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네트워크’ 의존성 탈피가 시급한 과제

 

실질적인 여성 정치세력화를 위해서는 정당 외곽의 여성단체와 정당 내 여성들의 연계와 협력이 강화돼야 한다. 사진은 2003년 11월6일 ‘여성 100인 국회 보내기’를 기치로 내건 여성계의 ‘맑은정치 여성네트워크’ 발족 퍼포먼스. 여성네트워크는 17대 총선을 겨냥해 여성후보 100인 리스트를 발표, 이들 중 상당수가 비례대표와 지역구 공천으로 국회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실질적인 여성 정치세력화를 위해서는 정당 외곽의 여성단체와 정당 내 여성들의 연계와 협력이 강화돼야 한다. 사진은 2003년 11월6일 ‘여성 100인 국회 보내기’를 기치로 내건 여성계의 ‘맑은정치 여성네트워크’ 발족 퍼포먼스. 여성네트워크는 17대 총선을 겨냥해 여성후보 100인 리스트를 발표, 이들 중 상당수가 비례대표와 지역구 공천으로 국회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17대 총선 이후 여성 국회의원이 처음으로 두자릿수(14%)가 돼 여성 정치세력화의 물꼬를 텄지만 정치 현실에서 여성들이 맺어가는 네트워크는 여전히 개인적 정치 발전이나 집단적 정치세력화에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 네트워크의 취약점을 적나라하게 밝힘으로써 여성 정치세력화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논문이 나와 주목을 끈다. 숙명여대 정치행정학부 겸임교수를 지내고 같은 대학 아시아여성연구소에서 리더십을 강의하고 있는 이화영씨가 최근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 ‘한국 정당 조직 내 여성의 네트워크 유형에 관한 연구’가 그것이다. 정당 내 ‘여성’ 문제를 다룬 연구는 국내외로 거의 전무한 현실에서 여성주의적 방법론으로 여성정치 현주소를 분석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논문이 택한 주요 방법은 국회의원, 장관 등을 역임한 당 최고위원부터 중앙당 사무처 당직자, 시당 여성국장 등 현직, 연령, 근속연수, 중앙·지방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안배한 여성 30명의 ‘정당 체험사’라는 현장 취재다.

그 결정체는 정당 내 4가지 유형의 여성 네트워크의 분석과 평가. “서로 도움이 되고, 되어주는 관계”라는 것을 네트워크의 전제로 했을 때 기존 정당 내 네트워크의 배경은 정치적 계보, 사무처 당직자의 ‘공채’ 여부, 학연, 지역연고 4가지로 분류되지만 유독 여성들에게만은 어떤 요인도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고 논문은 방증하고 있다.

논문 내용을 중심으로 정당 내 여성 네트워크의 본질을 살펴본다.

1. 여-남간 도구적 네트워크

긍정적(positive) 네트워크

‘오빠’는 나의 방패, 보호·수혜 관계로

여성들끼리는 잘 연대하다가도 막바지에 가서는 달라진다. 남성과 연대해야만 공천권이 가능하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 100% 자력으로만 국회의원이 된 여성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설령 여성이 국회의원, 최고위원이 된다 한들 남성들만큼 누구를 이끌어줄 힘이 있겠는가.

한 여성 당직자의 토로처럼 정치 현장에 있는 여성들은 흔히 말한다. ‘언니’ 네트워크보다 ‘오빠’ 네트워크가 더 중요하다고. 그만큼 여성과 남성이 맺는 네트워크는 상하·수직관계 상에서 도구적 활용도가 높아 논문에서는 ‘보호-수혜’ 네트워크로 비유된다.

여성이 남성과 맺는 네트워크는 우선적으론 자신의 당직 활동에 장애나 불이익이 될 요인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인데, 여기서 더 나아가 여성들간의 갈등도 남성과의 연계로 해결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는 곧 남성이 여성 조직 전체를 통제할 수 있는 틈새구조를 만들어준다. 한편에서는 여-남 네트워크가 각종 선출직 공천이나 상위직 임명을 받기 위한 통로로 작용한다. 반면 여성들의 남성중심 핵심 네트워크로의 접근은 요원하다.

여성당직자들은 무엇보다도 이 ‘여-남’ 네트워크에 부정적인데, 연구자는 이를 “한정된 여성끼리 좁은 영역에서 서로 경쟁하기에 승자가 되는 여성은 한명인 데 비해 나머지 모든 여성은 패자가 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또 여성이 맺는 네트워크 중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여-남’ 네트워크를 여성들이 감당하기란 상당히 힘들다. 육아와 가사를 병행해야 하는 데다가 정보에서 소외되고 긴밀한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술자리 문화에 태생적으로 약한 것 등이 제약 조건으로 작용한다. 

 

2. 여-여간 도구적 네트워크

이슈별 네트워크

여성 공동의제 해결에 주효

여성들간의 네트워크는 실질적 도움을 주고받는 도구적 관계를 형성하기가 거의 어렵다. 그 중 예외가 바로 여성 공동의제 해결을 위한 집단연대다. 호주제 폐지, 비례대표·지역구 공천 여성할당제, 법적·제도적 여성차별 해결과제 등에 집중돼 있어 ‘이슈 연대’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네트워크의 주체세력은 여성운동 경험을 가진 여성정당인들이다. 때문에 이들은 당내 여성 관련 제도의 개선 등 필요한 경우 외부 여성단체들과의 연대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내 문제를 해결한다.

