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드 보부아르 탄생 100주년 재조명 활발
시몬 드 보부아르 탄생 100주년 재조명 활발
  • 한경미 / 번역가, 자유기고가, 통신원
  • 승인 2008.01.18 09:59
  • 수정 2008-01-1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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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성’ 여성들이여 "새장은 스스로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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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시몬 드 보부아르의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1908년 1월9일생인 보부아르는 철학가, 소설가로 특히 실존주의 철학가 사르트르의 평생 동반자로 더 유명하다.

1930년대, 사르트르와 계약결혼을 맺어 시대를 앞서갔던 여인. 결혼하지 않은 여자의 운명을 생각해볼 수 없는 시대에 결혼과 출산, 여성에게 주어진 가사를 과감히 거부했던 여인. 각자 호텔의 다른 방에서 독립적으로 살면서(가사를 피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자유로운 연애활동을 벌였지만 항상 서로에게 되돌아왔던 전설적인 커플이었다. 보부아르 탄생 100주년을 맞아 지금 프랑스에서는 재조명 작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필자는 보부아르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필자가 처음에 프랑스로 유학 올 때는 보부아르를 전공할 예정이었다. ‘그녀의 문학작품에 나타난 페미니즘 연구’가 당시 필자의 연구 테마였다. 1990년 6월, 그해 10월 새학기부터 시작하는 석사과정을 밟기 위해 사브와 지역의 소도시 샹베리로 이사할 준비를 할 때였다.

여기 저기 기숙사를 알아보던 중에 미니텔(인터넷의 전신으로 당시 프랑스에서는 미니텔을 통해 많은 자료를 구할 수 있었다)에서 우연히 시몬 보부아르 회관을 발견했다. 순간 너무 반가운 생각부터 앞섰다. 보부아르 회관에 묵으면서 보부아르를 전공한다면 자료도 쉽게 얻을 수 있어 힘들이지 않고서도 논문을 작성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당시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우선 빈 자리부터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보부아르 회관에 전화를 넣었다.

“여보세요, 10월부터 쓸 빈방이 있는지 알고 싶은데요.”

“10월부터 쓸 방이라구요?”

뭔가 내키지 않는 듯한 어조였다. 십중팔구 나의 짧은 불어 실력에 견주어 내가 외국인이란 것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내키지 않는 반응을 보이는 거라고 지레 겁을 먹었다. 좀더 용기를 내기로 했다.

“네, 사실은 제가 10월 학기부터 사브와 대학에 등록했거든요. 그래서 보부아르 회관에서 방을 하나 얻을까 해서요.”

그제서야 상대방의 태도가 달라졌다. 마치 여지껏 풀지 못했던 수수께끼가 풀리기라도 한 듯한 어투였다.

“아, 네, 그런데 마드모아젤, 우리 회관은 학생들을 받는 곳이 아니랍니다. 이곳은 남편에게 폭행당해 집을 나와 갈 곳이 없는 여자들을 임시로 수용하는 회관이에요. 그래서 회관 이름도 소설가이자 페미니스트인 시몬 보부아르 여사의 이름을 딴 거구요.”

“어머, 그래요, 전 그런 줄도 모르고…. 전 마침 보부아르를 전공하려고 하던 차에 미니텔을 두드리다 보니 똑같은 이름의 회관이 나오기에 잘되었다 싶어서 전화 드렸던 거예요. 죄송합니다.”

얼떨결에 전화를 끊고는 혼자서 한참을 웃었다. 구타당한 여성들이 주로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단 며칠간이라도 피신처를 구하는 일종의 여성회관에 한 이방인 여학생이 명랑한 목소리로 방을 구한다고 했으니 상대방도 나처럼 꽤나 웃었을 게 분명하다.

보부아르는 1949년에 발표한 저서 ‘제2의 성’으로 페미니스트 대열에 끼어든다. 그때까지 여러 소설을 발표했으나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한 그녀에게 동반자인 사르트르가 제안하였다.

