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정책, 보편성 원리 보다 ‘성특화’로 추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작지만 효율적인 정부’라는 구호 아래 정부 조직을 개편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여성정책 담당기구는 빠지지 않고 개편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에 이명박 당선인은 여성정책 토론회에서 여성정책 기구를 존치시키고, 오히려 그 기능을 확대하겠다고 천명했기에 여성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과거에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추진되었던 정부조직 개편의 행태를 보면 점령군이 진주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고, 개편 대상 조직은 서바이벌 게임을 해야만 하는 것이 상례였다. 또한 정부조직 개편에 대한 이론적 바탕도 없이, 즉 어떠한 정책기능에는 어떠한 조직구조가 적합하다는 이론적 근거도 없었으며, 개편되어야 할 조직의 치밀한 분석에 의한 문제점 도출도 없이 추상적인 용어와 검증되지 않고 현실감마저 결여된 논리로 구성된 주장을 가지고 밀어붙이는 것이 상례였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지금까지 수십 차례나 정부조직을 개편하고도 사후에 그 성과가 어떠한지에 대한 평가나 검증을 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개편만 하고 나면 그만이고, 개편한 목적에 맞는 효과가 있었는지는 평가해본 적이 없다. 이번에는 과거의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을 기대하며 여성정책기구(여성가족부)의 개편 방향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각국의 여성정책기구를 유형별로 구분해보면 부(部)의 국(局) 형태, 여성장관 형태, 여성위원회 형태, 여성부의 형태 등 4가지다. 우리는 이 4가지 형태의 여성정책기구를 모두 경험했다. 건국 때부터 전두환 정부까지는 보건사회부의 부녀국 형태였고, 노태우 정부 출범과 동시에 정무장관(제2)에 여성을 임명하여 독립적인 여성정책기구로 출발하였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정무장관실의 기능과 조직을 대폭 확대하였고, 김대중 정부 출발 시에는 여성계의 여망을 외면하고 여성위원회로 개편했다가 얼마 되지 않아 여성부를 발족시켰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보육과 가정 부문이 보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난 20여년에 걸친 여성정책기구의 변천을 보면 다른 조직기구처럼 부침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기능과 조직이 확대, 보강되어왔다는 점이 특색이다. 그것은 여성 관련 부문의 정책과 행정 수요가 증대했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정책 전담기구가 독립적으로 존치했기에 지난 20여년 동안 여성의 사회 진출에 있어서나 여권의 신장에 있어서 괄목한 성과를 거두어온 점은 일반적으로 공감하는 사실이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여성가족부 기능 강화 방안의 하나로 보건복지부와 통합하는 방안, 또는 유사기능과의 통합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는 여성정책이 여러 기능과의 중첩으로 매몰되어 희석되고, 결과적으로 여성정책을 보편화시켜 오히려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

또한 그것은 여성전담기구를 폐지하고 우리의 최초 여성정책기구 형태인 보건사회부 여성국(局)의 형태로 퇴보하는 결과를 가져올 우려도 있다.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의 기능이 유사해 중복하기 때문에 통합해야 한다고 하지만, 여성 관련 복지부문은 보편성의 원리보다는 여성 특화의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하는 특성이 있다.

현재의 여성 진출과 여권 신장의 추세로 보아서는 전통적인 여성 특수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책 방향이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에 따른 가정과 출산·보육의 문제와 더불어, 여성 진출의 양적 증가는 있으나 질적인 면에서는 성의 계층화와 부문별 편중성이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자영업자와 전업주부의 문제, 그리고 국가의 성장동력에 충원할 여성인력의 개발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편성에 의한 여성정책의 추진은 시기상조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필요한 정책 방향은 성인지 정책이다.

보편성에 의해 여성정책을 추진한다면 성에 대한 인식은 존재하지 않게 되고, 숫자적인 평등이나 물리적 평등만 존재하게 된다.

성인지적 관점이 여성이라는 분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책에 확산된 후에 보편성에 의한 여성정책이 추진되어야 균형 있는 국가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가족부를 독립적으로 존치시키고 성인지적 정책 확산을 위한 기제를 보강하여야 한다.

따라서 여성정책기구의 기능 강화를 위한 바람직한 개편 방향은 현재 6개 부처에만 설치되어 있는 여성정책 담당관을 점진적으로 모든 부처에 설치하고, 여성부가 이를 통해 모든 정책에 성인지적 관점을 확산할 수 있도록 보강하는 방안이어야 할 것이다. 코먼웰스나 캐나다의 경우도 성인지 정책을 위한 기제로서 이와 같은 틀을 제시하고 있다.

어느 정부 조직이라도 항구적인 조직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대적인 필요성과 정책 수요에 따라 기구는 변천한다. 현 시점에서는 여성정책을 특화시켜 추진하는 여성정책 전담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지, 영구적인 조직으로 존치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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