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포트’(랜덤하우스)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과 혼돈으로 가득 찬 청춘보고서다. 이 책은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로 이름을 알린 시인 김경주가 2006년 여름부터 2007년 2월까지 고비사막에서 시베리아까지 횡단하며 느낀 단상과 사진(작가 전소연)을 엮은 것이다. 저자는 안락한 집을 떠나 유배지나 다름없는 척박한 땅에서 고행하듯 유랑한다. 자신을 찾고 싶어서다.
그렇다면 여행 끝에 깨달음을 얻었을까? 명쾌한 결론은 없다. 그저 지금 이 순간 고민하는 모습까지 솔직하게 보여줄 뿐이다. 혼돈의 기록은 읽는 이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돼 울린다. 하지만 한편으론 묘한 안도감도 느낀다. 누구나 한번쯤은 길을 잃는다는 사실, 삶이 나에게만 버거운 숙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주는 위안은 생각보다 크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솟을북)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저자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뉴욕에 거주하는 30대 인기작가다. 멋진 외모와 직업을 가졌지만 결혼생활이 파경으로 치닫게 된 후 온전한 삶을 되찾기 위해 이탈리아, 인도, 인도네시아로 영적 여행을 떠난다. 1년 동안 여행지를 돌며 그는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고통을 다스리는 법을 체득하며 누구보다도 뜨겁게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마음 미술관’(문학동네)은 쏟아지는 일, 사람 관계에 지친 마음을 조용히 다독여주는 그림에세이다. 저자는 ‘사람 vs 사람’ 등 저서에서 날카로운 심리분석으로 주목받았던 정신과 의사 정혜신이다. 저자는 낮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우리는 모두 괜찮은 사람이라고, 그러니 힘내라고 말한다. 그는 ‘세상 모든 사람이 선물이 되는 세상’을 꿈꾸는 낙천주의자다.
“인디언들은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 선물이 되는 세계를 꿈꾸었다지요. 쉽지는 않겠지만 저도 같은 세상을 꿈꾸며 삽니다. 그렇게 나이를 먹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저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보면 어느새 행복해진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잘 살아보고 싶다는 욕망이 깊은 곳에서부터 움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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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서강대 영문과 교수가 쓰고 김점선 화가가 그린 영미시 산책 ‘축복’(비체)이 주는 희망 메시지는 좀더 분명하다. 이 책은 영미문학의 명시 중에서 희망을 전하는 50편을 추려 묶은 뒤 장 교수가 글을 덧붙이고 김점선 화가가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책의 두 저자 장영희, 김점선은 모두 암투병 중이다. 매순간 죽음의 그림자와 싸워야 하는 두 사람이지만 그들이 전하는 행복 바이러스는 강력하다.
장 교수는 “상처에 새살이 돋듯 희망은 절로 생기는 것이며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라며 “그래서 세상의 제일 큰 축복이자 힘은 희망”이라고 말한다. 그가 추천하는 시 한편을 음미해보자. J R R 톨킨의 ‘금이라 해서 다 반짝이는 것은 아니다’란 시의 일부다.
‘금이라 해서 다 반짝이는 것은 아니며/헤매는 자 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오래 되었어도 강한 것은 시들지 않고/깊은 뿌리에는 서리가 닿지 못한다.// 타버린 재에서 새로이 불길이 일고/어두운 그림자에서 빛이 솟구칠 것이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마지막으로 추천하는 희망의 책은 소노 아야코의 계로록(戒老錄)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리수)다. 이 책은 현재 76세인 저자 소노 아야코가 40대에 펴낸, 훌륭하게 늙어가기 위한 지침서다. 책에는 늙음을 경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이 자세히 설명돼 있다. ‘노인이라는 것은 지위도, 자격도 아니다’ ‘가족끼리라면 무슨 말을 해도 좋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조언도 있고 ‘잘 씻을 것’ ‘화장실 사용시 문을 꼭 닫고 잠글 것’ ‘평균수명을 넘어서면 공직에 오르지 않는다’ 등 재미있는 조언도 있다.
이 책이 30년간 꾸준히 재판되며 스테디셀러가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저자는 노년의 삶뿐만 아니라, 노장의 밝은 눈으로 삶 전체를 관조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눈 밝은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고 명쾌하다.
“인간은 최후까지 불완전한 것이다. 그러니 그저 열심히 살아가라. 비록 오욕 투성이의 삶일지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