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드 보부아르 탄생 100주기
시몬 드 보부아르 탄생 100주기
  • 장미란 / 여성신문 특파원 (파리)
  • 승인 2008.01.18 12:02
  • 수정 2008-01-18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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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된다는 것은 상대에게도 ‘자유’ 줘
책에서 삶 속에서‘여성 해방’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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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가 활짝 웃고 있다. 물론 사진 속의 보부아르다. 파리 라틴 구역의 의과대학 거리에 있는 코르들리에 수녀원(원래 13세기에 만들어진 수도원이었으나 프랑스혁명 당시 혁명가 클럽으로 사용되었다)에서 열린 보부아르 탄생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장. 행사를 알리는 대형 포스터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보부아르는 마치 살아서 라틴 쿼터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젊은이들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듯하다. 그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기록한 ‘정숙한 처녀의 회고록’은 “나는 1908년 1월9일 새벽 4시 라스파이 거리 쪽으로 난 흰색 가구로 장식된 방에서 태어났다”로 시작한다.

보부아르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보부아르의 탄생일인 1월9일 오전 9시30분 세계 각국에서 온 300여명의 여성들이 그들의 ‘정신적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불가리아 출신으로 파리에서 세계적인 기호학자이자 정신분석가로 인정받은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주도한 이 학술행사는 ‘내밀한 글쓰기’, ‘여성운동’, ‘철학자 보부아르’, ‘작가 보부아르’라는 4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첫째날은 ‘내밀한 글쓰기’를 주제로 보부아르가 사르트르, 넬슨 알그렌, 클로드 란즈만 등과 가진 사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그의 사생활을 재조명하였다. 이날 프로그램은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창간한 잡지 ‘레 탕 모데른’의 편집인이자 유대인 문제를 다룬 영화 가운데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쇼아’(Shoah)를 만든 클로드 란즈만의 회고로 시작돼 필립 솔레르스의 ‘보부아르의 사랑’이라는 제목의 시 발표로 끝났다.

둘째날은 사르트르와 구별되는 독자적인 여성 철학자로서의 보부아르를 재조명하고, ‘제2의 성’을 중심으로 여성운동에 미친 보부아르의 영향력을 재평가하였다. 셋째날 오전에는 ‘정숙한 처녀의 회고록’, ‘세월의 힘’ 등 자전적 회고록을 통해 보부아르의 주체의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밝히는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오후에는 ‘초대받은 사람’, ’만다린’ 등의 소설작품들에 대한 재평가가 있었다.

 

평생 자유로운 연인 관계를 유지했던 장 폴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연합뉴스
평생 자유로운 연인 관계를 유지했던 장 폴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연합뉴스
‘제2의 성’ 되살리기

1949년 출판된 ‘제2의 성’에서 보부아르는 자신의 삶에서 출발하여 생물학, 역사학, 종교학, 정신분석학, 사회학, 인류학, 철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종합하여 여성해방이라는 실천적 목표를 제시하였다. 이 책은 이미 한국어를 비롯한 30여개 외국어로 번역되었는데, 1977년 이화여대에서 교양과목으로 처음 열린 여성학 과목 참고문헌에도 들어 있었다. 99년 이 책 출판 50주년을 기념하여 파리에서는 보부아르주의자인 여성학자 크리스틴 델피의 주도로 ‘제2의 성’ 출간 50주년 국제학술행사가 열렸고, 그 결과가 책으로 출판된 바 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도 ‘제2의 성’과 관련해 여러 편의 발표가 있었다. 스웨덴 여성 아사 모버그는 대부분의 번역판들이 완역이 아니고 발췌 번역일 뿐만 아니라 용어의 선택이나 의미 전달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새로운 영어 번역판을 준비하고 있는 쉴라 말로바니 슈발리에와 콩스탄스 보르드 두 사람은 1953년에 나온 영어 번역판에 오역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문용어와 인용문을 번역하면서 많은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았으며, 특히 구두점을 비롯해 보부아르적 문체의 힘을 살리기 위해 고민했다고 밝혔다. 새 영어 번역판은 ‘제2의 성’ 출판 60주년을 기념해 2009년에 출판될 예정이다. 그리스에서 온 마리아 메나가키는 이 책이 그리스에 소개되고 번역된 과정과 여성운동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1956년 이후 70년대에 개정판이 나왔으며 아직도 3년에 한번씩 새로 인쇄되고 있다고 밝혔다.

보부아르 딸들의 증언

86년 보부아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엘리자베트 바뎅테르는 “여성들 모두는 보부아르에게 크게 빚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10일 오후 학술대회장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케이트 밀레트는 자신을 비롯한 미국 여성운동 이론가들이 시몬 드 보부아르에게 받은 영향력의 정도를 증언하였다. 이날 오후 9시30분 아르테 텔레비전 방송에서 방영된 독·불 합작의 다큐멘터리에서는 주디트 버틀러, 클레망틴 오텡 등이 나와 시몬 드 보부아르가 자신의 삶에 미친 영향을 증언했다. 11일 아침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한 작가 아니 에르노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작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같은 날 폐막행사에서 크리스테바는 17~18세 무렵 불가리아에서 ‘제2의 성’을 읽었을 때와 71년 인공유산을 했다는 343명의 여성 서명자 명단에서 보부아르의 이름을 보았을 때 받았던 충격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증언했다.

