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탈리즘’ 문화비평가 면모 한눈에
“에드워드 사이드는 국내에서 가장 왜곡돼 있는 저자 중 한명이에요. ‘오리엔탈리즘’의 저자라는 사실 외에는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 주요 저작들도 거의 소개가 안된 상태구요. 문학비평가이자 이론가로서 매력적인 글을 써냈던 그의 면모를 제대로 알리고 싶었습니다.”
국내에 소개된 사이드의 책은 대표작인 ‘오리엔탈리즘’과 ‘문화와 제국주의’, 대담집 ‘평행과 역설’, 자서전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 외 몇 작품이 국내 출판사들과 저작권 계약을 맺었다가 출간되지 못한 채 기간이 만료된 사실을 알게 된 정 대표는 제대로 된 번역을 통해 사이드를 재조명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정 대표가 이번 기획을 발표한 데에는 국내 비평분야 출판시장에 대한 아쉬움도 한몫 했다. 그는 “국내 출판계에서 비평분야는 거의 사장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비평은 원작자와 독자, 비평 대상과 독자 사이에서 소통을 이뤄내는 분야인 만큼 활성화돼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는 2003년 9월 사이드가 백혈병으로 사망할 당시 집필 중이던 유고작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비타협적이고 저항적이었던 예술가들의 말년에 대한 비평서다. 사이드는 팔레스타인 출신이면서 기독교인이고, 미국의 명문 컬럼비아대학 교수로서 서구사회에 대해 비판과 공격을 서슴지 않아 미국 지식인 사회에서 소외됐던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유고작에서 예술가들의 말년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들여다본다. 아도르노의 베토벤 분석에서부터 출발해 과거로 퇴행한 작곡가로 불리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전성기 때 콘서트 무대를 버리고 스튜디오 속으로 숨어버린 글렌 굴드, 생애 단 한편의 소설 ‘표범’을 발표한 작가 람페두사와 이를 영화화한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 등이 대상이다.
그는 저자의 말에서 “나는 조화롭지 못하고 평온하지 않은 긴장, 무엇보다 의도적으로 비생산적인 생산력을 수반하는 말년의 양식을 탐구하고 싶다”고 썼다.
출판사 등록 당시 최연소 출판사 대표로 눈길을 끌었던 정희경 대표는 기획에서 편집, 영업과 마케팅까지 혼자서 해내는 1인 출판사를 이끌고 있다. 지난해 오·탈자 교정을 위해 전량 리콜을 감행해 화제를 모은 ‘기억-제3제국의 중심에서’, ‘레니 리펜슈탈-금지된 열정’, ‘세상은 한권의 책이었다’, ‘동물원에서 사라진 철학자’ 등 지난 2년반 동안 20여권의 인문과학 서적을 출간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진 않았지만 문화관광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등에서 필독도서 및 추천도서로 선정됐다.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입소문이 난 서적들이다.
“출판은 자신이 평생 추구하는 삶의 가치와 함께 할 수 있는 분야”라고 정 대표는 말했다. “인문과학 분야를 고집하는 것은 외로운 싸움이지만 책이라는 문화적 콘텐츠는 교환가치만이 아닌 보이지 않는 사회적, 윤리적 가치를 가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소비가 생산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이 많아지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정 대표는 갖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도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저자들을 발굴해 외국에 지급하는 로열티 이상의 가치를 창출하는 작품들을 계속 소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