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준비호와 창간호
창간준비호와 창간호
  • 이은경 / 여성신문 기자·20주년 기념사업본부장
  • 승인 2007.11.23 13:53
  • 수정 2007-11-23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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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 사회 열망 속에 특종·기획으로 ‘화려한 출발’
가판대에 오르자마자 선두 질주… 여성 정치세력화·경제현실·문화운동에 초점

세상에 첫 ‘울음’ 터뜨린 창간준비호와 창간호



1988년 10월28일자로 발행된 여성신문 ‘0’호는 독자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한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0호의 성공에 힘입어 발행된 창간호는 명실공히 ‘여성정론지’의 탄생을 알림으로써 각 언론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당시 창간 관계자들은 “가판대에서 같은 해에 창간된 국민일보 창간호보다 여성신문 창간호가 더 많이 팔려나가고, 가판업자들이 경쟁적으로 우리 신문을 가판대에 내걸겠다고 한 것만 봐도 여성신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회고한다.  

여성신문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린 0호는 표지부터 사뭇 비장하고 강렬했다. 페미니스트 화가 윤석남이 그렸는데, 여성신문을 두 손에 꽉 쥐고 가부장제의 벽을 뚫고 뛰어나가는 두 여성은 창간 주체들의 열망을 반영하는 듯했다.

0호는 이후 여성신문 지면을 통한 여성운동 실천, 편집 방향과 보도 태도에 바로미터가 된다. 주요 특집은 13대 국회에 상정된 가족법 개정안,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 등 여성 관련 법안 통과를 앞에 둔 박영숙·이윤자 의원 등 당시 여성의원들의 전략을 상세히 다룬 ‘여성정치 역량과 13대 국회’, 여성신문 주간 고정희와 주주 대표 지영선 한겨레신문 여론매체위원(현 보스턴 총영사)의 권두대담 ‘한국 여성현실과 언론매체’, 김인순 민족미술협의회 여성분과 대표·노영희 민족문화작가회의 여성분과 위원·이혜경 여성민우회 여성문화기획실 부장(현 여성문화예술기획 이사장)·조기숙 여성민우회 여성문화기획실 위원(현 이화여대 무용학과 교수)이 참여한 좌담회 ‘여성예술운동 물이 오르다’ 등이다.

특히 성폭행범의 혀를 깨물어 성폭행에 대한 정당방위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안동 주부 사건을 여성의 시각에서 충실히 다룬 현장기사는 0호의 특종이라 할 만하다. 여성신문은 이후 오히려 폭행죄로 구속 수감됐던 피해여성이 이듬해 초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이 사건을 지속 보도했다.

기사 곳곳에 나오는 남녀평등이 아닌 ‘여남평등’도 당시로선 파격적인 표현이었을 듯하다.

각계각층 여성들의 머리 위로 양성평등의 평화 세상을 갈구하는 두 마리의 흰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표지와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따뜻한 동행’, 이계경 초대 발행인의 ‘모든 여성들의 만남의 광장이 되렵니다’ 창간사로 시작된 창간호(12월2일)는 0호에 비해 한층 안정되고 온화하며 희망찬 느낌으로 충만하다.

‘우리 문학의 큰 산맥’ 박경리 작가의 권두 인터뷰, 쟁점 대담 ‘여성과 남성은 동반자인가 갈등관계인가’(이경자 당시 성심여대 사회학과 교수 VS 이화수 당시 아주대 행정학과 교수), 전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인 김애실 당시 외대 경제학과 교수가 경제성장 속에 간과된 남녀 불평등 문제를 중심으로 기고한 ‘한국 경제 현실과 여성문제’, 가부장 사회 속 남성의 딜레마를 다루며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 기획진단 ‘남성문화가 흔들리고 있다’, 현장취재로 중점 분석된 ‘여행원의 승진은 하늘의 별따기’ 등의 굵직한 특집들이 자리하고 있다. 간도 이민과 독립운동 세대 김신묵 할머니가 테이프를 끊은 ‘이야기 여성사-말로 듣는 한국 여성의 삶과 역사’는 이후 98년 10월30일자 498호까지 10여년간 연재되며 책으로도 출간된 대표 연재물이 됐다.

창간 초기 편집위원으로는 김경애(이대·여성학), 박혜란(상명여대 강사), 이상화(이대·철학), 이은영(외대·법학), 장필화(이대·여성학), 조형(이대·사회학) 등 여성사회학자들과 차미례 출판저널 주간이, 논설위원으로는 이태영, 한완상, 이명현, 최열, 김주연, 한명숙, 조은, 조옥라, 조혜정, 이효재, 이인호, 한준상, 송보경, 김애실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활약했다.



