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딜리아니·잔 국내 첫 전시회‘열정, 천재를 그리다’
모딜리아니·잔 국내 첫 전시회‘열정, 천재를 그리다’
  • 제미란 / 미술평론가
  • 승인 2007.12.28 11:35
  • 수정 2007-12-28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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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연인, 사랑·천재적 열정·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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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합작 드로잉 ‘모딜리아니와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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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빛 푸른 눈의 여인이 이제 막 목욕을 마치고 발그레 볼에 홍조를 띤 채 고개 갸웃 정면을 응시한다. 수줍은 듯 가슴을 팔로 가리고 있는 그녀. 풍요롭고 붉은 머리채가 농염함을 더하고는 있지만 도발보다는 절제된 고요가 푸른 배경으로 번진다.

모딜리아니(모디)의 마지막 연인이었던 잔 에뷔테른(잔)의 초상. 최근 공개된 그녀의 실물사진을 보았을 때 그림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놀랐고 매혹되었다. 내면 깊이 인디언의 피가 흐르는 듯 동양적이고 통찰력 넘치는 시선, 반항과 열정을 숨기지 않고 치켜뜬 눈매가 그녀의 존재감을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던 것이다.

만삭의 아이를 안고 창에서 뛰어내려 모딜리아니의 죽음을 따라갔다던, 천국에 가서도 그의 모델이 되어주려 했다던 희대의 순애보로 과장되어 모딜리아니 신화의 마지막을 장식한 여인. 헌데 그녀가 모딜리아니의 뮤즈일 뿐 아니라 당당한 예술적 동반자였다는 진면목을 이번 전시는 보여준다.

신화가 되어버린 비극적 커플

두 사람은 세기의 연인이자 가장 비극적인 커플로 회자되었다.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꽃미남 화가로 꼽히는 32살의 방탕했던 모딜리아니와 부르주아 가문에서 자란 방년 18세의 아름다운 예술가 지망생 잔이 몽파르나스에서 처음 만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3년간, 사랑하고 함께 작업하고 아이를 낳고 참담한 가난과 고통을 나누었다. 

전시는 국내 최초 모딜리아니전이라는 블록버스터성 의미보다 두 사람이 함께한 시기의 작품들, 특히 왜곡되거나 감춰진 잔 에뷔테른의 삶과 작품의 발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00년에야 비로소 잔의 가족에 의해 공개된 ‘에뷔테른 콜렉션’은 전설 속에 머물러 있던 이 젊은 여성의 삶과 예술에 드디어 실체를 부여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잔의 유화, 아크릴, 드로잉 등 65점, 죽기 전 3년간 모딜리아니의 유화 및 드로잉 45점, 그리고 공동 드로잉 1점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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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사랑 찾아가는 시간여행

전시장을 걷자니 두 사람의 만남과 사랑, 죽음까지의 연대기를 따르는 시간여행 같은 인상이다.

화가 지망생으로 야무진 꿈을 키우던 시절 잔의 그림들에서 시작해 1915년 두 사람이 만난 뒤 모디가 사랑 가득한 시선으로 그려낸 넘실거리는 잔의 관능적인 머릿단도 아름다웠다.

두 사람이 각자 그린 누드 크로키를 나란히 걸어두니 마치 당시의 작업실을 엿보는 듯도 했는데, 이들은 모델을 공유하며 경쟁이라도 하듯이 연필과 선으로 모델을 탐하고 있던 것이다.

모디의 건강이 악화돼 니스로 간 두 사람. 임신부 잔과 함께 의자에 앉은 모디의 마지막 낙원의 시간이 번갈아 함께 그린 드로잉 속에 있다. 둘은 곧 파리로 돌아왔고, 모디는 다시 술과 여자와 아편들에 빠져 살았으며, 누군가는 그가 악마와 거래한다고도 했다.

급기야 모디는 파리의 자선병원에 입원하고, 이 시기 병상의 모디를 그린 잔의 드로잉은 애잔하다. 고통으로 굽은 모디의 등을 따라가는 그녀의 연필. 우울증에 시달리던 잔이 그린 2점의 수채화는 마치 저승으로 초대하는 사자가 기다리고 있는 음울한 침실과 피를 뿜으며 휘돌아 있는 자신의 자살 풍경(작품 ‘자살’)을 통해 곧 이어질 그녀의 죽음을 예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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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화가에 가려 피지 못한 재능

물론 그녀의 작품들이 미술 견습생의 그것을 훌쩍 넘어선 거장다운 것이었다고 과장하지는 말아야 한다. 하지만 채 피어보지도 못한 채 으깨진 시신 속에서 함께 식어간 그녀의 재능과 열정에 대해, 그리고 잔의 사랑과 배려, 영감의 정수만을 통째로 흡입해버리고 생명까지도 챙겨가버린 모딜리아니의 천재성에 울화가 치미는 것도 사실이다.

잔은 어렸지만 ‘확고한 신념’을 지닌 진지한 예술가였고, 모딜리아니와 같이 서로의 예술세계를 존중하고 사랑했던 동반자로서 정당한 위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기획자의 말에 백번 공감하면서도 햇살 무심한 미술관을 돌아나오는 길은 역시나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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