공보험의 사보험 확대안까지 온갖 논쟁이 무성하다. 특히 시장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새정권으로서는 지난 시절에 만들어진 국가관리제도를 상당 부분 수정하고 싶을 것이다. 논의의 세부로 들어가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한 듯한데, 그 발상은 크게 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가능하면 국가 보장형 제도를 민간으로 혹은 개인으로 이양하자는 유혹이 그것이다.

가령 국민연금쪽은 소득비례 연금 방식으로 바꾸고, 세금에서 지출되는 노령연금은 국민연금과 통합하며, 전체적으로 급여율을 대폭 인하하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국민연금 기금의 투자 활성화를 통해 연금액 자체를 확대하자는 안도 정부측에서 나오고 있다. 건강보험쪽의 제도 개선안 역시 방향성에서는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급한 개혁의지를 제발 자제해달라는 것이다. 국민연금이든 건강보험이든 모두 보수정권 시절에 어렵게 만들어진 대단히 진보적인 제도이다. 사회보장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시절에 그래도 이 정도는 되어야 공동체 유지가 가능하다고 여겨 시행된 최소한의 조치인데, 그마저도 위축시켜야 되겠는가. 사회보장 과잉의 서유럽, 북유럽 사례를 들이대는 건 어불성설이다. 한국의 사회보장은 과잉은커녕 확대 실시되어야 할 것 투성이다. 일찍이 기금이 고갈되어 공적자금을 무한정 쏟아부어야 하는 유럽에 비하면 우리는 그나마 행복한 형편이 아닌가.

미국 공화당 정부가 상속세를 폐지하려 하자 그 법안의 수혜자인 백만장자들이 벌떼같이 반대하고 나섰다. 사회적 책무를 저버리는 건 부자들의 치욕이라는 논리다. 우선 나 자신부터 노령연금의 수혜자일 리가 없다. 하지만 내가 내는 세금으로 극빈노인의 생계비를 댄다는 건 대단히 행복한 일이다.

사회보장, 함부로 흔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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