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가정의 비극 통해 본 ‘가족의 의미’
1990년대 초반 미국 LA 한인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충격적인 실화가 무대에 오른다. 오는 29일까지 대학로 알과핵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아버지가 사라졌다’가 그것. 공연을 앞두고 맹연습 중인 극단 여인극장의 연습실을 찾아 배우와 스태프들을 만났다.
“실화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성폭행 문제를 넘어서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 겪는 문화적 차이와 소수민족이 겪는 차별과 설움, 그리고 세대의 차이와 가족 해체를 다루고 있습니다. 외국인 근로자를 무시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가족과 효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작품이 되었으면 합니다.”(김경애 여인극장 대표)
변호사 제시카는 최 목사 가족간의 갈등을 밝히며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려 한다. 그러나 무엇이 진실이고 누가 피해자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채 관객의 몫으로 남기고 끝을 맺는다.
배우 출신으로 새로 대표를 맡은 김경애씨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여인극장도 새출발을 시작하려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사라졌다’는 생전에 고인과 깊은 인연을 맺었던 연극계 원로들과 그를 존경하는 후배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여 마련한 무대다. ‘귀로’, ‘박사를 찾아서’ 등 여인극장의 여러 작품을 쓰며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극작가 조원식씨가 각본을, 김도훈 극단 뿌리 대표가 연출을 맡았다. 배우 장두이(최 목사), 박리디아(제시카 윤)가 주연을 맡고 여인극장이 배출한 실력파 매우 정경순도 특별출연한다.
연출을 맡은 김도훈 극단 뿌리 대표는 연극계의 대표적인 원로로 여인극장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연극계 선배인 강유정 선생과 함께 많은 공연을 관람하고 열띤 토론을 벌였던 일이 기억난다”고 회고했다. 또한 “국내에서 드문 법정 심리극이라는 새로운 장르에도 도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김경애 대표는 “여성문제와 여성의 권리를 다룬 작품에 매진했던 고인의 뜻을 받들어 만든 가족연극이자 여성연극”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녀들이 부모를 모시고 꼭 함께 봤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전했다.
故 강유정 연출가는 1966년 10명의 여성배우가 주축이 된 극단 여인극장을 설립했다. ‘갈매기’를 시작으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아름다운 여인의 작별’, ‘아내란 직업을 가진 여인’ 등 여성의 삶을 사실적으로 다룬 작품을 주로 연출했다. 2005년 사망할 때까지 총 122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사망 직전까지 임영웅, 권오일과 더불어 ‘현역 70대 연출가 3인방’으로 불리며 활발한 활동을 폈다. 공연 첫날인 15일 연극계 인사들이 모여 고인을 기리는 추모제 자리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