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길 걸으며 명상 날아가 듯 가뿐
이번 여행은 ㈜도서출판 이프가 주최했다. 하룻동안 온전히 무공해 자연 속에서 자신 안팎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낱낱이 비춰보는 ‘걷기명상’을 체험하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참가비까지 무료여서 40명 정원이 재빨리 선착순 마감됐다. 임나혜숙(마산 MBC 사업국장), 류숙렬(시인), 김신명숙(여성학자), 엄을순(문화미래 이프 대표) 등 친근한 얼굴들이 함께 걸으니 그저 평범한 흙길도 특별했다.
수로를 따라 걷는 길 양옆으로 볏단이 드문드문 세워진 겨울 들판이 끝없이 펼쳐졌다. 목적지인 창후리 포구까지는 작은 구멍가게도, 인적도 없다. 간간히 나타나는 갈대밭이 전부다. 그래서 시선은 내부로 향할 수밖에 없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은 그렇게 저절로 주어졌다. 40명이 걸었으나 얘깃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런 걷기 여행은 내안의 방랑자, 유목민, 가출소녀 기질을 모두 꺼내 들과 산에 풀어놓는 일이에요. 세상은 자동차가 질주하는 속도로 돌아가지만 우리 몸에는 분명 자신만의 속도가 있거든요. 아주 가끔이라도 이렇게 단기 가출이라도 해서 내 몸의 속도대로 살아야 해요. 그래서 걷기 여행은 스스로 아름다워지고 힘 있어지는 과정입니다.”
돈대에 올라서니 몸이 으슬으슬 추웠다. 하지만 각자 준비해온 도시락을 꺼내니 ‘몸을 살리는 다이어트 여행’이 실로 빛을 발했다.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정성껏 준비한 무공해 반찬들, 새벽부터 손수 싸온 김밥, 따뜻한 들깨미역국 등이 먹음직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패스트푸드와 야식, 강한 조미료에서 해방된 몸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듯 참가자들은 큰 목소리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오후에는 봉천산 입구에서 능선을 따라 산 정상인 봉천대에 이르는 코스를 걸었다. 해발 300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하지 않은 몇몇 참가자들에게는 벅찬 코스였다. 오솔길을 올라 정상에 도착하니 강화의 산과 들, 서해 풍광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곳곳에 흐르는 물줄기가 겨울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무엇보다 일행은 손에 잡힐 듯 건너다 보이는 바다 건너 북녘이 지척인 점에 감탄했다. 전지현(30)씨는 “산 정상에서 하늘과 바다가 경계 없이 펼쳐진 모습을 보니 이유명호 선생님께서 숨겨두고 싶은 보물 같은 산이라고 한 뜻을 이해하겠다”고 말했다.
여행은 이유명호씨의 단골 백반집인 ‘우리옥’에서 푸짐한 저녁을 나누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1954년부터 대대로 손맛을 이어오고 있는 우리옥에서 미역국, 콩비지, 취나물, 고등어조림, 조개젓, 도토리묵, 동태찌개 등 담백하고 소박한 음식을 앞에 두고 이유명호씨가 나지막이 자신의 소망을 건넸다.
“강화도는 흙길 자전거길을 만들기 딱 좋을 천혜의 조건이에요. 섬 북쪽의 민통선 철조망 안에는 흙길이 오롯이 남아있죠. 난 서해에서 동해까지 아스팔트 말고 흙길을 만들어 우리나라에 단 하나밖에 없는 ‘평화와 자연의 순례길’을 꿈꾸고 있어요. 바람의 딸 한비야씨랑도 여러번 같이 강화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갯벌 고스란히 살려두고 철책선은 설치미술 삼아 외국 친구들이 걸으면 소문이 퍼지고, 세계 평화의 메카가 돼 자연도 보존하고,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으니 정말 멋질 거예요.”
그는 우리 아이들과 세계인들이 함께 걷는 ‘평화의 길’이 만들어질 때까지 보다 많은 이들과 걷고 또 걸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