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적 특성과 시사점

미국 대통령선거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선거이자, 동시에 가장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선거이기도 하다. 각 정당의 후보를 선출하는 예비선거(primary)는 본선거일 거의 1년 전에 시작되며, 따라서 후보의 선거운동은 2년 이상 지속되는 것이 보통이다. 미국 대통령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비틀스의 노래에 나오는 ‘길고 험한 길’(long and winding road)이다.

이렇게 선거가 오래 지속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19세기 정당 개혁의 결과, 과거 담배연기 가득한 방에서 정당 보스들끼리 협상을 통해 결정하던 후보 선출 방식에서 벗어나 후보 선출 과정에 모든 당원(혹은 당원이라고 천명하는 사람)이 참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구체적 참여 방식은 주에 따라서 예비선거와 코커스(caucus·일종의 회의 방식)로 나뉘는데, 최근에는 예비선거 방식이 대세가 되고 있어 일반적으로는 그냥 예비선거라고 부른다.

또 다른 이유는 미국이란 나라가 워낙 큰 데다 연방제의 특성상 51개 주가 제각기 독립적으로 예비선거를 실시하기 때문이다. 일부 주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선거를 별도로 실시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예비선거를 끝내는 데만도 무려 6개월이 걸린다.

물론 이렇게 선거 기간이 길다보니 후보들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진다는 장점도 있다. 수많은 토론을 거치면서 각 후보의 인물됨과 정책 견해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반면 정당보다는 후보 중심으로 선거운동이 진행된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엄청난 선거자금이 소요된다는 점은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이번 2008년 미국 대선은 이제 예비선거가 막 시작된 단계다. 가장 먼저이기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는 아이오와 코커스와 뉴햄프셔 예비선거가 이제 막 끝났다. 20개 주 이상이 함께 선거를 치르기 때문에 관심을 받는 ‘슈퍼 화요일’(Super Tuesday)은 2월5일이다. 6월28일이 되어야 모든 예비선거 일정이 끝난다.

예비선거가 끝나면 민주·공화 양당은 각기 전당대회를 개최하여 대통령 및 부통령 후보를 공식적으로 선출한다. 민주당은 8월25~28일 콜로라도 덴버에서, 그리고 공화당은 9월1~4일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에서 모인다. 예비선거 결과에 의해 이미 후보가 실질적으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현재의 전당대회는 예비선거 기간 동안 서로 다투던 후보와 후보 지지자들이 함께 모여 하나가 되는 모습을 TV를 통해 전국민에게 과시하는 일종의 축제의 장이 되었다. 물론 이러한 전당대회는 곧 본선거의 시작을 의미한다. 본선거의 선거운동은 약 2달간 진행되며, 선거일은 11월 첫번째 화요일로 정해져 있다.

연방제의 특성 때문에, 미국의 독특한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선거 방식 때문에 미국의 대통령선거는 지구상에서 가장 과정이 복잡한 선거 중의 하나다. 선거일은 동일하지만 사실 선거는 각 주 단위로 진행되며, 엄밀하게 말하면 유권자는 후보를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천명한 선거인단을 선출하는 것이다. 개표 결과 주별로 가장 많은 득표를 한 후보가 그 주의 선거인단 투표를 모두 가져가는 ‘승자독식’(the winner takes all) 방식을 취하게 된다. 각 주의 선거인단 수는 2명의 상원의원에 그 주의 하원의원 수를 더한 것이다. 51개 주의 선거인단 수를 모두 합하면 538명이 되는데, 이 중 과반수(270)를 얻어야 대통령에 당선된다. 어느 후보도 과반수 득표를 하지 못하면 하원에서 대통령을 결정한다.

이번 2008년 미국 대선은 민주당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 누가 민주당 후보가 되어도 공화당 후보를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라크 전쟁 후유증이 여전히 현 부시 공화당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는 데다 최근에는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더더욱 현 정부와 공화당에 대한 미국 유권자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의 주요 쟁점이 이라크 전쟁에서 점차 경제문제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슈의 전환이 공화당에는 그리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대외관계 및 국가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공화당이 유권자들로부터 더 높은 점수를 받는 반면, 국내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유권자가 민주당의 능력을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언론의 주된 관심은 민주당의 예비선거 결과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뉴욕주 상원의원 힐러리 클린턴과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버락 오바마 두 유력 후보간의 대결은 미국 사회의 가장 대표적인 소수집단인 여성과 흑인 대표간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선거에서 승부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조금 더 넓게 보면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는 승패를 떠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첫째, 이번 선거에서는 미국 최초로 백인 남성이 아닌 대통령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미국 사회가 얼마나 다양한 집단에 정치적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둘째, 모든 선거 일정이 제도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랜 선거운동 기간을 거쳐 후보의 자질 검증과 정책 검증이 충분히 이루어지는 미국의 대선 과정은 지난 12월 검증 공방만 하다가 대통령 선거를 마쳐버린 우리의 입장에서 부러운 면이다. 선거 기간이 길어지면 쓸데없는 낭비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훌륭한 지도자를 뽑는 일처럼 중요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우리의 대통령선거 일정도 한시 바삐 제도화하여 예측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셋째, 미국 대통령선거 과정의 한가지 치명적인 문제점은 정당 대신에 후보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통령이라는 한 개인에게 모든 권한을 부여하는 대통령 중심제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당후보 선출과정을 지나치게 민주화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적 의견도 있다. 사실 미국의 정당은 유럽 국가들에 비해 조직 면에서 매우 약하다. 이렇게 약한 정당을 가지고 정당정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라고 부를 정도다.

한국에서는 미국의 제도는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소위 ‘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의 무조건적 도입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향후 한국 민주주의 공고화의 최대 과제가 정당정치의 활성화에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특정 제도의 도입에 앞서 그 정치적 효과를 면밀하게 분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