- 성폭행범 혀깨문 안동 주부사건 ‘여성’ 시각으로 특종… 피해여성 무죄판결 때까지 보도

- 김경애, 박혜란, 이상화, 이은영, 장필화, 조형 등 여성사회학자들 편집위원으로 대거 포진

- 이태영, 한완상, 최열, 한명숙, 조은, 조옥라, 조혜정, 이효재, 이인호, 송보경, 김애실 등 논설위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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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에 실린 창간 발기인들의 축하글. 강원용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윤후정 이대 명예총장, 신인령 이대 전 총장, 한명숙 전 국무총리, 지은희 전 여성부장관, 강기원 전 대통령직속 여특위원장, 김애실 전 국회 여성가족위원장, 박경리 소설가, 천양희 시인, 이영애 전 춘천지법원장, 한승헌 변호사, 유재천 한림대 교수, 손대현 한양대 교수, 이삼열 한국 유네스코 사무총장, 정동철 신경정신과 전문의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창간 발기인들의 이름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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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의 주를 모아 ‘국민주 주식회사’ 형태로 출발한 여성신문이란 대안 언론매체에 대해 거는 독자들의 기대는 각별했다.

여성신문 창간에 부쳐
보아라, 꽃들이 일어서는 걸…



강 은 교


꽃들이 일어서는 걸 보아라.

온 세상 가득히

하얀 들꽃들이 일어나

깃발 흔들듯 깃발 흔들듯

역사의 앞뜰로 내려오는 걸 보아라.

한 자락씩 꿈을 움켜쥔 팔을 흔들며

비바람에 굵어진 허리 출렁이며

조국과 민족에 열뜬 이마 반짝이며

빛의 딸들의 아름다운 입술 빛내며

역사의 앞뜰에 내려온 하얀 꽃들이

일제히 푸른 가슴 펴는 것을 보아라.

하얀 꽃들의 외침을 들어보라.

자주 민주 통일의 밀려오는 파도

그 푸른 소리를 들어보라.

1988년 11월 여성신문에 집결한

그 힘찬 출정가를 들어보라.

비록 여기는 아직

흐린 비 매일 내리고 있지만

어둠이 어둠을 들쳐메고 있지만

싸움이 싸움과 함께

붉은 노을 저녁마다

핏물 던지고 던지고 있지만

저기 사람 사는 세상이 손짓한다.

보아라, 동녘의 꽃들이 일어서는 걸-.

온 세상 가득히

하얀 꽃들이 일어나

깃발 흔들듯 깃발 흔들듯

역사의 앞뜰로 내려오는 걸-.

아, 우리들의 기쁨

태백시의 딸들의 발자국 소리

들어보라, 저 빛나는 딸들의

푸름에 감긴 새 세상을-.

그대들이여

해방을 꿈꾸는 이들이여.





강은교 시인은

1945년 함경남도 홍원에서 출생한 한국의 대표적 여성시인. 68년 월간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시 ‘순례자의 잠’ 외 2편이 당선돼 등단했고 ‘70년대’ 동인으로 활동했다. 작품으로는 ‘허무집’ ‘빈자일기’ ‘우리가 물이 되어’ 등 다수가 있으며, 한국문학작가상,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숱한 상을 받았다. 여성신문과는 창간 발기인으로 인연을 맺었다. 현재 동아대 한국어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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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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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 초대 주간이 직접 쓴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는 창간 초기 1면 표지 왼쪽에 실렸던 여성신문의 대표적 칼럼이다. 여성 인권과 권익을 바탕으로 여성연대를 강조했던 이 칼럼은 후에 ‘자매에게 띄우는 편지’로 되살아났다.



“자매애는 강하다”



오늘 비로소 이 땅에 나무 한 그루 싹을 틔웠습니다. 오천년 동안 이 나라 여성들이 그토록 열망했던 나무. 십년 동안 뜸을 들이고 가슴 졸이며 기다렸던 이 나무가 두 팔을 벌리고 대지 위에 섰습니다. 경이롭고 반갑고 정다운 나무―이 나무가 자라서 뿌리를 깊게 내리고 우람한 가지를 뻗어 모든 이의 그늘을 만들어주기까지는 많은 세월과 힘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비바람 가려주는 울타리가 필요하고, 때로는 돌풍을 이겨내는 받침목이 필요하고, 또 때로는 하늘로 쑥쑥 자라오를 수 있는 자양분이 필요합니다. 이 나무는 누구의 것이 아닙니다. 나무는 어느 개인, 어느 특정 시대의 것이 아닙니다. 이 나무는 여자의 것만도 남자의 것만도 아닙니다. 바로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의 것입니다. 나무가 자라 제 힘으로 서기까지는 먼저 우리 여성들의 관심과 정성과 사랑이, 아니 단합된 힘이 필요합니다. 남자를 움직이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우주의 축을 옮기는 힘, 그것은 오직 ‘자매애’이기 때문입니다.



“여성주의적 대안언론의 초석 튼튼히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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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운동계에서 활약한 대표적 페미니스트 시인… 요절 후 재조명작업 활발



초대 주간 고정희는



고정희 초대 주간은 1948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 91년 지리산에서 실족해 사망한 한국의 대표적 페미니스트 시인이다. 75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15년간 ‘실락원 기행’ ‘초혼제’ ‘지리산의 봄’ ‘저 무덤 위의 푸른 잔디’ ‘여성해방 출사표’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여백을 남긴다’ 등 10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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