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아내가 아니라 난, 그냥 화가예요”
“화가의 아내가 아니라 난, 그냥 화가예요”
  • 김나령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7.11.30 11:46
  • 수정 2007-11-30 1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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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아내’展

 

왼쪽부터 류민자, 박경란, 김재임, 최성숙씨.   abortion pill abortion pill abortion pill
왼쪽부터 류민자, 박경란, 김재임, 최성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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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 정대웅 기자
“생전에 하 선생님은 술이 거나하게 취해 들어오시면 제 그림을 보고 덩실덩실 춤을 췄어요. 그리고는 이제 자신은 글을 쓸 테니 그림은 저보고 그리라고 하셨죠. 돌아가신 지 벌써 20년이 다 돼가는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네요….”

한국 현대미술의 대가 하인두 선생을 평생 곁에서 제자이자 아내이자 예술적 동반자로 지켜본 류민자씨. 그는 “남편은 내 작품활동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이자 최고의 비평가였다”고 회고한다.

이렇게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류씨였지만 결혼생활 동안에는 창작보다는 내조에 힘을 쏟아야 했다고. 그는 하 선생이 간암으로 힘겨워 할 때 생계를 책임지며 남편이 마지막까지 붓을 꺾지 않도록 독려했다. 그는 남편과 함께 부부전을 여는 등 활동을 계속했으나, 화가 류민자보다는 하인두의 아내로 더 유명했다. 

류씨뿐만 아니다. 서울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김재임씨는 가난한 화가 이춘기와 결혼한 후 프랑스 유학을 포기했다. 37살의 나이로 요절한 천재화가 박길웅과 사제지간으로 만난 박경란씨는 남편과 사별한 후 중학교 미술교사로 일하며 시어머니를 모시고 남편의 화집과 관련저서 등을 출판하는 일에 힘썼다. 유럽에서 ‘한국의 피카소’로 불렸던 조각가 문신의 아내 최성숙씨 역시 서울대 미대 출신이었으나 아내가 그림 그리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던 남편 때문에 작품활동에 매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스스로 화가가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최성숙씨는 “반대를 해도 그림 그리는 게 좋아 꾸준히 작품활동을 했고, 전시회도 계속했다”고 말했다. 김재임씨도 “생전에 남편은 나를 전시회에 미친 여자”라고까지 했다며 껄껄 웃었다. 류민자씨는 “결혼하고 5년 동안 그림을 전혀 못그렸는데 그게 한이 됐는지 둘째아이를 낳고 급성간염에 걸렸다. 그때 이대로 죽는다고 생각하자 너무 억울해서 남편에게 악을 썼다. 그 뒤로는 남편과 번갈아가며 개인전을 열었다”고 회고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이번 전시가 ‘화가의 아내’전이 아니라 그냥 ‘화가’전이라고 강조한다.

“옛날부터 누구의 아내로만 불리는 게 불만이었어요. 아내로서 남편이 잘되도록 최선을 다해 내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제 작업에도 늘 최선을 다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남편과 나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예술적 동지였다는 거죠.” 

오랜 세월 움터온 이들의 예술혼은 뒤늦게 꽃을 피웠다. 류민자씨는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독자적 화풍으로 입지를 굳혔다. 그가 그린 ‘상’ ‘그리움’ 등은 하인두의 추상화와 닮은 듯 다르다. 최근 류씨는 경기도 양평에 머물며 나무, 꽃 등 자연의 아름다움에 천착한 작품들을 그리고 있다.

박경란씨는 남편과 사별한 후 본격적으로 화가로서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1976년 첫 개인전을 연 후 서양화를 그리다가 최근엔 컴퓨터 드로잉 아트를 선봬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은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는 남편의 유언에 따라 1000여점에 달하는 그림을 모두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기탁했다. 외롭고 가난한 예술가의 길을 걸었던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치열하게 예술혼을 이어가고 있다.

최성숙씨는 동양미술가이자 생활미술가로 변신했다. 그는 남편의 유작을 경남 마산시에 기증해 마산시립 문신미술관을 개관했고, 숙명여자대학에 문신미술관을 열었다. 미술관 운영을 위해 아트상품 ‘문신 장신구’를 개발, 판매했으며 동양화가로서도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회화의 음악적 속성에 주목한 작가는 한국 전통소재와 클래식 음악을 접목, 악기를 연주하는 12지상 등의 작품을 조성하고 있다. 최씨는 현재 숙명여대 회화과 객원교수이자 문신미술관 관장이기도 하다.

‘사랑의 숨결’ ‘새생명의 빛’ 등의 작품을 통해 생명과 신앙의 기쁨을 노래하는 서양화가 김재임씨는 총 24회의 개인전을 연 것은 물론, 한국여류화가회 중화민국국제전(2006년), 서울현대미술 시드니전(2005년)에 참가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는 칠순의 나이에도 불구, 최근까지 서울예고에서 미술 실기강사로 일했으며, 미국 예일대 초청으로 2009년 미국 창작스튜디오 작가로 입주할 준비를 하고 있다. 김씨는 “미국에 가기 전 영어를 마스터하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환하게 웃었다.           

아내를 알려면 남편을 보고, 남편을 알려면 아내를 보라는 말이 있다. 이들을 보니 현대미술의 큰 별들이 어떻게 탄생했고, 그 빛을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문의 (02)73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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