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예술가 부부 - 소설가 한말숙·가야금 명인 황병기
[인터뷰] 예술가 부부 - 소설가 한말숙·가야금 명인 황병기
  • 김나령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8.02.22 11:42
  • 수정 2008-02-22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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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게 쿨하게’ 평등부부 반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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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 정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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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말숙(77),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72)씨 부부. 남편은 세계적인 가야금 연주자로 우뚝 섰고, 아내는 반세기 동안 독자적 문학세계를 일궈냈다. 2001년 본지가 선정한 명예평등부부 수상자이기도 한 이들은 한씨가 다섯살 연상인 원조 ‘연상연하’ 커플로 두터운 부부애를 자랑한다. 가야금을 배우다 만난 부부는 47년이 지난 지금도 곰살맞게 서로를 ‘자기’라고 부른다. 

최근 한씨가 등단 50주년을 맞아 기념집 ‘덜레스 공항을 떠나며’(창비)를 펴냈다. 책에는 등단작 ‘신화의 단애’부터 9·11 테러 당시 미국 방문 여부를 놓고 고심하던 부부의 경험담을 담은 최근작 ‘덜레스 공항을 떠나며’까지 50년 작품세계가 그대로 녹아 있다. 지난 18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한말숙, 황병기씨 부부를 만나 50년 예술세계와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언제든”

“글 쓰는 데 목숨 걸진 않았어. 그냥 쓴 거지. 다만 쓰고 싶은 이야기를 안쓰면 답답해서 그랬는지 몸이 아프더라고….”

한말숙씨는 50년 작품활동을 이렇게 회고했다. 문학만을 위해 살진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노벨문학상 후보까지 올랐으니 글재주는 타고난 걸까.

1950년대 한국문단에 그의 등장은 신선했다. 성과 사랑에 자유로운 여성상을 그린 ‘신화의 단애’는 김동리, 이어령 선생의 실존주의 논쟁을 일으키며 화제가 됐다. 한씨는 “여성의 사랑과 정조에 대한 관념을 확 뒤집었으니 속이 다 시원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이후 그는 ‘장마’(1959년), ‘광대 김선생’(1965년), ‘신과의 약속’(1968년), ‘초콜렛 친구’(1983년) 등 작품을 내놓는다. 작품들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반응이 좋았다. 단편 ‘장마’는 64년 뉴욕 밴텀북스 출판사 간행 ‘세계단편명작선’에 수록됐고, 장편 ‘아름다운 영가’는 83년부터 영어, 폴란드어, 프랑스어 등 8개 국어로 번역됐다. ‘아름다운 영가’는 93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한씨는 해외에서 작품이 사랑받은 이유로 “번역이 쉬워서”라며 겸손해 했다.

“번역가들로부터 문체에 군더더기가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 아무래도 군더더기가 없으니 번역하기가 좋았겠지.”

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까지는 작품활동을 쉬었다. 그러다 2000년부터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문인협회 회장을 맡았고, ‘덜레스 공항을 떠나며’(2002년), ‘이준씨의 경우’(2005년) 등 단편도 썼다. 50주년을 기점으로 올해 소설집도 펴냈고, 올 봄에는 수필집도 낼 계획이다. 수필집에는 74년 부부가 처음 유럽을 방문했을 때의 일화 등이 담겨 있다. 문학에 대한 강박관념이 없는 만큼, 언제든 쓰고 싶은 게 생기면 펜을 잡을 것이라는 게 한씨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원로작가가 보는 요즘 문단은 어떨까?

“70년대 후반부터 독자층이 점점 확대된 것 같아. 그런데 독자층은 확대되는데 깊이는 없어. 베스트셀러는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한쪽에선 여전히 안읽히는 작품들도 늘어가고…. 또 요즘에는 여성작가들이 부쩍 많아졌는데 왠지 작품은 잘 안읽게 되더라고.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랑은 잘 안맞아.”

