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없이 홀로 임신을 결정하고 낳고 키우는 사전적 의미의 싱글맘은 드라마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여전히 멜로드라마의 트렌드는 애 딸린 싱글맘과 매력적인 총각의 로맨스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극 속의 ‘싱글맘’들은 홀로가 아니다. 가족이 한 무더기다. 다만 법적인 남편만 없을 뿐이다. 웃자란 아이는 ‘철부지’ 엄마 옆에서 훈수를 두다 못해 사랑의 전령사로 나선다. 시어머니는 으레 ‘엄마’라는 호칭으로 출신성분을 헷갈리게 하며 등장해, 딸처럼 예뻐하는 며느리와 닭살 애정을 과시하고 빨리 짝을 찾으라고 성화다.

드라마 속의 싱글맘들은 MBC ‘깍두기’, SBS ‘마이러브’, SBS ‘불한당’처럼 시어머니와 한집에서 살거나, MBC ‘고맙습니다’처럼 행동반경 내에서 수시로 부딪치며 살아야 한다. 그녀들에게는 하나같이 친정엄마가 없다. 유사시에 돌아갈 곳은 ‘시댁’뿐이다. 싱글맘은 늘 자기 아이가 누구네 ‘씨’인지 명심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 아버지의 빈 자리는 더욱 목마르고  다른 누군가로 반드시 채워야 한다.

죽은 남자든 헤어진 남자든 ‘남편’의 그림자와 끈은 그녀들을 뒤덮고 있다. 아버지 없이 홀로 임신을 결정하고 낳고 키우는 사전적 의미의 싱글맘(Single Mom)은 드라마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 그런 모자가정을 정의할 엄두 자체를 못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방송인 허수경씨의 출산은 그래서 드라마의 틀 밖이다.

이혼 후 ‘아버지’ 몰래 아이를 낳았던 KBS ‘행복한 여자’의 지연(윤정희 분)은 이중삼중의 출생의 비밀에 발목이 잡혔다. MBC ‘겨울새’의 영은(박선영 분)은 아이 때문에 마마보이 주경우(윤상현 분)를 벗어나지 못한다.

‘천하잡놈 불한당과 천진난만 싱글맘의 사랑 이야기’를 표방한 SBS 새 수목극 ‘불한당’은 이런 싱글맘 드라마의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조명훈의 원작만화보다는 작년 인기 드라마 ‘고맙습니다’가 더 많이 연상된다. 매력적인 사기꾼 오준(장혁 분)은 싱글맘 진달래(이다해 분)를 만나 인생막장에서 구원받는다.

이제 싱글맘은 세상의 온갖 ‘불한당’들에게 구원의 여인까지 돼주어야 한다. 다만 희한하게도 현실의 싱글맘들을 가장 괴롭히는 ‘경제적 고통’은 그녀들을 비켜간다. 꼭 어디선가 돈 많은 남자가 나타나 결혼이라는 포석을 깔기 때문이다.

드라마들이 일제히 새로운 신데렐라로 싱글맘을 전격 캐스팅하면서, 싱글맘의 현실적 어려움은 증발되고 판타지 로맨스만 남았다. 편견은 그대로인데 믿을 건 ‘사랑’뿐이라고 한다. ‘천진난만’은 그녀들의 필수 덕목이다. 공효진, 이다해 등 명랑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미혼의 여배우들을 섭외하는 까닭이다.

드라마 속의 싱글맘은 가족이라는 그물망에 걸려 있다. 전(前) 시댁의 보호 아래 곁방살이하는 그녀들에게 가부장제는 여전한 본적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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