“자네가 쓰는 소설은 내가 보기엔 문체 면에서 별 개성이 없는 것 같은데, 자네가 제일 잘 아는 주제로 뭐 하나 써보는 게 어떻겠소?”

각자가 쓰는 글은 반드시 상대방에게 보여주고 충고를 들은 다음에 발표하는 이 커플의 생활방식에서 나온 충고였다. 이 제안에 보부아르는 귀가 솔깃했다.

‘내가 제일 잘 아는 주제? 그게 무엇일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 보부아르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렇다.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여자가 만들어지고 있는지, 우리를 가두는 여성의 조건은 무엇인지 다루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쓰이게 된 것이 ‘제2의 성’. 지금은 전세계 여성주의자들에게 바이블 역할을 톡톡히 하는 이론서가 되었다.

“우리는 여자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여자로 길러진다.”

이 한 마디 문장에 여자의 운명이 다 들어가 있다. 보부아르는 태어나면서부터 남자 아이들은 남자가 되도록 키워지고 여자 아이들은 여자가 되도록 키워진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여자란 부수적인 것, 종속적인 것을 의미한다.

저자가 책의 제명에 인용한 피타고르의 글에 의하면 ‘여자는 혼란과 어둠과 함께 나쁜 원리를 대표한다.’ 당연히 ‘질서와 빛, 남자는 좋은 원칙에 해당된다.’ 처음부터 이렇게 불공정한 원칙에서 시작한 여성이 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했다.

어렸을 적 남자아이들이 서서 오줌 누는 장면을 보고 왜 자기는 굴욕스럽게 앉은 자세로 오줌을 누어야 하는지에 의문을 가졌던 어린 시몬은 어느날 서서 볼일을 본다. 거기서 여자와 남자의 신체적인 차이점을 몸소 체험했던 그는 정신적인 면에서는 자기도 남자와 다를 것 없다고 맹세하고 열심히 학업에 정진한다.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항상 ‘남자의 두뇌’(이 말에도 남성우월 의식이 들어가 있다)를 가졌다는 말을 들어온 보부아르는 1929년 21세의 나이로 철학교수 자격시험에 응시해 2등으로 당당하게 합격한다. 1등 수석합격자는 사르트르. 그러나 원래 보부아르의 성적이 사르트르보다 우월했으나 당시 사회 분위기가 여자가 수석합격자가 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분위기라 2등의 사르트르와 순서를 바꾸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회자되고 있다. 더욱이 사르트르는 전년도에 이미 낙방한 경험이 있는 것에 비해 보부아르는 첫번째 도전에서 2등으로 합격했으니, 여자도 남자 두뇌 못지않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머리에 항상 터번을 두르고 다소 엄격해 보이는 인상을 풍기는 보부아르는 그러나 자신의 삶을 즐길 줄 아는 여성이었다. 사르트르가 항상 여자와 염문을 뿌려 마음고생을 했을 거라고 상상하면 착각이다. 보부아르도 자기 나름대로 자유로운 연애를 마음껏 즐겼다.

미국 소설가 넬슨 알그렌과의 연애는 유명한데, 보부아르는 이 남자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완전한 사랑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러나 알그렌과의 사랑도 평생의 지적 동반자인 사르트르를 포기하게 하지는 않았다. 알그렌이 자기와 사르트르 사이에서 한 사람만 선택하라고 했을 때 그녀는 사르트르를 선택했다.

보부아르가 탄생한 지 100년이 지난 오늘날,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먼 후배들에게 그녀가 주는 말은 “여성들이여, 남자의 그늘에서 벗어나 항상 독립적인 존재로 깨어 있기를”이다.

아직도 새장 속에 갇혀 있는 여성들이 의외로 많은 현실이다. 이들이 새장을 열고 나오는 날, 자신에게도 날개가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새장은 밖에서 누가 열어주는 게 아니라 내 자신이 안에서 스스로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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