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나눔 실천한 ‘빈자(貧者)의 성녀’
평생 나눔 실천한 ‘빈자(貧者)의 성녀’
  • 권지희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7.12.28 14:06
  • 수정 2007-12-28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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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부터 수녀로 종신서원…인도서 첫 봉사
"가난한 사람이 곧 예수님"…부모신앙 이어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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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나눔의 삶’ 실천한 부모 ‘역할모델’



평생을 인도 캘커타에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위해 봉사해온 마더 테레사는 ‘빈자의 성녀’로 불린다.

테레사 수녀는 1910년 8월26일 구 유고슬라비아의 마케도니아에서 알바니아계 혈통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신앙심이 깊었는데, 어린 시절 테레사 수녀는 집보다 성당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 정도였다.

그의 부모는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신념도 강했다. 먹을 것이 없어 집 대문을 두드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식탁을 내어주었고, 그들이 돌아갈 때는 손에 가득히 먹을 것을 쥐어 보냈다. 정기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집을 방문했으며, 그때마다 어린 테레사 수녀를 데리고 다녔다.

테레사 수녀는 성당 성가대 활동뿐 아니라 봉사와 선교에도 늘 앞장섰다. 이러한 활동에는 항상 “가난한 사람을 늘 한 형제라고 생각하라”고 말했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12세 때 다니던 교회에서 인도에 성지순례를 갔던 것이 계기가 돼 인도 북동부 지역인 벵골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로레토 수도회에서 같이 일하자는 권유를 받았다. 인도에서는 영어가 필수였기 때문에 테레사 수녀는 영어를 익히고, 수녀가 되기 위한 수련을 받았다.

1928년 지금의 ‘테레사’라는 세례명을 받았고, 1929년부터 인도 캘커타의 세인트 메리 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이후 17년간 교장을 맡았다.

캘커타 빈민촌에 학교·진료소 일구다



당시 캘커타는 파키스탄과 분리된 이후 피난민으로 가득했고, 서구화의 물결을 타고 찾아든 자유로운 성의식으로 인해 신생아들이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있었다. 테레사 수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교단을 떠나 외부에서 활동할 수 있는 재속 수녀가 됐다.

1948년 모티즈 힐이라는 빈민촌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다. 처음 모인 5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땅바닥을 칠판 삼아 수업을 시작했다. 테레사 수녀의 노력이 알려지면서 그를 돕겠다고 3명의 교사가 나섰고, 주민들도 돈을 모아 학용품을 가져다주었다. 학교가 자리를 잡자 테레사 수녀는 이어 진료소를 열었다.

재속 수녀로 활동하도록 교황청의 승인을 받았지만 그 기한은 1년에 불과했다. 봉사를 계속하려면 학교와 진료소가 있는 공간이 공식적인 수도회로 인가를 받아야 했다. 테레사 수녀는 인가를 얻기 위해 ‘사랑의 선교회’라는 이름의 수도회를 만들었다. 1950년 10월7일 사랑의 선교회는 로마 교황청의 인가를 받았고, 선교회의 회헌에 따라 테레사 수녀는 ‘마더 테레사’로 불리게 됐다.

난민·어린이 구호…노벨평화상 수상



인도에는 언제나 난민이 넘쳐났고, 처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도 상당했다. 테레사 수녀는 죽은 채 방치되어 벌레나 쥐에게 반쯤 몸을 먹혀버린 여인과 죽음에 임박해 거리에 누워 있는 사람을 병원에서 거부하는 것을 목격했다.

테레사 수녀는 1952년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집’을 설립했다. 처음에는 그저 죽음이나마 편하게 맞는 장소였지만, 5년이 지난 후에는 치료와 보호를 받은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나가는 집이 되었다. 테레사 수녀는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이름과 나이, 종교를 물어보고, 그들이 믿는 종교에 맞는 장례식을 치렀다.

어느 날 테레사 수녀의 활동에 감명을 받은 한 남자가 자신의 건물을 아주 싼 값에 팔았다. 선교회는 그 건물에 ‘마더 하우스’라는 이름을 붙였고, 훗날 전세계에 퍼진 사랑의 선교회 본부가 됐다.

테레사 수녀는 사랑의 선교회와 가까운 곳에 ‘어린이들의 집’을 열고 병든 아이와 버려진 아이들을 돌봤다. 1970년 이후부터는 알코올 중독자와 마약 중독자를 치료하고 사회에 복귀시키는 치료센터를 여러 곳에 열었다. 79년 12월9일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80년대에 들어서는 현대의 나병이라고 불리는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 세계 곳곳에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집’을 열었다.

‘사랑의 선교회’ 123개국으로 확대



마더 테레사는 97년 9월5일 심장질환으로 사랑의 선교회 본부인 마더 하우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였다.

현재 사랑의 선교회는 전세계 123개국에 566개의 구호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4300여명의 수녀들이 구호·봉사활동을 하면서 수도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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