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한 획 그은 대표기사들 1

여성신문은 안동 주부 사건, 경찰의 대구 다방 여종업원 성폭행 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등을 통해 사회의 왜곡된 성폭력 통념에 도전했고 전업주부, 여성농민, 여성노인, 미혼모 등 사회적 관심과 복지혜택에서 비켜나 있는 여성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들춰내 다루었다. 특히 노동문제에서는 조기정년 관행, 임금과 승진에서의 불이익 등 기존 여성노동자들의 문제와 함께 무가치 노동으로 간주되던 주부 가사노동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환기시켜왔다. 한편으로는 가부장 사회 속 남성의 딜레마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양성평등사회의 파트너가 될 남성에 대한 이해와 소통, 연대를 강조했다. 이밖에 탁아입법, 미스코리아대회 폐지, 여성부 신설, 평등명절운동 등 일찍부터 새롭고 다양한 생활 속 여성 아젠다를 개발해 주장해왔다.

이처럼 새로운 눈과 새로운 목소리로 우리 사회에 여성문제를 새롭게 인식시킨 창간 초기 주요 기사들의 흐름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성폭력 위기에서 가해자의 혀를 깨물어 성폭력에 대한 정당방위를 이슈화했던 ‘안동 주부 사건’. 여성신문은 준비호인 ‘0’호에서부터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다루면서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사회 통념에 정면 도전했다. 

사건은 88년 2월 새벽 1시에 귀가하던 30대 주부 변씨에게 2명의 청년이 덤벼들자 키스를 시도하는 청년의 혀를 변씨가 깨문 데서 비롯됐다.

변씨는 청년의 고소로 구속 수감됐고, 9월 대구지법 안동지원 합의부(재판장 이유주)는 변씨에게 폭력행위를 적용,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이에 여성계를 중심으로 재판부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 잇따랐고, 변씨가 항소한 대구고법 형사부(재판장 변재승 부장판사)는 이듬해 1월20일 이 사건을 ‘정당방위’로 인정해 변씨에게 무죄를 선고하기에 이른다.

여성신문은 기자들을 현지에 급파, 변씨 부부를 인터뷰하고 “진실과 목숨을 바꾸겠어요”라는 절규를 독자들에게 전했다. 이어서 9호(89년 2월3일)에서 변씨의 항소심 승소 판결을 전하면서 “기존 판례를 뒤엎고 여성의 성과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법적 보호장치를 마련할 수 있는 귀중한 선례”라고 평가했다.

이 사건은 90년 9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감독 김유진, 각본 이윤택 등 3인, 주연 원미경·이영하·손숙)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창간호에 ‘기획진단’으로 실린 ‘남성문화가 흔들리고 있다’는 20년간 줄기차게 이어져온 여성신문의 주요 화두 ‘가부장 사회 속 남성 알기’의 첫 시작이었다.

기사는 88년 초 경제기획원의 “한국 40대 남성의 사망률 세계 1위” 발표를 계기로 여성 시각에서 한국 남성들의 진정한 위기가 무엇인지를 해석한다. 권위와 체면, 돈 버는 기계가 아닌 ‘나’, 이 둘 사이의 갈등으로 위협받는 남성 지배문화의 현실을 짚어보고 “남성도 이제는 억압자만은 아니며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피억압 집단으로서 스스로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한편으로는 여성들이 “아내는 어머니가 아니다”라고 항변하는 현상의 이면을 짚어보면서 기사가 추구하는 진정한 남성상은 양성평등성을 갖춘 ‘여성의 참된 동반자’라고 토로한다.

여성신문은 이후로도 각기 다른 남녀의 의견을 담아낸 ‘청모퉁이 홍모퉁이’, 남성들에게 앞치마를 입힌 ‘내가 잘하는 요리’, ‘남자가 쓴 편지’ 등의 연재물과 일련의 기획물을 실으며 여성과 남성간의 이해와 소통을 시도한다. 이 연장선상에서 95년 ‘평등부부상’ 제정·시상, 2003년 ‘GS(gender sensitive, 성 인지적) 리더 포럼’ 결성 등 남성의 새로운 역할모델을 설파하고 있다.

여성신문은 성폭행범의 혀를 깨문 ‘안동 주부 사건’(0호)에 이어 2명의 경찰관에게 성폭행을 당한 다방 종업원의 사건에 집요하게 매달렸다. 89년 1월27일자 8호에서 시작된 관련 보도는 총 15차례에 걸쳐 연재되며 90년 3월9일자 64호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88년 12월5일 대구 한 다방의 종업원이었던 강정순씨는 여주인과 술을 마시고 귀가하다 안면이 있던 경찰관에게 반강제로 파출소로 끌려간다. 여기서 온갖 성적 폭언과 함께 2명의 경찰관에게 성폭력을 당한다. 이 사건으로 성병까지 옮은 강씨는 12월16일 대구지방검찰청에 사건을 고발했다. 여성신문 보도 후 이듬해 1월 대구여성회와 한국여성단체연합을 중심으로 여성계는 적극적으로 사태 해결을 위해 나서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강씨는 경찰측의 발뺌과 사건 조작으로 되레 무고혐의로 구속돼 수갑을 찬 채 수감생활을 하고, 전남편으로부터 간통죄로 고소당하는 등 시련을 겪는다. 그러나 강씨는 “번 돈을 다 써서라도 뒤집어쓴 오명과 진실을 밝혀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일관한다. 이 과정에서 89년 9월 열린 한국여성대회에서 ‘여성운동이 선정한 올해의 여성상’을 수상하고, 마침내 90년 2월16일 대구지법 형사항소2부(재판장 여춘동 부장판사)로부터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라는 원심 판결을 깨고 ‘무죄’ 판결을 받아낸다.

여성신문은 강씨 사건을 통해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을 고발하는 동시에 “사회적 편견에 의해 피해받는 특정 직종 집단의 여성”에 대한 성폭력 통념을 바꾸는 계기를 마련했다. 

사회 구조 속에서의 가족, 그 안에서의 여성의 위치는 무엇일까. 또 가족과 별개인 여성의 자아 정체성과 딜레마는 어떤 것일까.

여성신문이 창간 초기 때부터 지속적인 관심을 쏟아온 이슈다. 그 고민은 89년 1월20일자 7호부터 시작해 4회 연재된 기획진단 ‘주부문화 변화하고 있다’로 대변된다. “가족이 여자 행복의 모든 것일 수는 없다”는 도발적 명제로 시작되는 기사는 주부가 아닌 ‘나’를 찾는 움직임, 남편 의존에서 벗어나 홀로 서기, 사회 기대치가 변형된 자식에게 쏟아붓는 기대 등 주부 현실의 이면을 분석한다. 

구지윤의 ‘노래교실’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직업을 찾는 기혼여성들이 급증하며, 특별히 아픈 데 없는 여성들이 병원으로 몰려가는 현상 이면에는 가정 밖 ‘새로운 집단’에 소속되고픈 여성들의 열망과 방황이 숨어있다. 남편과의 어긋난 관계로 원인 모를 속병을 앓기도 하고, 반대로 가부장제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남편을 학대하기도 한다. 사회에 대한 보상심리는 ‘자식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라는 통념 속에 맹목적인 교육투자로 이어진다.

여성신문은 기획진단을 마무리하며 새 일을 찾은 기혼여성들의 좌담회를 통해 ‘나와 사회’ ‘나와 남편’ ‘나와 자식’이란 삼각구도 속에서 딜레마를 벗어나는 방법은 기존 주부문화의 변화이고, 이는 주부가 ‘나의 존재’를 재인식하고 자신감을 가지는 데서 출발한다고 결론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