실제로 한 여성당직자는 당에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을 때 여성당직자들끼리 집단 연대해 당 핵심세력들에게 강력히 이의를 제기, 결국 가해남성이 사표를 쓰고 당을 떠난 사례를 얘기한다. 그는 “남성들은 여성들이 단체행동하면, 더구나 여성당직자들이 기자실에 가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그러면 완전히 개망신이라 생각한다”고 꼬집는다.

이 여성들간의 전략적 네트워크는 기존 정당 구조를 개선하고 여성정치 확대를 위한 첫걸음이기는 하지만, 여성 개인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무력하다. 연구자는 이를 “여성이 소수이고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지 못하기에 고위당직자라 할지라도 여성들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의 효과는 남성들과는 다르다”며 현실적으로 남성과의 연계는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한편으로는 이같은 여-여간 도구적 네트워크에서도 이중적 구조 때문에 갈등이 생겨난다. 즉 구성원간에 여성주의적 정치 소신과 비전을 가졌느냐, 단지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마인드만으로 정치에 입문했느냐에 따라 입장 차이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여성=여성조직”으로 보는 정당의 통념은 여성들을 여성국, 여성위원회 등 소위 정당 내 ‘여성 섹터’라는 울타리에 가두어두는 결과를 초래한다.

게토화된 여성 섹터 안에서의 여성간의 경쟁은 이미 처음부터 갈등구조의 위험을 안게 된다. 이는 곧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남성들의 명제를 입증하며 정당 내 여성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3. 여-여간 심리·정서적 네트워크

친교 네트워크

친밀해야 업무관계도 발전적

업무 관련 일로 서로 업그레이드시키고 멘토링하는 차원은 아니다. 그냥 수다 떨고 밥 먹는 모임 수준이라고나 할까.

남자선배하고는 정치적 얘기나 내가 얻을 수 있는 소스가 많은데, 여성들하고는 외모 이야기, 가정 이야기만 한다. 그래서 여성모임과 겹치면 나는 당연히 남성들 모임에 간다.

사례에서 보듯 여성모임은 친목 도모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나 친교 네트워크의 발전은 중요하다.

남성들은 접대·오락문화를 매개로 도구관계를 형성한 후 정서적 관계로 발전하는 단계를 밟는 데 비해, 여성들은 친목모임을 통해 개인적 경험을 교환하고 정서적인 친밀감을 형성해야만 업무적 관계가 구축되기 때문이다.

반면, 이 친교 네트워크는 상부 여성조직 구성원들과 하부 여성조직 당직자들로 이분화돼 있어 여성집단간에 긴장감을 형성하고 있다. 즉 외부 영입을 통한 최고지도부의 여성 충원은 여성들간의 도구적 연결뿐만 아니라 심리적·정서적 연결을 더욱 더 어렵게 만든다.

지도부 교체나 당의 이합집산으로 여성들이 끊임없이 외부에서 영입되고 또 퇴출되는 현상이 되풀이되면서 ‘중진급’ 여성정치인 배출은 더욱 더 힘들게 된다.

4. 여-남 간 심리·정서적 네트워크

부정적(negative) 네트워크

스캔들로 비화돼 여성에게 악영향

절대 남자하고 단둘이서 밥 먹고 술 먹고 그러지 않는다. 꼭 누군가를 끼운다. 그래야 나중에 누구랑 누구랑 바람났다 식의 소문을 막을 수 있다. 이럴 땐 여자가 남자보다 더 찍힌다. 실제로 구조조정할 때 그런 소문이 작용하더라.

이성간의 친밀한 네트워크는 실제 현장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데다가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더 피해를 입는다. 또 한 여성당직자의 말처럼 “술자리가 곧 업무의 연장”이기에 정당 내 공식·비공식 연결망이 되는 이 남성친화적 오락문화에 여성이 적응해 관계를 맺기란 매우 힘들다. 특히 ‘남성들은 술 먹으며 실수를 많이 하는데도 아무렇지 않고, 여성들이 술자리에서 실수를 하면 절대 되돌릴 수 없다’는 불문율은 남성과의 정서적 네트워크 에 장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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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약한 ‘여성 네트워크’, 어떻게 강화할까

할당제·여성단체 연대·여성정치인 육성에 힘써야

여성이 여성끼리, 또 남성과 맺어가는 네트워크는 정치 현실상 취약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논문은 ‘여성정치인의 수적 증가가 곧 여성정치의 질적 발전은 아니다’라는 것을 전제로 여성들의 실질적 대표성을 보장하고 정당조직에 진출한 여성들의 네트워크를 보다 효율적으로 가동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주요 방법은 ▲정치권 전 영역에 걸친 할당제의 실질적 제도화와 강화 ▲여성국, 여성위원회 등으로 대변되는 정당 내 ‘여성 섹터’에 대한 재고와 논의 ▲여성단체의 적극적인 정당 개입 ▲산학협동 시스템, 여성단체 인력풀 제공 등을 통한 차세대 여성정치인의 발굴과 육성, 4가지다.

 이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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