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성에 파격까지‘기법독특’
회화와 사진의 각 영역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개척해온 두 여성작가의 전시가 비슷한 시기에 열려 눈길을 모은다. ‘자수’라는 새로운 매체를 가지고 캔버스 위에 페미니즘을 표현해온 화가 가다 아메르와 연출 사진의 대가로 불리는 사진작가 샌디 스코글런드가 그 주인공들이다.
가다 아메르
캔버스 위 수놓은 여성들의 상처
가다 아메르(Ghada Amer)의 작품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매체의 독창성과 과감하게 표현된 주제에 놀란다. 작가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나 외교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여러 나라를 체험했고, 프랑스와 미국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그의 작품은 동양과 서양,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예술과 공예가 혼합된 방식으로 표현된다.
특히 실과 바늘로 캔버스에 수를 놓고 그 위에 아크릴 물감을 뿌려 완성하는 작품방식은 그의 트레이트 마크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로 여겨져왔던 자수를 통해 서로 다른 문화의 충돌을 경험하며 느낀 정체성의 혼란, 이슬람 사회에서 억압받는 여성들의 상처, 그리고 포르노 속에서 도구화된 여성들의 모습 등을 그린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신관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전시는 1층과 2층이 다른 주제를 가진다. ‘또 하나의 봄’이란 주제로 열리는 1층 전시에서는 그의 대표작을 볼 수 있다. ‘합작 드로잉’이라 이름 붙여진 2층 전시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합작 드로잉’은 오랜 파트너인 이란 출신의 화가 레자 파콘데와의 공동작품이다. 하나의 캔버스를 계속 주고받으며 서로가 만족할 때까지 작업을 더하는 방식으로 완성됐다. 소품 위주의 그림 속에는 미키마우스, 백설공주 등 만화적인 캐릭터가 수놓아지고, 꽃 그림이 덧대어지는 등 훨씬 자유롭고 밝은 느낌이다. 어릴 적 엽서나 일러스트레이션의 낭만적인 캐릭터에 매혹돼 미술에 흥미를 갖게 됐다는 설명이 이해가 간다.
한국 관객에게는 다소 낯선 이집트 출신의 가다 아메르는 1999년 제48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해 유네스코상을 수상했다. 2000년에는 부산비엔날레와 광주비엔날레, 2004년에는 ‘3인의 여성작가전’을 통해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다. 이번이 첫 한국 개인전이다. 전시는 내년 1월13일까지 계속된다. 관람료는 무료. 문의 (02)733-8449
샌디 스코글런드
현실과 환상 넘나드는 연출 사진
샌디 스코글런드(Sandy Skoglund)의 사진을 접한 관객들이 처음 던지는 질문이다. 벽도 가구도 온통 파랗게 칠해진 방안 가득 오렌지색의 금붕어들이 둥둥 떠다니고, 침대 위에는 잠들지 못한 어린아이가 힘없이 앉아 있다.(‘금붕어의 복수’, 1981년) 꿈인지 현실인지 모호한 이런 장면들이 샌디 스코글런드 특유의 작품 속 이미지다.
미국 출신의 여성 사진작가 샌디 스코글런드는 ‘연출사진의 대가’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빨강·파랑·초록 등 원색의 강렬한 색감, 직접 조각한 오브제를 사용해 비현실적인 상황을 공간에 연출하고 이 장면을 사진에 담는다.
그의 국내 첫 개인전이 서울 소격동 공근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일대기를 살펴볼 수 있는 1970년대 초기작부터 2003년 최근작까지 14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특히 ‘결혼식’(1994년)의 장미 조각, ‘직장에서의 산들바람’(1987년)의 청동 나뭇잎, ‘녹색집’(1990년)의 파란색 개 조각 등 사진 속에 쓰인 오브제들도 대표작과 함께 전시돼 눈길을 끈다.
그는 비평가들 사이에서 컬러사진은 상업적인 것이라고 치부되던 70년대부터 독특한 작품을 통해 컬러사진을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는 데 공헌한 인물이다. 81년 작품 ‘금붕어의 복수’가 휘트니 비엔날레에 전시되고 같은 해 미국의 주간지 ‘라이프’의 사진연감에 실리면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사진은 현실을 찍는(taking) 작업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사진작업으로 만드는(making) 것”이라는 작품관을 갖고 있다. 이런 그의 작품 속에는 예리한 사회비판 의식이 숨어 있다. 대표작인 ‘금붕어의 복수’는 금붕어들이 인간을 공격하는 모습을 통해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일깨운다. 직장인들이 일하고 있는 갈색의 사무실 안에 파란 나뭇잎이 떠다니는 ‘직장에서의 산들바람’은 혼돈 속에서 외부적 힘에 압도당하는 현대인을 묘사한다.
사진 속에 보이는 소품 하나하나를 직접 만들고 구성하는 그의 작품은 회화와 조각, 무대미술까지 넘보는 종합예술로 비쳐진다. 전시는 내년 2월3일까지. 관람료는 3000원. 문의 (02)738-77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