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전문 출판사 등록하자 지인들 돈안되는 책 출판 걱정
경제·민주화 닮으려는 그들과 공동의 이익 도모할 순 없을까

지난해 10월 아시아 전문 출판사 아시아네트워크 등록을 마쳤다. 버마(또는 미얀마)의 현재 정치상황을 다룬 ‘아웅산 수찌와 버마 군부’를 첫 책으로 냈고, 곧 출간될 두번째 책은 2006년 이스라엘-레바논 전쟁 이야기다.

지금까지 아시아네트워크가 기획한 12권 중에 중국, 일본을 중심에 놓고 본격적으로 다룬 책은 없다.

캐나다, 멕시코와 함께 북아메리카주를 이루는 미국보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미국이 나에게 훨씬 자연스러운 것처럼, 중국이나 일본도 나에게는 아시아 안에 있는 한 나라가 아니었던 것 같다.

새로 나온 책을 들고 출판업 동료이자 오랜 친구에게 달려갔다. 책을 건네는 내 눈빛에는 설렘과 두려움이 다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애썼어. 책이 나오긴 나왔구나. 축하해.” 책을 받아든 친구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친구는 늘 냉정한 조언자이며 동시에 든든한 후원자였다. “축하한다는 사람 표정이 왜 그래?” 아마 내 목소리도 경쾌하지 못했을 것이다.

친구의 얼굴은 내가 딛고 선 냉정한 현실을 아프게 전하고 있었다. ‘안팔리는 아시아를 하겠다는 것도 무모한데, 그나마 돈 되는 나라들을 빼놓고 어쩌려는 거냐.’ 여러 차례 들어온 이 말이 또다시 머리를 꽉 채웠다.

돈 받고 일을 한 지 20년이 넘었다. 누군가에게 돈 되는 일을 20년 넘게 했다는 말이다. 똑똑한 사람, 전문 능력이 탁월한 사람, 권력이나 돈이 있는 사람, 꽤 많은 파트너를 겪었는데 가장 큰 돈이 되었던 존재는 동지였다.

석달을 함께 일했건, 10년 넘게 곁을 지켰건 서로의 약점을 극복하며 무엇을 함께 이루자고 한 동지가 결국은 나에게 가장 오래도록 큰 돈벌이를 만들어주었다.

성급한 욕심에 누구를 잠시 이용하기 위한 도구 삼아 일한 결과는 거의 씁쓸했다. 내 도구가 되어줄 호락호락한 존재는 세상에 아무도 없었다. ‘동지를 찾자, 동지가 되자’는 나의 판단은 영리한 이기적 선택이기도 했다.

국가간의 관계는 개인적인 관계보다도 더 극단적인 정글의 속성에 따라 움직인다. 약속이나 윤리는 힘과 실리 앞에 맥없이 무너지고 강대국에 맞선 약소국은 늘 더 많이 빼앗기고 더 심하게 두들겨 맞는다. 이러한 국제질서에 대응하는 한국의 전략은 강대국에 맞서지 않고 ‘약소국’을 시장이나 자원창고로 이용하는 것이었다. 약소국들은 한국의 시장이나 자원창고로 호락호락 이용당해줄까?

 

정치·경제 공동체를 넘어 군사·환경 공동체를 지향하는 유럽연합(EU)이 변방국들까지 포괄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미국가들이 미국 등 서구와 맞서며 남미공동시장(Mercosur), 남미은행(Bank of the South)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동지를 만들고 있는 것 아닐까?

 ‘아시아의 시대’라는 희망 속에서 한국은 동북아 중심을 외친다. 혼자서도 충분히 힘이 센 중국과 일본이 한국을 동북아 중심에 놓고 싶을지 의문스럽다. 내가 만난 ‘돈 안되는’ 아시아 국가 사람들은 한국이 이룬 경제발전뿐 아니라 한국의 민주화 성취에서 자국의 희망을 찾고 있었다. 그들과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선택은 아닐까? 미국, 중국, 일본…. 강대국만을 향한 우리의 오랜 짝사랑이 안타깝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형님’뿐 아니라 동지들을 갖는 것, 그리하여 때로는 자존심과 실리를 스스로 찾기도 하는 것, 아시아네트워크가 ‘안팔리는 나라’들의 책을 100권까지 출간하는 것, 터무니없는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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