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각국 저자들과 대화할때마다 초긴장
못해도 말하는 것 보고 ‘강박관념 버리기’배워

‘아시아 전문 출판사’라는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내게 영어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여행 때 간혹 아쉬운 경우가 있었지만 해외에 머무는 시간이 짧고, 돈을 내는 입장이니 영어라는 게 그다지 절실하지 않았다. 출판기획자라는 일을 하면서도 번역·출판할 만한 책을 고를 때 연륜이 만들어준 ‘감’으로 제목이나 표지 글, 목차 정도를 이해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사실은 우겼다).

전자사전이 출현한 것과 함께 영어실력의 향상을 위해서는 상당한(사실은 현실 불가능한) 노력이 들 거란 계산도 한몫 했다. ‘영어 능숙자 되기 욕망’을 뿌리쳐버린 내가 뿌듯했다. 그런데 인생은 자주 놀라운 국면을 열어준다.(인생을 너무 지루해 할까봐 염려했기 때문일까)

45세 된 가을, 영어 능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나는 하루 중 상당한 시간을 바보 혹은 무능력자로 살아야 했다.

아시아 전문 출판사를 시작하면서 레바논, 팔레스타인, 인도, 일본, 태국, 인도네시아, 네팔, 필리핀, 싱가포르 등지의 저자들과 말과 글로 소통해야 했는데 기본적인 소통 도구는 물론 영어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 쓴 원고가 들어왔을 때 읽어야 할 사람은 ‘당연히’ 나였다. 첫 원고를 받아들고 10일 동안 읽은 영어의 양은 평생 동안 읽은 영어 양보다 훨씬 많은 것 같았다.

원고의 수정과 내용의 확인을 위해 메일도 영어로 주고받아야 했다. 처음 영어 메일을 쓸 때는 영어 능숙자의 도움을 받았지만 자주 거듭되니 때마다 그럴 수가 없었다.

다섯줄짜리 영어 메일 쓰기에 5시간이 걸린 적도 있었다. 한 줄에 한 시간이라니! 전자사전이 없었으면 더 걸렸을 게다. 그러고도 혹시나 일어날지 모르는 ‘오해’가 걱정스러워 말미에 이렇게 덧붙였다. ‘이해가 어려울 수 있으나 운명이라고 여겨주시오’라고.

작업 진행 방법, 출간 계획, 책의 중심 개념을 정하기 위해 저자들을 만날 때는 며칠 내내 바보처럼 지내야 했다. 5~6장짜리 기획안을 들고 오는 잔인한 저자도 있었다. 알아들어 보려고 초긴장, 집중 모드로 귀를 세우면 단어 몇개가 들리고, 그 단어들을 재료로 퍼즐을 맞춰나가다 30분이 넘어가면 머리가 텅 비고 귓속이 웅웅거리며 멀미가 났다.

서로 친숙한 저자들끼리 농담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할 때 나는 화가 났다. 빨리 끝냈으면 싶은 회의가 길어지면 농담과 진담조차 구별할 수 없었다. 울화와 멀미를 견디지 못해 느닷없이 혼자 일어나 거리를 배회하기도 했다. 저자가 한국에 오면 함께 다녀야 했지만, 과묵한 저자일수록 고마웠다.

이런 상황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영어 때문에 생기는 울화와 멀미는 많이 줄었다.

지난 봄, 영국인 저자 리처드 파웰이 사는 도쿄 기치조지에 아시아 저자 넷이 모였다. 그 중 한명은 나보다 영어를 못했지만 제일 말을 많이 했고 대화를 주도했다. 전세 역전이라니!

소위 ‘네이티브 스피커’이자 20~30개의 언어를 할 줄 아는 언어학자이며 십수년 동안 아시아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살아온 리처드 파웰이 영어 대화에서 소외되어 혼자 웃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 거다. 심지어 나도 웃을 수 있었고, 태어나 내가 영어로 그렇게 많은 말을 하기는 처음이었다.

그의 ‘자유로운’ 영어를 본받아 내 영어도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문제는 내 영어실력이 아니라 내가 하는 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틈에서도 강박적으로 스스로 내 영어를 검열하고 있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전달하려는 생각이 정확하면 언어가 서툴러도 이해된다.” 리처드의 말이다.

지금 영어는 나의 진짜 화두가 되었다. 이 일을 더 잘하고 싶고, 더 많은 저자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그러려면 영어를 꽤 잘해야 한다.

아시아인들을 만나며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아시아인들끼리도 영어로 얘기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영어로 책 한권 쓸 수 있는 아시아인이 아주 많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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