알제리 출신으로 ‘니 퓌트 니 수미즈’(창녀도 아니고 복종도 아니라는 뜻)라는 이민 여성운동 단체를 주도하다가 사르코지 정부의 장관으로 기용된 파델라 아마라는 새해 인사에서 “자유롭게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자유롭기를 원하는 것이다”라는 보부아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보부아르 탄생 100주년을 기렸다. 프랑스의 대표 일간지 ‘르몽드’는 지난 11일자 책 서평란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 삶으로서의 작품’이라는 제목으로 2개 면을 할애했다. 특집 머리기사에서 서평란 책임기자인 조지안 사비뇨는 “우리가 시몬 드 보부아르를 사랑한다면 그건 그의 정직성, 투명성, 끝없는 진리추구, 그리고 자유를 향한 의지를 존경한다는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면서 86년 보부아르 별세 직후 ‘리베라시옹’지에 실렸던 프랑스 차이주의 여성운동가 앙투아네트 푸크의 글을 비판했다.

11일 학술대회장에서도 조지안 사비뇨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보편주의적 입장을 비판하는 ‘차이주의자’들(이들은 남성과 다른 여성의 특성을 모성에서 찾는다)과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보부아르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학술대회 현장.abortion pill abortion pill abortion pill
보부아르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학술대회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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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언론의 반응

시몬 드 보부아르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의 신문, 잡지, 방송 등에서도 여러 가지 특집이 마련되고 있다. 문학 교양잡지 ‘마가진 리테레르’는 2008년 1월호를 시몬 드 보부아르 특집호로 꾸몄다. 아직 터번을 쓰기 이전의 젊은 시절 보부아르의 흑백사진을 표지로 한 이 잡지는 ‘시몬 드 보부아르, 자유를 향한 열정’이라는 큰 제목 아래 최근에 보부아르의 전기 ‘투쟁하는 비버’(Castor de guerre)를 쓴 다니엘 살나브와의 인터뷰 기사, 보부아르의 양녀가 된 실비 르봉이 처음 공개하는 그의 젊은 시절 일기에 대한 글,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보부아르와 알그린의 관계를 다룬 글, 보부아르와 여성운동, 보부아르가 미국의 여성학과 여성운동에 미친 영향에 대한 글, 보부아르의 지적 후계자 엘리자베트 바뎅테르와의 인터뷰 기사 등을 실었다. 또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자란다”는 보부아르의 말을 “여성으로 태어나지만 내가 여성이 된다”는 명제로 바꾼 줄리아 클리스테바의 글도 게재했다.

아르테 비데오에서는 작가 시리즈의 일환으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인터뷰 2편과 영상자료들을 편집한 DVD를 내놓았다. 오는 5월에는 파리 13구의 국립도서관과 12구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이어주는 센강 위의 ‘시몬 드 보부아르’ 인도교에 대형 비디오가 설치되고, ‘나는 삶에서 모든 것을 원했다’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될 예정이다.  

보부아르의 누드사진과 사생활

프랑스의 대표 주간지 ‘르 누벨 옵쇠르바테르’도 1월 신년호 특집으로 시몬 드 보부아르 탄생 100주년이 갖는 의미를 다루고 있다. 이 잡지는 71년 보부아르를 비롯한 343명 여성들의 인공임신중절 체험을 밝혔던 잡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특집의 ‘스캔들을 일으키는 보부아르’라는 제목처럼 이 잡지의 표지사진이 스캔들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3일부터 9일 사이에 파리 시내 전역에 있는 수많은 가판대 외벽에 붙은 이 잡지의 광고 포스터에 실린 보부아르의 대형 누드 사진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보부아르의 흑백 누드 사진은 1952년 시카고에서 찍은 것으로 당시 보부아르가 열애 중이던 넬슨 알그렌의 친구 집에서 목욕을 하고 머리를 다듬고 있는 장면으로 알그렌의 친구 사진작가 아트 셰이가 열려진 문틈을 통해 포착한 것이다. 물론 보부아르도 거울을 통해 그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을 알고서 돌아서서 정면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보부아르가 자신의 탄생일 100주년을 기념해 이 사진이 공개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프랑스의 여성단체 ‘시엔 드 가르드’(경비견)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사적인 모습을 상업화하고 여성의 몸과 여성운동을 모욕한 이 잡지사에 항의하는 의견을 발표하고, 지난 11일 오후 잡지사 앞에서 사과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100주년 기념행사 참석자들 가운데는 이 사진이 보부아르의 숨겨져 있던 여성성을 보여줌으로써 ‘남근적 보편주의의 투사’라는 그릇된 이미지를 희석시켜 남녀평등을 주장하면서도 여성다움을 간직할 수 있다는 의미를 던져준다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의견에 대해 73년 ‘카이에 드 그리프’라는 프랑스 최초의 여성주의 잡지를 창간했던 여성철학자 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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