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방’ 경영 길잡이 될 것"
2000여권의 책과 토론, 감상회 등이 있는 문화공간
도시에 서점이 존재할 때 문화적인 도시 될 수 있어
3월 25일 오픈한 지 딱 한달을 맞은 길담서원의 문을 열자 박성준 대표가 여러명의 대학생들과 토론을 벌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박호성 서강대 교수의 ‘휴머니즘론’을 듣는 학생들의 교실 밖 수업에 참여한 박 대표는 ‘마이크’라고 부른다는 대나무 피리를 꺼내 옆 학생에게 건네며 세가지 원칙을 강조했다.
“줄이 없는 이 마이크는 사람들이 좀더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입니다. 첫째 할 말이 없으면 옆사람에게 순서를 넘겨도 됩니다. 둘째 말을 잘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셋째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합니다. 꼭 말을 해야 한다거나 잘 해야 한다는 걱정에서 벗어나 남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모임은 길담서원에서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사람들이 모여앉아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곳곳에 마련돼 있고, 일요일에는 아예 책방 문을 닫고 음악감상회나 영화감상회, 원서강독 모임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열고 있기도. 3년 전부터 서원을 준비해왔다는 그는 “단순한 서점이 아닌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대학가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번화가도 아닌 통인동 골목으로 들어온 것은 지역에 기반한 문화공간으로서의 책방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3년간의 준비 기간 동안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의 책방들을 순례했고, 대학로의 ‘이음아트’와 부산의 ‘인디고 서원’ 등 ‘좋은’ 서점들을 찾아다니며 연구했다.
“유럽에는 동네를 기반으로 한 서점이 많이 있어요. 지나다가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은 반드시 그 마을의 서점을 알고 서점 주인과 가까운 사이더라구요. 서점과 그 도시 사람들이 정신적인 유대를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죠.”
지난 한달 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그는 “한국 사회에도 이런 사람들이 곳곳에 숨어있었구나” 하고 느꼈단다. 책방을 열지 않았으면 만날 리 없었을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찾아왔지만 그가 가장 반가워하는 손님은 바로 통인동 주민들이라고. “우리 동네에 이런 서점이 생겨서 너무 좋다”고 말하며 찾아와줄 때가 제일 기쁘단다.
그는 좋은 책과의 만남은 인생을 변화시키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책 표지와 목차, 머리말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독서가 될 수 있다”는 자신만의 독서론을 펼쳤다.
그는 앞으로 ‘좋은 책 100권 만들기’와 ‘좋은 책 백번 읽기’라는 프로젝트를 만들어갈 예정이다. 책방을 찾는 사람들이 주인이 되어 스스로, 자율적으로, 창의적으로 꾸려나가는 책방 경영 ‘패러다임의 전환’을 보여주겠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길담서원의 경영이 “좋은 서점으로도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실험”이라고 말했다. 길담서원을 보고 ‘본전만 까먹지 않는다면 돈을 많이 못벌어도 이런 서점을 하고 싶다’는 사람이 생기면 ‘바통 터치’를 하고 자신은 또 다른 곳에서 새로운 실험을 계속하겠다고.
“이런 식으로 도시마다 좋은 서점이 생기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이런 서점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미 하고 있는 사람들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꼭 이뤄지리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