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지상주의’ 한국교육현실에 부쳐

몇년 전 인연이 닿아 덴마크 교육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게 되었다. 왜 덴마크였는가 하면 우리나라 교육을 영미권과의 협소한 관계를 넘어서 나름대로 풍부한 교육적 전통을 발전시켜온 서양의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 속에서, 특히 사회공동체적 시각에서 훌륭한 교육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북유럽 여러 나라들이 보여주는 폭 넓은 환경 속에서 생각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덴마크는 근대교육의 전개양상을 볼 때 몇가지 점에서 놀랍다. 첫째는 아주 이른 시기에, 즉 이미 1814년에 7~14세 아동들에 대한 의무교육제도가 국가적 차원에서 도입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 국가적 제도와는 별도로 ‘자유학교’들이 1800년대 중엽에 이미 태동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들은 명백히 오늘날 ‘대안학교’의 선구적 형태라 할 수 있다. 셋째는 그러한 시도들이 다양한 유형으로 또 상당히 커다란 규모로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또한 오늘날까지 그 맥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성장해왔다는 점이다.

이는 세계사적으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것이다. 이런 역사적 전제 속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다양한 자유학교들의 주요 유형으로는 다음 세가지를 들 수 있다. ▲1~10학년 아이들을 위한 자유국민학교인 ‘프리스콜레’ ▲8~10학년 청소년을 위한 (혹은 14~18세 청소년을 위한) 자유중등학교인 ‘에프터스콜레’ ▲18세 이상 청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한 시민대학인 ‘폴케회어스콜레’.

이 세가지 유형의 학교들은 오늘날 덴마크 자유교육의 역사적 기원과 그 전개상황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들이자,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가장 영향력 있는 자유학교들이다.

이같이 특이한 현상은 성직자로서 탁월한 문인이자 음악가이자 정치가이기도 했던 프레데릭 세베린 그룬드비(1783~1872)와 실천적 교육자인 크리스텐 콜(1816~1870)이라는 두 사상가로부터 유래한다. 이 자리에서는 에프터스콜레에 초점을 맞추어본다.

에프터스콜레는 옛 시민대학 모형에서 유래한 것이다. 시민대학은 일종의 기숙형 성인교육기관으로서 18세기 중엽 민주적 정치체제를 향해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던 덴마크 사회를 배경으로 국민 대중, 특히 농촌 청소년들을 경제·정치·사회·문화적 영역에서 귀족문화에 맞서 하나의 떳떳한 권리를 가진 ‘참여적 시민’으로 자라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룬드비는 이 학교를 하나의 미래적 환상을 가지고 그려냈다. 그는 형식교육이나 직업훈련보다는 ‘생활의 계몽’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가르침은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시와 역사적 이야기에 기초’해 이뤄지게 했다. 그는 유럽의 식자층 언어인 라틴어보다는 국민들이 일상적 생활권에서 사용하는 구어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이를 ‘살아있는 말’이라 불렀다.

아울러 실제생활에서 필요한 실제적 안목과 지식, 그리고 기예에 대한 학습을 중시했다. 오늘날 덴마크에서 찾아볼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정치적·문화적 민주주의는 바로 이 시민대학 덕분이라고들 한다.

시민대학의 최초로 중요한 두가지 형태는 그룬드비 사상에 기초해 1844년 로딩이 설립한 학교와 1851년 콜이 설립한 학교다. 그룬드비가 성인교육을 생각했다면, 콜은 농촌 청소년을 위한 교육을 생각했다. 그가 뤼스링에 세운 최초의 학교는 농촌 청소년을 위한 ‘농민학교’였다. 이 학교는 발전 과정에서 자유중등학교인 ‘에프터스콜레’와 ‘자유시민대학’으로 분화됐다.

오늘날 덴마크에서 에프터스콜레는 고전적 모형을 바탕으로 다양하게 분화·발전되어 있다. 이를 테면 인격과 개성의 창조적 발현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 이런 점에서 특히 체육·음악·연극·자연 및 생태에 초점을 맞춘 학교, 영재 육성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 정규학교에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독서장애, 학습부진, 지적으로 열등한 경우 등)에게 두번째 기회를 제공하려는 학교 등을 꼽을 수 있다. 에프터스콜레들 중에는 현장에 바탕을 둔 관련 최신 과학이나 혹은 완전학습법, 다중지능 이론 등을 사용해 탁월한 성공을 거둔 학교들도 있다고 한다. 이런 구조는 보통 전통적 공립학교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에프터스콜레들은 교육과정상 자유를 누리고 또 단일한 교육과정 체제에 묶여 있지 않기 때문에 개개 학교들마다 학과목 구조, 교수, 교수법 등에 있어 서로 구별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 내용과 방식은 학교가 어떤 노선을 취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보통 둘이나 그 이상의 계열을 바탕으로 운영한다. 예컨대 초기 모형을 제시했던 그룬드비와 콜 식의 학교는 일반교육과 계몽이라는 노선을 견지하되, 폭넓게 창조적 교과를 운영한다. ‘체육 에프터스콜레’는 신체교육을 강조하기는 하나 그룬드비 사상을 실천한다는 점에서 매우 ‘고전적’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학교는 교실수업보다는 다양한 워크숍과 현장연구에 치중한다. 또 어떤 학교는 몇개의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운영한다. 여기서는 학생과 교사가 함께 기간에 따라 공부할 주제를 논의해 결정한다.

청소년들은 공립학교를 다니는 대신 여기서 1~2년 정도의 재학 기간을 선택해 다닐 수 있다. 에프터스콜레에서 공부한 것은 모두 국가에서 인정받기 때문에 국가 수준의 졸업시험 자격을 취득하는 데 하등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하나의 정형화된 틀을 따라 오로지 위를 향한 상승운동만이 존재하는 곳, 바로 우리들 학교의 현실이다. 이런 구조 안에서는 자기의 성향이 무엇인지 여유롭게 생각할 틈도 없고, 지쳐서 낙오하거나 병들게 된 학생들을 위한 배려 같은 것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에프터스콜레를 살펴보면서 혹시 이같은 모형이 우리 상황에서 어떤 새로운 지평 혹은 돌파구를 위한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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