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풍경 ‘사진찍기’
봄 사진 뭐니뭐니해도 ‘꽃’이 최고
30대 회사원 김정심씨는 지난주부터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주택가 담장이나 아파트 단지 화단을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막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 노란 개나리꽃을 촬영하기 위해서다. 몇해 전 콤팩트형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해 계절마다 꽃 사진을 찍었던 그는 올해부터는 좀더 화려한 봄 꽃 사진을 찍기 위해 전문가용 DSLR 카메라를 큰 맘 먹고 구입했다.
김씨는 “봄풍경 하면 뭐니뭐니해도 ‘꽃’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며 “따뜻하고 화창한 날씨 속에 진달래, 목련, 철쭉, 벚꽃이 만들어놓은 환상적인 분위가 기분을 좋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4월 초순쯤 꽃 사진 동호회에서 주최하는 꽃 축제 출사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유성희씨도 최근 봄 사진 찍기에 재미를 붙였다. 학교 교정에서 밝은 햇살 속에서 노란 봄옷을 입은 친구 모습을 디카로 찍은 후부터 거리에 봄 옷 입은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아예 2주 전부턴 친구들과 주말에 삼청동과 인사동 쌈지길, 남산 등을 휩쓸고 다니며 봄 분위기 나는 카페나 옷가게, 봄 옷 입은 사람들을 찾아내 사진을 찍고 있다.
유씨는 “지루한 겨울 끝에 오는 봄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준다”며 “화창한 날씨에 활짝 웃는 사람들의 모습을 찍는 일은 봄의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특히 유씨는 봄의 화사하고 유쾌한 사진을 찍기 위해 거리를 헤매는 사람이 자기 혼자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주변의 친구들도 자기처럼 예쁜 풍경이나 새로운 것들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휴대하고 다닌다고.
봄날 사진 찍기는 하나의 트렌드
이처럼 요즘 20~30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사진 찍기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굳어지고 있다. 디지털카메라 보급 증가와 각종 블로그 및 미니홈피 확대 등으로 일반인들의 사진 찍기가 일상화되고 있는 가운데 따뜻한 날씨와 화사한 봄 풍경, 최근 패셔너블해진 도시의 공공디자인 등이 여심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여성의 섬세하고 감수성 어린 시각이 사진 찍기와 봄이란 계절적 요소와 잘 맞아떨어져 사진 찍기가 이제는 젊은 여성들의 놀이에서 일반 여성들을 위한 취미활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부산에 거주하는 50대 주부 정현경씨는 얼마 전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아들이 사용하다가 두고 간 200만화소짜리 고물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는 집안 창가의 미나리 화분을 비롯해 아파트 화단에 움튼 새싹, 아파트 담벼락을 비집고 올라오는 잡초, 집 근처 바닷가, 그곳에서 뛰어노는 어린이들의 모습 등 다양한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또 주변 인물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자기 자신과 남편의 일상적인 모습은 물론 이웃집 여자, 조카의 어린 딸 등의 표정을 사진으로 찍어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렸더니 지인들로부터 “재밌다”는 반응을 얻었다.
정씨는 “사진을 찍을 때 뭘 찍을지 고민하지 않는다”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 관심 있는 것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찍다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봄철 남편이나 친구들과 등산이나 여행을 할 기회가 많은데, 사진 찍을 기회도 더 많아질 것”이라며 “단순히 봄을 배경으로 사람만 찍는 것이 아니라 봄을 상징하는 나무와 풀, 꽃 등을 더 예쁘게 찍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봄은 ‘있는 그 빛깔 그대로’ 찍는 것
사진가 강운구씨는 그의 저서 ‘시간의 빛(문학동네·2004)’에서 “자디잔 매화꽃 한 송이를 꼼꼼히 들여다보는 것도 좋고, 멀리서 아직 겨울잠에서 덜 깬 산자락에 펼쳐진 그 자욱한 봄 안개 같은 꽃무리를 바라보는 것도 좋다. 없는 꽃빛깔 바라지 않고, 있는 그 빛깔 그대로”라고 봄을 찍는 방법을 말했다.
관심과 애정을 갖고 주변의 것들을 찬찬히 관찰하는 한편,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올 봄, 계절의 빛깔을 있는 그대로 찍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