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학회 심포지엄…여성학 자성론 일어
‘소수자 연대’ 아닌 ‘소수적 환경’과 연대를
한국여성학회(회장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는 지난 3월22일 ‘새정부 하의 여성정책과 여성운동’을 주제로 특별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명박 정부의 여성정책 방향을 진단하고, 여성단체와 학계의 역할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날 현장에서는 “여성정책에 대한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두드러졌다.
황정미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새정부가 출범한 지 두달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성별영향평가와 성인지 예산을 핵심정책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표명이 없다”며 “거대부처가 즐비한 상황에서 초미니 부처인 여성부가 무엇을 발판삼아 성주류화 정책을 추진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도 “이명박 정부가 내년 7월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힌 보육전자바우처는 보육정책의 급속한 시장화를 야기할 것이고, 양육지원수당을 비취업모에게까지 확대하면 여성의 경제활동을 둔화시키게 될 것”이라며 “내놓는 정책마다 성평등 철학의 부재와 ‘여성’에 대한 인식의 부족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성학계의 시각도 다르지 않다. 조순경 이화여대 교수(여성학)는 “경제성장에 방해가 된다면 성평등 정책이라도 전봇대처럼 뽑아버리겠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철학”이라며 “과잉기대는 금물”이라고 꼬집었다.
새 정부를 향한 부정적 전망은 여성계 내부의 자성으로 이어졌다. 여성정책의 ‘위기’를 여성운동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윤인순 대표는 “여성단체가 숱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 여성운동 이미지 만들기’에 실패한 이유는 같은 편인 여성학계와도 공론의 장을 마련하지 못한 탓이 크다”며 “저조차도 20년 동안 여성운동을 했지만 여성학계와 만난 경험이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남윤 대표는 “대학 여성학 과목에 여성단체 인턴십 과정을 개설해 젊은층이 여성운동 현장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도록 돕고, 군가산점·보육료 자율화 등 후퇴하는 여성정책의 주요 쟁점에 대해 단체와 학계가 공동으로 논리적 근거를 연구하는 정책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파트너십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순경 교수도 “새로운 현실 이슈를 쫓아야 새 담론을 생산할 수 있는데 그동안 여성학계가 지식유통에만 매몰돼온 것이 현실”이라며 “여성학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인 여성운동가 재생산을 위해 교과과목에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을 개설할 필요가 있다”고 화답했다.
조 교수는 이어 “여성운동에 대한 반감을 줄이려면 남성공무원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따라 ‘새벽별 보기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지원하는 식의 새로운 접근방식이 요구된다”며 “여성운동의 미래는 ‘소수자와의 연대’가 아니라 ‘소수적 환경과의 연대’에 있다”고 강조했다.
남윤 대표도 “여성은 인류의 총체적 고민을 가진 존재”라며 “학교 유휴시설을 공동 보육공간으로 활용하는 ‘돌봄과 나눔의 마을네트워크’ 운동을 통해 성별을 떠나 마을 사람들이 상호 돌봄 시스템을 마련해나가는 새로운 공동체 운동을 모색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가 나서서 양육을 함께 책임지는 ‘돌봄의 사회화’를 이루기 위해 여성운동 영역에서도 적극 참여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한국여성학회는 오는 6월14일 ‘신자유주의 시대의 여성정책과 여성운동’, 9월26일 ‘여성정책의 새 패러다임’을 주제로 연속 심포지엄을 개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