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수에 미술지도‘희망의 불씨’그려요

 

사진제공 = 정성욱(작가)
사진제공 = 정성욱(작가)
경북 청송군 청송교도소에는 ‘백야’라는 미술반이 있다. 살인·강도죄 등으로 무기나 10년 이상 장기형을 선고받은 이들이 그림을 그리며 희망을 찾는 백야미술반은 2002년 첫 전시회를 열었다. 이후 지난해까지 6회에 거쳐 서울 인사동과 광주, 미국 뉴욕에서 성공적으로 전시회를 열어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이 미술반을 이끄는 사람이 바로 강신영(59) 박사다. ‘미술 공부를 위해 밤 늦도록 하얀 전구를 밝힌다’는 의미로 ‘백야(白夜)’라 이름 붙인 그는 2001년부터 매주 청송교도소를 오가며 미술반을 지도해왔다.

“전시회는 3년 정도 열지 않을 계획입니다. 그동안 재소자들에게 전념한 이유는 ‘약속’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처음 미술반을 시작할 때 제가 ‘너희들이 말을 잘 듣고 따라와준다면 나는 끝까지 너희들과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거든요.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들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것은 너무나 뿌듯해요.” 

화가이기도 한 그의 본업은 원래 의사다. 경희대 의대와 고려대 의과대학원을 졸업하고 1987년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된 그는 11년간 병원을 운영하다 91년 이혼 후 캐나다로 떠났다. 몇년간 평소 좋아하던 사진과 그림 공부를 할 계획이었다. 그러던 중 그의 호랑이 사진과 그림이 ‘와일드 라이프 아트’란 잡지에 게재된 것이 인생항로를 급선회한 계기가 됐다. 강 박사의 작품을 본 한 미국인 사형수가 큰 감동을 받은 나머지 감사의 뜻을 담은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내용이 자세히 기억나진 않았지만 미국인 사형수의 편지를 받았을 때가 제 나이 쉰 가까이 되던 즈음이었습니다. 캐나다에서 그림과 사진 공부를 하면서도 뭔가 다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계속하던 시기였죠. 그 편지를 받고 갑자기 의과대 재학 중이던 22세 때에 받았던 한 남성사형수의 편지가 생각났어요. 이 두 편지가 제 인생을 바꿔놓은 것 같아요. 나이 쉰을 하늘의 뜻을 안다는 의미에서 지천명(知天命)이라 부른다죠? 전 그때 재소자들과의 인연을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97년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이 가진 것을 베풀 수 있는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99년 말 우연히 청송교도소장과 만나면서 재소자들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다. 그는 오는 10월쯤 출소자들을 위한 무료 진료원인 ‘백야의원’을 차리면서 본업인 의사로 돌아갈 계획이다. 이미 2006년부터 서울역 부근에 출소자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장기 징역생활 후 사회에 적응 중인 이들을 정성스레 보살피고 있다. 그곳에는 그동안 공들인 ‘백야미술반’ 출신의 출소자 4명이 살고 있다. 올 4월에는 식구가 5명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그들에게는 사회생활의 사소한 것도 굉장히 낯섭니다. 동사무소나 은행 등에 가서 해결해야 하는 업무도 많은데, 그런 일을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하다못해 휴대폰 개통하는 일도 모두 신경써주고 있답니다.(웃음) 이렇게 일상을 돌보는 일과 동시에 병원 개업 일에 주력할 계획이에요. 그것이 제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병원을 개업해도 미술작업은 소홀히 하지 않을 계획이다. 출소자들을 위해 무료진료를 보는 병원이기 때문에 일주일에 3일 정도는 병원에 있고, 나머지 시간들은 모두 개인 작업을 위한 시간으로 쓸 생각이다. 경기도 이천에 작업실도 마련해놓았다.

포기하지 않는 뚝심과 봉사하는 마음으로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자처하는 강신영 박사. 그는 오늘도 태풍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광풍이 지나면 평온한 ‘태풍의 눈 속’에서 그가 기꺼이 하고자 하는 일들과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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