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 피임방법등 성교육과
임신초기시술로 후유증 작게
2005년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낙태의 추정 건수가 34만2천여 건에 이른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일년에 태어나는 신생아 수의 70% 이상에 해당되는 숫자이다. 이러한 자료를 보면서 ‘pro-life’(생명권)의 입장이건 ‘pro-choice’(선택권)의 입장에 있건 낙태를 줄여야 한다는 대명제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공청회에서는 발전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해 가슴이 답답했다. 아쉽게도 현실적으로 어떻게 낙태를 줄일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의 장이 되지 못한 것이다.
공청회에서 논의될 개정안 마련 자문회의에 여러 번 참석해 온 필자로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개정안 마련의 취지와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채 태아의 생명권이 주로 강조되었다는 점이다.
개정안을 마련한 연구진과 자문위원들 중 어느 누구도 태아의 생명권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현실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34만건 이상의 낙태를 어떤 방법으로 줄일 것인가와 어쩔 수 없이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들의 후유증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개정안 논의를 해왔던 것이다.
오랜 논의 결과 마련된 개정안의 주요 내용의 하나는 낙태를 행하는 미혼여성의 94% 가량이 혼인상의 문제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사회적 적응사유’로 인하여 임부가 요청하는 경우에 한하여 낙태를 허용하되, 여성의 건강에 미치는 위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임신한 날로부터 12주 이내로 한정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낙태를 요청하는 임부들이 임신으로 인한 정신적, 사회적 갈등을 극복할 수 있도록 상담을 통해 공적·사회적인 모든 도움을 제공하고, 임부의 책임 있는 결정을 도움으로써 낙태시술의 남용을 막을 수 있도록 상담절차를 법제화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방안이 낙태를 현격히 줄일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청소년을 비롯한 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실질적 피임방법을 가르쳐주는 성교육이 활성화되어 미혼이건 기혼이건 원치 않는 임신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임부가 원하면 미혼모 신분으로도 아기를 키울 수 있는 사회적 환경조성과 제도적 지원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낙태를 선택해야만 하는 여성들의 경우에는 임신초기에 시술함으로써 신체적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무방비 상태에서 임신 5~6개월이 지나서야 낙태수술을 받음으로써 임부의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은 피하도록 조치가 필요한 것이다. 임신이 가능한 이 땅의 모든 여성들은 우리 사회의 ‘대’를 이어줄 사람들이다. ‘건강한’ 어머니에게서 ‘건강한’ 생명이 태어나고 길러질 것이다. 따라서 ‘여성들의 건강한 자궁’에 우리사회 전체가 관심을 쏟아야 할 때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