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문제 만큼은 등용의 문 넓혀 폭넓은 인사 실천을

취임식과 함께 17대 이명박 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지난달 25일 취임식에서 발표된 대통령의 취임사는 역대 대통령 취임사 중 가장 길다. 이제까지의 대통령 취임사 중 양성평등 부분도 가장 길게 언급됐다.

대통령 취임사는 여성문제를 ‘복지’의 틀에서 파악하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들이 ‘양성평등’이나 ‘성차별 철폐’라는 단어를 한번 언급하는 수준에서 지나갔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사에서는 상대적으로 길고 구체적으로 언급됐다.

문민정부시대를 연 김영삼 대통령은 ‘신한국 창조’를 키워드로 삼았지만, 양성평등 관련 언급은 단 한줄도 하지 않았다. 50년 만에 여야의 정권교체를 통해 ‘국민의 정부’를 수립한 15대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사에서는 “…국민의 정부는 여성의 권익 보장과 능력 개발을 위해서 적극 힘쓰겠습니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직장에서나 남녀차별의 벽은 제거되어야 합니다…”라는 구절로 최초로 ‘여성권익 보장’을 명문화했다. 민주주의 발전의 공로를 인정받고 있는 참여정부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비로소 ‘양성평등’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사의 ‘여성권익 보장’보다는 포괄적이고 적극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양성평등 사회를 지향해 나가겠습니다”라는 한 문장으로 끝나버렸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여성에 대한 부분은 무려 여섯 문장. 사회참여, 양성평등, 고위직 진출, 보육, 저출산, 삶의 질과 인적자원 개발 등의 키워드를 담고 있다.

“…여성은 시민사회와 국가발전의 당당한 주역입니다. 여성의 사회참여는 사회를 성숙하게 만듭니다. 양성평등 정책을 추진해서 시민권과 사회권의 확장에 힘쓰겠습니다. 더 많은 여성이 의사결정의 지위에 오를 수 있도록 기회를 늘리고 관련 제도를 개선하겠습니다. 생애주기와 생활형편에 따른 수요에 맞추어 맞춤형 보육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정부가 보육의 짐을 덜어주면 저출산문제가 개선될 뿐만 아니라 삶의 질과 인적 자원의 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

국정운영이 취임사 그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은 때로는 법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 더욱이 대통령 취임사는 전국민, 전세계 앞에서 선서하는 엄중한 약속인 만큼 잘 지켜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양성평등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대통령이 여성부를 초미니 부처로 만들고, 상대적으로 적은 여성인재들이 줄줄이 낙마하며 국정을 시작하는 것은 모순이고 유감이다. 그러나 취임사를 통해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비중 있게 양성평등 실현을 다짐하는 만큼 우리의 기대를 쉽게 거둘 수는 없다.

조각단계부터 ‘코드 인사’의 의혹을 받고 있는데, 여성문제에서만큼은 등용의 문을 넓혀 폭넓은 인사를 실천하기 바란다. 여성문제에는 여야가 없다는 공동의 인식기반이 있기 때문에 정치적 성향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여성정책 전문성이 있다면 충분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념을 넘어, 코드를 넘어 전문가를 등용함으로써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고 국가경쟁력을 살리는 것, 이것이 실용정부가 추구해야 할 ‘실용성’이 아닌가?

포용과 통합을 통해 국민의 행복 체감도를 높이는 ‘실용적’인 여성정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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