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양보안까지 묵살
수많은 대화는 허례였나

지난 12월4일 보건복지부는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에관한법률(이하 장차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장애인들은 장차법 시행령에 큰 기대를 걸었다. 장차법이 제정되기 직전 정부도 법안 만드는 데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행령을 만드는 데도 수차례 장애인계와 만나 의견을 조율했기에 기대감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장차법 관련 정부 부처 16개와 공식적인 간담회만 세차례, 개별 부처들과의 만남까지 포함하면 4개월여 동안 총 20회 이상 만나 장차법 시행령에 관한 의견을 조율했다.

장애인계는 지난 4월 장차법 제정 공포 이후 6개월여에 걸쳐 연구작업을 했고, 이 안을 토대로 시행령 안을 만들어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정부에 공식적으로 제출한 것도 3회나 된다. 특히 큰 기대를 했던 것은 실무선에서 한 얘기지만, 우리의 요구가 타당해 수용하겠다는 말까지 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대화를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을 모두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입법예고안을 보고 그 기대는 절망으로 바뀌었다. 정부가 차라리 장애인차별법을 만들자고 하는 것이 보다 솔직하지 않을까.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이하 장추련)는 정부와의 커다란 입장 차이에도 불구, 장애인 차별에 관한 전문성과 진정성으로 장애인 차별이 무엇인지, 왜 그토록 장애인계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고 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설명하고, 그 차이를 줄이기 위해 애써왔다. 그런데 장추련이 꾸준히 제시하고 양보했던 마지막 협상안마저 정부가 외면한 것이다. 정부는 처음부터 주장했던 안 그대로를 시행령 안으로 만들어 입법예고하는 후안무치한 태도를 보였다.

그동안 장애인계와 진행했던 간담회와 개별 부처와의 면담은 정부가 형식적인 절차만을 밟아가기 위한 것인지. 정부 스스로 장애인계를 기만하고 우롱한, 납득할 수 없는 행태를 벌인 것이다.

이에 따라 장추련은 12월14일 정부가 마련한 입법예고안 공청회에 참여해 입법예고안 전면 거부와 함께 공청회 참여를 거부했다. 또 당일부터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후문에서 한겨울 노숙 농성을 시작했다.

매일 기자회견과 문화제를 개최하며 입법예고안 전면 거부와 장차법 시행령 안에 명시되어야 할 장애인계의 7가지 요구안에 대한 수용을 주장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로부터 재논의 제의가 와서 만났으나, 보건복지부는 정말 ‘병아리 눈물’만큼의 수정안을 제시했다. 장애인계는 현재 더 이상 장차법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의 대화는 어렵겠다는 판단에 따라 국무총리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장애인계의 요구는 학원이 장애인 차별 대상 사업장으로 명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장차법 시행령상 시설물에 있어 정당한 편의 내용이 명시돼야 한다. 시설 그 자체만이 아닌, 서비스가 포함되어야 한다.

문화영역의 장차법 시행 시간은 8년 후로 돼 있다. 이는 5년 이내로 바뀌어야 한다. 직장 보육시설 의무사업장이 아니어도 여성과 영유아의 인권을 위해 직장 보육서비스가 보장돼야 한다.

법무부 장애인차별심의위원회에 30% 장애인 할당제가 명시돼야 한다. 이상은 장차법 시행령에 명시돼야 할 장애인계의 최소한의 요구사항이다.

이를 수용하지 않는 것은 정부가 결국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아니라 ‘장애인차별법’을 만들고 싶은 속내를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광화문 종합청사 후문 앞에서 찬 겨울 맨바닥 노숙 농성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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