물론 소설가 박완서씨의 작품은 예외다. 학창시절부터 친구인 두 사람은 자매처럼 막역한 사이. “작품 이야기는 물론 차마 남들에겐 하지 못할 이야기까지 서로 다한다”며 껄껄 웃는다.  

“남편 재혼은 절대 안돼” 가상유언장 사건

그런데 인터뷰를 하다보니 슬며시 웃음이 났다. 부부가 달라도 너무 달라 보였기 때문. 한말숙씨가 활달하고 거침없는 성격이라면, 황병기씨는 조용하고 말이 없다.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실어 느리고 진중히 말하는 게 꼭 그의 가야금 연주를 듣는 것 같다. 

부부는 황병기씨가 아직 고등학생일 때 처음 만났다고 한다.

“당시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을 배웠는데, 김윤덕 선생님이 부잣집에 공부도 잘하고 가야금도 잘 타는 학생이 있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자랑하시더라구. 그게 황 선생님이었어. 그런가보다 했는데 어느 날 실제로 봤는데 정말 멋있었어. 뽀얀 얼굴에 단정히 교복을 입은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했어.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고 황 선생님은 자기는 ‘두 눈으로 반했다’고 하더라구.(웃음)”

8년 연애 끝에 결혼한 부부는 지금도 금실이 좋다. 몇해 전 한씨는 어느 문예지에 ‘가상유언장’이란 글을 실었다가 세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내용인 즉 아이들에게 ‘너희 아빠 재혼은 안된다. 아빠는 손이 안가는 분이시니까 너희들 중 여건이 맞는 애가 아빠 가까이에서 살면 된다’고 한 것.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들은 황씨는 “그렇게 생각하는 건 그 사람 자유고”라며 슬쩍 농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다른 듯 닮은 부부는 서로 작품평도 해주고 새 곡이 나오면 연주도 들려준다. 그렇게 살다보니 평등부부상도 받았다. 비결을 물으니 무심한 듯 지켜보던 황씨가 입을 열었다.

“그냥 평등하게 사는 거지…. 매일 함께 있으라고 하면 못살아. 각자 생활이 있고 서로 인격과 작품활동을 존중해주면 되지.”

‘사랑방 음악회’ 해설, 장한나와 공연도

부부는 요즘도 각자 바쁘다. 한씨는 올 봄에 낼 수필집 작업이 한창이고, 재작년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황씨는 ‘사랑방 음악회’에서 직접 해설을 맡으며 관객들에게 성큼 다가섰다.

“사랑방 음악회는 마이크도 없이 연주자와 관객들을 직접 연결시켜 주는 공연이야. 연주 중간에 대화도 하고 해설도 해주니 연주자도 관객도 모두 좋아하는 거 같아.”

황씨는 지난해 13년 만에 새 앨범 ‘달하노피곰’을 냈다. 우리 음악사상 최초로 현대 가야금 곡 ‘숲’을 작곡한 이래 ‘침향무’ ‘비단길’ ‘미궁’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내며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가야금 연주자로 우뚝 선 노장은 이번 앨범에 그간의 작품세계를 모두 녹여냈다. ‘모순을 명상하는 선의 경지’(영국 셰필드 음악대학 앤드루 킬릭 교수), ‘초스피드시대에 없어서는 안될 정신적 해독제’(미 음반비평지 스테레오 리뷰) 등의 극찬이 앨범에 쏟아진 건 당연한 일. 황씨는 “이르면 올해 안에 다음 앨범을 낼 계획”이라고 담담히 밝혔다. 

장한나씨와의 공연도 내정돼 있다. 오는 4월5일 서울 대치동 포스코 센터에서 열리는 ‘포스코 로비 콘서트’에서 장씨가 지휘를 하고 황씨가 연주를 한다. 황씨는 “장한나양과는 나이, 장르를 뛰어넘어 교류하는 친구”라면서 “이번 공연을 몹시 기대하고 있다”며 환하게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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