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능력·세계문제 관심 필수…정부지원도 큰힘
관련 학습 동아리·자원봉사활동후 인턴부터 지원을

연말에 외교부 사람으로부터 유엔에서 일할 사람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유니세프(UNICEF)와 국제연합인구기금(UNFPA)이 새로 설치하게 될 윤리담당관실의 책임자 자리(D1레벨)다. 될 수 있으면 40대 초반 정도의 여성이 좋겠다고 한다. 40대 초반은 중간자리라서 평소에 준비된 인력이 아니면 구하기 힘들다. 뒤에 레벨을 설명하겠지만, P레벨에 맞을 젊은 사람은 많이 있는데 D레벨에 진출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찾기 힘들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위원으로 일하면서 젊은이들에게서 자주 받은 질문은 “어떻게 하면 유엔에서 일할 수 있어요?”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유엔에서 일한다고 할 때 그 신분과 기간, 내용은 정말 다양해서 한 마디로 대답하기 힘들다. 또 대부분은 뉴욕이나 제네바, 하다못해 방콕 정도의 근사한 직장으로서의 유엔만 생각하지 아프간이나 캄보디아 같은 위험하거나 열악한 현지에 파견되어 일하는 것은 머릿속에 없는 듯하다. 그래서 오늘은 국제기구 특히 유엔에서 일하고 싶은 열망을 가진 사람들에게 내 나름대로의 아주 초보적인 도움말을 주려고 한다.

첫째, 유엔에서 일하고 싶다면 지구적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폼 나는’ 직장으로서의 유엔이 아니라 유엔에서 하는 일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 세계가 당면한 여러 문제-빈곤문제, 인권문제, 환경문제, 평화문제 등등-에 대해 현재 어떤 상황이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평소 이에 대한 학습동아리나 단체활동, 해외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둘째, 그런 활동을 기반으로 해당 분야의 유엔기구에 인턴으로 일하는 것을 시도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유엔 각 기구는 보통 적은 숫자이긴 하지만 인턴제도를 두고 있다. 현재에도 뉴욕의 국제연합인구기금과 글로벌 콤팩트(Global Compact) 사무소에 한국 인턴이 각각 근무하고 있다. 계약 기간과 내용은 합의에 따라 다르다. 한국에 있는 유엔기구, 유네스코나 유니세프,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한국사무소부터 접근해서 자원봉사로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셋째, 외교부에서 모집하는 JPO(Junior Professional Officer)에 응모하는 것이다. 물론 경쟁이 치열하다. 1년에 5명 선발해서 합격자는 2년간 계약으로 유엔에 자리가 비는 곳에 파견한다. JPO는 한국 정부가 경비를 대는 것으로 1인당 연 1억원 이상의 예산을 소요해 인력을 양성한다. 2년간의 계약이 끝나면 유엔에 정규직으로 채용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물론 이 모든 것의 전제는 외국어 실력이다. 영어는 기본이고, 그 외에 유엔 공용어(불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중국어, 아랍어)를 더 할 수 있다면 플러스다.

유엔의 상근직은 P1부터 P5까지, 그리고 그 위에는 D1부터 D5까지 있다. P는 ‘professional level’로 전문직이라는 뜻이고, D는 ‘director level’로 관리직이다. D5 위로는 고위직이다. 고위직은 유엔 사무총장 밑에 사무부총장(Deputy Secretary-General)이 한사람 있고, 그 밑에 사무차장(Under Secretary-General)과 사무차장보(Assistant Secretary-General)로 유엔기구나 프로그램의 수장들이다. 모두 30명 정도 된다.

나 같은 조약감시기구의 위원은 협약 가입국의 선거를 통해 선출되고 정해진 임기 동안 일하는 개인 전문가다. 그리고 필요한 경비만 지원받고 월급 개념의 보수는 없는 봉사직이다. (경비를 좀 넉넉히 주므로 아껴 쓰면 조금 남긴 하지만….) 그러나 하는 일 자체는 대단히 보람되고 또 영향을 크게 미칠 수 있다. 이런 전문가 자리의 후보가 되려면 ‘전문성과 높은 도덕적 신망’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을 펼쳐 당선시키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

청년실업률이 높은 한국의 현실에서 국제기구에 진출할 수 있다면 꿩 먹고 알 먹기일 것이다. 새해에는 젊은이들 모두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우리나라에서도 유엔에 진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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