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의 대모 스타이넘
여성운동의 대모 스타이넘
  • 채혜원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7.12.07 13:09
  • 수정 2007-12-07 1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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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세상에 맞추기보다 세상이 여성에 맞춰야한다”
미국 최초로 여성주의 잡지 ‘미즈’ 창간
60년대부터 현재까지 페미니즘 산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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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전세계적으로 여성운동의 대모(大母)라 불리는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 1934년 오하이오에서 태어난 그는 56년 스미스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뉴욕 타임스, 에스콰이어, 글래머, 보그 등의 매체에서 필자로 활약했다.

그저 유명인과의 인터뷰 정도만 맡아왔던 그는 63년 ‘쇼’라는 잡지에 “나는 플레이보이 클럽의 바니걸이었다”는 기사를 통해 일약 명성을 날리게 된다. 플레이보이 클럽 내의 여성비하 문제와 함께 착취와 성매매에 시달리는 바니걸의 실상을 낱낱이 폭로해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마틴 루터 킹 암살사건 등 정치적 비중이 높은 사건들을 맡았던 스타이넘은 69년 잡지 ‘뉴욕’에 ‘흑인 민권운동 이후의 여성해방’을 싣는 등 페미니스트 언론인으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기자이면서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은 한쪽 눈을 감고 있는 것이며, 기자이면서 페미니스트인 것은 두 눈을 모두 뜬 상태”라는 말과 함께 여성의 인생을 조직화하는 매체가 언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렸을 적 부모의 이혼으로 ‘정상적인’ 가정을 일찍 잃었으나 언니의 도움을 받아 명문대에 입학, 특유의 총명함으로 대학을 우수하게 졸업했다. 약혼자와의 원치 않은 임신과 중절수술은 그에게 큰 상처를 남기지만 스타이넘은 이 일을 계기로 “운명이 내 손 안에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졸업 후 떠난 인도여행 중에는 여성들의 고난과 굴레를 직시하고 간디의 비폭력운동을 경험하게 됐다. 이 경험들은 이후 스타이넘이 농장노동자를 위한 운동, 베트남전쟁 반대운동 등을 펼치는 계기로 작용했다.

70년대에는 여성운동가로서의 활동에 주력했다. 71년에는 저명한 여성학자 베티 프리단 등과 함께 ‘여성행동연합’을 창설했다. 이듬해에는 미국 최초로 여성이 운영하는 여성주의 잡지 ‘미즈’를 창간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잡지는 초판부터 매진되었고 5년이 채 못되어 50만부 발간을 기록하는 등 돌풍을 일으키면서 미국 페미니즘 운동의 중요한 발언대가 됐다. “여성들도 육아나 요리, 패션 이외의 것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음을 입증해 보이겠다”는 그의 포부가 당당히 실현된 것이었다.

스타이넘은 ‘미즈’지 창간호를 통해 자신의 임신중절 사실을 최초로 공개하면서 ‘출산의 자유’와 ‘선택의 자유’를 천명하기도 했다. 그 결과로 73년 마침내 인공 임신중절이 합법화되었다. 현재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미즈(Ms.)’란 단어는 이때부터 통용화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타이넘은 미즈 창간 이후 15년 동안 편집장을 맡으면서 여성의 의회 진출운동, 인종과 계층을 넘어선 여성연대운동 등을 펼쳤다. 특히 여성운동의 뿌리를 찾아올라가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연결시켜 노예제도를 반대했던 ‘그림케 자매’의 활동을 재조명했다. 이러한 활동들은 여성들의 세대간에 다리를 놓음으로써 페미니즘의 호소력을 높였다.

흑인여권론자인 ‘도로시 피트먼 퓨즈’와 우정을 맺어 전국을 돌며 강연을 했으며, 임신중절의 합법화와 직장에서의 임금차별 폐지 등을 요구했다. 스타이넘의 이러한 활동은 인종과 계급의 장벽을 넘어 남녀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다.

“결혼은 관계를 파괴하는 제도”라고 주장해오던 그는 66세가 되던 지난 2000년, ‘남편’이란 말 대신 ‘파트너‘란 단어로 3살 연하인 데이비드 베일과 결혼해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나이로 일흔을 넘긴 지금도 다양한 여성들을 지원하는 ‘미즈재단’의 이사장으로서 페미니즘 활동을 소홀히 하지 않는 글로리아 스타이넘. 그는 얼마 전 열렸던 미즈재단 후원행사에서 이같이 말했다.

“우리는 여성이 세상에 맞도록 변하는 것뿐 아니라, 세상이 여성에게 맞추도록 할 것이다. (We are not only going to change women to fit the world but change the world to fit women)”

60년대부터 페미니스트로서의 신념을 단 한번도 저버리지 않았던 그는 이 시대 여성운동의 상징이자 페미니즘 역사의 산 증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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